본문으로 바로가기

[신앙과 문학의 징검다리] 17 - 살기 위해서라도 펜 놓지 못해

[신앙과 문학의 징검다리] 17 - 살기 위해서라도 펜 놓지 못해

칼날 같은 세파 속에서

Home > 사목영성 > 신앙과 문학의 징검다리
2008.12.21 발행 [999호]
칼날 같은 세파 속에서


 지방 출판사의 어려움은 내 어려움이기도 했다. 쥐꼬리만한 봉급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았다. 그즈음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 직전이어서 도움을 받을 상황도 아니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판단하고 다시 가족을 거느리고 대구로 향했다.
 동서네 집에 기거하면서 그가 운영하는 카센터에 나갔다. 말이 직장이지 더부살이와 같았다. 그만큼 내 형편이 어려웠다. 동서와 처제가 흔연스럽게 대해주었지만 하루하루가 바늘방석 같았다. 명색이 가장으로서 처자식에게 면목이 없었다.
 1980년 봄에 단신으로 상경했다. 당시 「소설문학」 편집장으로 있는 김창완 시인을 찾아갔다. 전날 나와 함께 '흑조시인회'를 출범시킨 그는 일찍이 서울에 올라와 자리를 잡은 터였다. 이 시인은 내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서울에서 고생했던 일을 들려주면서 격려해 줬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인사동에 있는 출판사에 취직시켜 줬다. 위인전 집필위원이었다.
 나의 서울 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다. 곧 신정동에 사글셋방을 구하고 가족들을 불러올렸다. 그때만 해도 서울시민이 됐다는 사실만으로 의기양양했다. 그러나 내 고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인생 자체가 고해(苦海)임을 입증하듯 고난이 뒤따랐다. 철석같이 믿었던 직장이 부도가 나서 공중 분해되고 만 것이다. 취직 3개월 만이었다.
 시련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가족들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에서 외국어회화 카세트 가방을 들고 가정판매에 나섰다. 우선 친척들을 대상으로 하고, 그러고 나서 학교 친구들을 찾았다. 대부분 내 얼굴을 보고 구입해 줬다. 그런데 그다음이 벽에 부딪쳤다. 아무 연고 없는 사람들은 아예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

 가정판매를 그만둔 나에게 오래지 않아 일감이 생겼다. 조선시대 역대 임금들의 삶을 중심으로 한 대하역사소설이었다. 처음에는 모씨(某氏)의 집필 팀이었으나 나중에 S출판사 편집장으로서 독자적으로 집필하게 됐다. 태조 이성계부터 마지막 순종임금에 이르기까지 조선 역사, 특히 궁궐에서의 음모와 여인들 이야기를 다뤘다. 이름 하여 '이조왕비열전'이다.
 이 집필은 5년이 넘게 진행됐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점심시간을 빼고 계속 썼으며, 귀가해서도 새벽까지 원고지와 씨름했다. 이렇게 혼신의 힘을 기울인 이유는 출판사가 이 기획에 운명을 걸었고, 나 또한 공동운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정이 빈약한 출판사였다. 얼마 후부터는 직원들을 내보내고 내 봉급이 일부만 지급됐다. 달이 갈수록 밀린 봉급 금액이 쌓여갔다. 사장은 형편이 어렵다면서 어떻든지 책이 잘 팔려야 한다고 구슬렸다. 나는 몇 번이나 중도에 그만두려고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밀린 봉급을 받아내겠다는 생각과 형편이 어려운 사장을 매몰차게 뿌리치지 못해서였다.
 그러나 20권 전집이 완간돼도 출판사는 허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동업자를 끌어들여 제작비를 충당한 까닭에 책이 나오기 무섭게 동업자에게로 고스란히 넘어갔다. 책이 잘 팔린다는 풍문을 들었으나 직장은 여전히 고전했다. 사정이 좋아지기만을 바란 나로선 한숨이 늘었다.
 그런 중에 1986년 12월에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를 비롯해 「환단고기」 「규원사화」 등의 자료를 토대로 「소설 단군조선」 3권을 출간했다. 이 소설은 전설이 아닌 사실적 내용이 바탕이다. 왕검(王儉) 이래 48대의 단군이 다스린 그 유구한 나라를 벅찬 가슴으로 집필했다.

 박광호 (모세, 시인ㆍ소설가)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
오늘의 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