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바오로의 해 2부] 바오로 서간과 신학 사상 (11) 바오로의 구원관

[바오로의 해 2부] 바오로 서간과 신학 사상 (11) 바오로의 구원관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통해서

Home > 기획특집 > 바오로의 해
2008.12.21 발행 [999호]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통해서


바오로 서간에 대한 개략적 공부를 마치고 이제부터 바오로 사도의 주요 신학 사상을 살펴봅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전제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학자들 의견을 정리하면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는 유다교에 정통한 바리사이 출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바오로 사도가 율법에 충실했을 뿐 아니라 구약성경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둘째는 바오로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체험한 후 완전히 변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라는 말씀에 바오로의 삶은 완전히 바뀝니다. 다마스쿠스 체험은 이제 바오로에게 자신이 잘 알고 있던 구약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 기준은 자신이 그토록 박해하고자 했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두 가지를 유념하면서 바오로 사도의 신학 사상을 좀 더 깊이 알아봅니다. 그 첫 번째로 구원관입니다.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바오로 사도에 의하면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또는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런 표현을 바오로 서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바오로 서간에서 구원 개념을 나타내는 다양한 표현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를 들자면 하느님 나라, 하느님과의 화해, 속량, 새롭게(거듭) 태어남 같은 용어들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구약 시대부터 이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친숙한 개념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단순한 지리적 영역이 아니라 하느님의 다스림이 펼쳐지고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는 상태와 관련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을 빌자면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로마 14,17)입니다.
 속량(贖良)은 남의 종살이를 하는 사람에 대해 그 몸값을 치르고 풀려나게 해주는 것, 자유롭게 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바오로는 "하느님께서는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1코린 6,20)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값을 치르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가리키지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바오로 사도에게서는 우리를 속량하기 위한 대속적(代贖的) 희생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의 종살이를 하고 있었기에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속량하셨다는 것입니까. 죄와 죽음입니다. 바오로 사도에 의하면 아담의 불순종을 통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해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우리를 죄와 죽음의 종살이에서 자유롭게 해주신 것입니다(로마 5장 참조).
 (하느님과의) 화해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노예로서 하느님과 원수가 됐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통해서 우리가 하느님과 다시 화해하게 해주셨습니다(로마 5,10; 2코린 5,18; 콜로 1,22).
 새롭게 태어남은 세례와 관련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지만 하느님께서 그분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것처럼, 우리도 세례를 통해 죄와 죽음으로부터 죽고 부활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로마 6,1-11 참조).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을 누리고, 죄의 종살이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되고 하느님과 화해하여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은 곧 구원을 얻게 된 것은 전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라는 것입니다. 바오로 구원론에 있어서 그리스도 중심 사상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의로움
 바오로의 구원 개념을 이해하고자 할 때에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의로움(의화 義化 또는 의인義認)이라는 단어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의로움은 하느님의 속성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하느님의 속성인 의로움을 잃은 것입니다.
 바오로에 따르면 인간은 율법을 지킴으로써는 이 의로움에 이를 수 없습니다. 바오로는 "어떤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한다"면서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이라고 말한다(로마 3,24).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해서라고 바오로 사도는 강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 제물로 삼으시심으로써 우리가 당신 앞에서 의롭게 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의로움은 우리 자신이 무슨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거저 주신 것입니다. 무상의 은총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당신 아드님을 속죄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구원 사건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은총과 믿음
 여기서 바오로 사도가 율법의 행위와 믿음을 그토록 강하게 대비시키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잠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에서 설명드렸듯이 바오로는 율법 규정을 충실히 지키는 정통 바리사이였습니다. 그러나 다마스쿠스 사건은 그를 딴 사람으로 바꿔 버렸지요.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다른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배운 것도 아니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서 받은 것"(갈라 1,12)이라고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극적인 계시를 받은 곳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였을 것입니다.
 이 계시 사건 후 며칠 되지 않아 바오로는 곧바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합니다(사도 9,19-20). 바오로는 율법에 충실함으로써 의로움을 구하려고 했던 자신의 이전 삶이 부질없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바오로에게 이런 깨달음을 주신 것은 바로 바오로가 박해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것은 바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이었습니다. 그 은총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써 바오로는 이방인의 사도로 180도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바오로 사도가 구원을 이야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믿음을 유난히 강조한 것을 이해할 만도 합니다.
 
 ▨한 가지 더
 바오로 사도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을 얻는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렇다면 행위는 도대체 구원에 전혀 쓸모가 없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세례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설명이 어느 정도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바오로 사도는 세례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처럼 죽을 몸에서 부활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 넘기지 마십시오. 오히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난 사람으로서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자기 지체를 의로움의 도구로 하느님께 바치십시오"(로마 6,12)하고 당부하지요.
 바오로 사도는 또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의로움의 종이 되라고 당부합니다(로마 6,15-23). 이 대목은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자유가 '…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소극적 자유가 아니라 '…을 위한 자유'라는 적극적 자유임을 일깨웁니다.
 따라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은총을 통해 하느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으며, 이는 우리 삶 전체를 변화시켜 하느님의 의로움을 드러내게 한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 '바오로의 서간과 신학 사상' 기사는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참고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서간과 신학」(바오로딸) 「서간에 담긴 보화」(생활성서) 「바오로에 대한 101가지 질문과 응답」 「바울로와 그의 서간들」(생활성서) 「바오로 스케치」(빅벨) 「바울로」(분도출판사) 「바오로의 열정과 복음선포」 (성바오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신약성서」(분도출판사) 「신약성서 새번역」(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성서못자리 그룹공부 교재-나눔터」(기쁜소식)
 
▲ 바오로 사도의 구원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중심을 차지한다. 그림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자신이 박해하던 예수를 만나는 바오로. 로마 성바오로대성전 소장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
오늘의 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