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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문학의 징검다리] 6 - 고통, 은총의 수단

[신앙과 문학의 징검다리] 6 - 고통, 은총의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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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4 발행 [986호]
 대퇴부 관절에 자리 잡은 병은 혹독한 통증으로 나를 괴롭혔다. 밤낮 없이 몰아치는 고통은 형언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갖가지 처방으로 환부가 아물었다 해도 오래가지 않아 재발했다.
 그런 악순환 속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목포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나를 지탱해 주는 것은 문학이었다. 문예서클을 조직하고 동인지를 만들었다. 그때의 나는 글을 씁네 의기양양했다. 닥치는 대로 많은 책을 읽은 것도 이 시기였다.
 그럴 즈음 학교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목고문학상'이 공모되었다. 나는 단편소설을 응모했다. 얼마 후 병세가 악화되어 대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는데, 후배가 목고문학상 소식이 담긴 교지를 가져왔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내가 크게 놀란 것은 심사평이었다. 중앙문단에서 이름을 날리던 소설가 박화성 선생님께서 최종심에 오른 작품을 심사했는데, 나에 관해서는 대략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다. "이 학생은 책을 많이 읽은 듯하나 소설 구성이 산만하고 과장법이 심하다. 예를 들면, '간이 콩알만 하다'…등등이다."
 그렇지 않아도 투병에 지친 터에 여간 충격이 아니었다.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자괴감과 재능에 대한 회의로, 나는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이 결심은 10년 넘게 계속되었다. 그 동안에는 오직 시만 썼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늘 소설에 대한 애착이 잠재해 있었다. 시만으로는 내 분출하는 상상력을 담아내기 어렵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의문이 따랐다. '대관절 소설에서 구성이 무엇인가? 어떤 경우에 구성이 산만한가?'
 나는 마침내 「소설작법」 등 서적을 구입해 구성에 관해 공부했다. 그리고 다른 작가들 소설을 펼치고 문장의 흐름을 연구했다. 그렇게 해서야 구성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이때 독학이 나에게 소설가로서의 삶을 지향하게 했다.
 나는 1960년대에 타계하신 박화성 선생님께 감사한다. 사실 그분을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작품 심사평으로써 나의 스승이 되었다. 그분의 충고가 새 지식을 충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때의 낙선이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꼬박 일백 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음에도 나는 완쾌하지 못했다. 결국 퇴원해 집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때를 전후해 새어머니가 나에게 쏟은 정성은 지극한 것이었다. 간호사 출신인 새어머니는 직접 주사를 놓아주고 환부를 치료해 주었다. 병원에 있을 때는 매일 식사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 무렵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목포경동본당 박 막셀라 수녀님이었다. 막셀라 할머니 수녀님은 몇 년에 걸쳐 꾸준히 방문하면서 신앙서적을 빌려주기도 하고 하느님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분에게서 욥 성인에 관해 들었다. 혹독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증거한 성인이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나는 막셀라 수녀님을 통해 영적으로 눈을 떴다. 그전에는 불행을 혼자 짊어졌다는 생각에서 위축되고 되바라진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할머니 수녀님의 잔잔한 가르침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특히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 은총의 수단이 된다는 말씀은 두고두고 나를 이끌었다.
 나에게 종교적 영향을 준 또 한 사람은 요셉 숙부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대세를 준 숙부는, "조카가 입교하여 어머니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막셀라 수녀님에게 입교의사를 밝혔다.

박광호 (모세, 시인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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