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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의 해 심포지엄] 발제2-바오로 선교와 한국교회

[바오로의 해 심포지엄] 발제2-바오로 선교와 한국교회

유 희 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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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8 발행 [987호]
유 희 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교회는 선교하고 선교는 교회를 건설한다.
 

 
▨ 선교사 바오로, 그는 누구인가?

    바오로는 예수님 다음으로 위대한 선교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선교 역사상 끊임없이 '반짝이는 별'과 같은 사람이며,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지 않은 교훈을 주는 모델이다.

 바오로는 전환점을 이룬 사람이다. 그리스도교를 핍박하던 박해자였으나 그리스도교를 만방에 전하는 선교사가 된 사람, 예수를 증오하던 바리사이였으나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한 사람, 율법 추종자였으나 그리스도의 법의 전달자가 된 사람이 바로 바오로이다.

 아울러 바오로는 선교의 투사다. 회심한 바오로에게 예수님은 삶의 전부가 됐다. 세 차례에 걸친 선교여행은 복음선포에 대한 그의 열정을 가늠케 한다. 그 열정은 그리스도교가 이스라엘만의 종교가 아닌 세계적 종교로 발돋움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데, 이것이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성과다. 그는 인류 구원을 위해 몸으로 실천한 참된 첫 번째 선교의 투사다.

 또한 바오로는 십자가의 전도사다. 그는 십자가의 예수님에게 철저히 매료된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삶의 본보기로 삼아 십자가의 전도사로 거듭난다. 사랑으로 죽었기에 사랑으로 거듭난 예수님을 흠모한 그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1코린 9,22)이 되고자 했다.

▨ 바오로의 선교방식과 한국교회

 바오로는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1코린 4,16)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의 삶을 통해 본받을 점(선교방식)은 무엇인가?

 1)협력선교(동반선교)
 바오로 선교방식은 협력자와 함께 하는 선교라는 특성을 지닌다. 그는 제자들을 교육해 지역 공동체에 파견하고, 선교 동반자들을 격려하고 지도하기 위해 서신을 보내기도 한다.

 그의 협력선교에서 참된 봉사자와 올바른 사목자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봉사자와 사목자는 봉사ㆍ기도ㆍ선교라는 3대 원칙에 충실하되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봉사만 하고 기도하지 않거나, 기도만 하고 선교하지 않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니다. 아울러 본당 내 사목자와 봉사자 관계는 협력관계이지 결코 분리된 독립 관계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본당의 주임과 보좌 신부만 하더라도 이 둘은 주종 관계가 아니라 바오로가 살았던 초대교회의 협력자 또는 동반자의 관계이다.

 2) 지역선교
 아테네의 아레오파고스 연설에서 보듯 바오로는 선교지역을 물색할 때 의도적으로 사람들이 많은 지역을 선택했다. 본당 사목방향도 바뀌어야 한다. 소수 집단인 본당 신자들만을 대상으로 성사를 집전하는 소극적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민 모두와 호흡하며 그들에게 다가서는 적극적 지역선교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바오로의 아테네 설교는 토착화 전략도 제시해 준다. 그는 지역민들의 깊은 종교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고자했다. 선교는 처음부터 "예수를 믿으시오" , "예수천국 불신지옥" 하면서 으름장을 놓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와 종교를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하느님을 전하는 것이다.

 바오로는 이민족 사람들을 선교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동족 유다인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이는 우리가 왜 북한선교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준다. 북한선교는 같은 땅(한반도)에 사는 이들을 위한 지역선교 차원의 성격도 지닌다.

 3) 대화식 선교
 바오로 선교의 가장 큰 특징은 대화를 통한 선교 방식이다. 어디에서건 대화를 중요한 수단으로 삼았다. 대화식 선교는 현대선교에서도 가장 중시되는 선교방법 가운데 하나다.

 2007년 여름 아프가니스탄 선교단의 피랍사태로 개신교의 공격적 선교방식이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행동하는 선교 행위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파렴치한 것인지를 캐물은 것이다. 대화가 빠진 선교는 독백이거나 강요에 지나지 않는다. 선교에 대한 열기는 뜨거운데 방향을 잃고 있는 개신교나, 방향은 바로 잡았지만 열기가 없는 가톨릭이나 둘 다 자세를 교정해야 한다.

 4) 전인적 회개
 바오로가 사도로 불리게 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회심'에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최고만을 지향하면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윤리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법망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뭉칫돈을 챙기고, 무지한 이들은 살 길이 막막해 점집을 찾아다니는 형국이다. 바오로는 우리에게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로마 12,2)라고 독려한다. 다마스쿠스 사건은 우리에게도 인생의 전환점을 이루는 전인적 회개의 사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5) 성령 따르기
 바오로는 세 차례 선교여행을 할 때 늘 성령의 인도를 따랐다. 여기서 성령의 은사와 열매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오로는 코린토 1서에서 성령의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모두의 공동선 또는 공동체 유익을 위한 것으로서, 마치 한 몸의 여러 지체들과 같은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성령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성령의 인도를 따르려는 겸손함을 잃지 말고 방언과 치유 등 특이한 현상에 치우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것을 바오로는 지적한다. '성령 따르기'보다는 '은사 받기'에 치중하면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6) 교회 : 사랑과 선교의 공동체
 바오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독특한 비유로 정의했다. 이는 일치를 강조한 말이다. 한편으로는 각자의 개별성도 강조했다. 이 점에서 사목자는 형제적 입장에서 다양한 신자 계층의 의견과 요구를 수렴하고, 각자가 서로 주인공임을 알도록 모두에게 열린 사목을 할 필요가 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선교사가 된다. "교회는 선교를 구현하고, 선교는 그 결과 교회를 건설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의 반모임이나 소공동체 운동뿐 아니라 모든 신심단체 활동에서 유념해야 한다. 말씀보다 말을 앞세우거나, 친교보다 친목을 중시하거나, 공동체보다 개인을 위주로 하는 삶은 혼란과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 시대에는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21세기형 이방인(이민족)'이 많다. 소년소녀 가장ㆍ장애인ㆍ절대 빈곤층ㆍ외국인 노동자 등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바오로는 이웃 사랑을 '그리스도의 법'이라고까지 부를 정도로 이웃에 대한 돌봄과 섬김을 강조했다.
▲ 사도 바오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신자들이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을 가득 메운 가운데 발제 내용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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