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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의 해 2부] 바오로 서간과 신학 사상 (1) 바오로 서간은

[바오로의 해 2부] 바오로 서간과 신학 사상 (1) 바오로 서간은

신약성경 27권 중 13권이 바오로 사도 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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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7 발행 [985호]
신약성경 27권 중 13권이 바오로 사도 서간


    신약성경 전체 27권 가운데서 바오로 사도가 썼다고 하는 바오로 서간은 모두 13권이다. 신약성경 거의 절반이 바오로 사도의 서간인 셈이다. 신약성경 가운데서 복음서 4권과 사도행전 그리고 요한묵시록을 제외하면 21권이 서간인데, 그중 바오로 서간은 거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그만큼 바오로 서간은 신약성경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또 중요하게 읽힌다.
 바오로 서간과 서간에 나타나는 신학 사상을 공부하기에 앞서 몇 가지 기본 사항을 알아본다.

◇바오로 서간은 모두 바오로가 직접 썼나

신약성경에서 바오로 서간으로 불리는 13권은 다음과 같다. 1)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로마서) 2)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코린토1서) 3)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코린토 2서) 4)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갈라티아서) 5)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페소서) 6)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필리피서) 7)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콜로새서) 8)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테살로니카1서) 9)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테살로니카2서) 10)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티모테오1서) 11) 티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서간(티모테오2서) 12) 티토에게 보낸 서간(티토서) 13)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필레몬서)

바오로 친서라 부르는 7권 직접 쓴 것 확실

 이 서간들을 바오로 사도가 다 쓰지는 않았다는 것이 오늘날 많은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학자들 의견을 종합하면 이 13권은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우선 바오로 친서라고 부르는 것으로 바오로가 직접 쓴 것이 확실한 서간들이 있다. 로마서, 코린토1서, 코린토2서, 갈라티아서, 필리피서, 테살로니카1서, 필레몬서 등 모두 7권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로는 바오로의 측근이나 제자들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제2바오로 서간이 있다. 콜로새서와 에페소서, 테살로니카2서, 그리고 '사목서간'이라고도 부르는 티모테오1서와 티모테오2서, 티토서 등 6권의 서간을 말한다. 이 가운데서 콜로새서와 에페소서, 테살로니카2서에 대해서는 바오로가 직접 썼으리라고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 또 티모테오1서와 2서, 티토서를 사목서한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서간들과 달리 공동체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 아니라 공동체를 맡고 있는 사목자들에게 보낸 서간이어서다.
 바오로의 친서가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서간들에 왜 바오로가 직접 쓴 것 같은 표현들이 나올까. 바오로 사도가 살았던 당시에는 널리 알려진 인물, 특히 존경하는 스승이나 가까운 동료의 이름을 저자로 내세우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그 저작에 대한 권위를 높이고 나아가 이름을 빌려 쓴 그 사람의 사상이나 정신을 더욱 발전 또는 확장시켜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바오로가 직접 쓰지 않았지만 바오로가 쓴 것처럼 제시되는 서간들도 이 경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바오로가 직접 쓰지 않았다고 해서 바오로의 사상과 무관하다고 일축해 버려서는 안 된다고 학자들은 지적한다. 오히려 바오로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에 바오로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 바오로가 직접 쓴 서간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별함으로써 우리는 바오로의 사상이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 공동체에서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고, 그 편지가 쓰이거나 편집됐을 시기의 달라진 교회 공동체 상황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바오로가 쓰지 않았다고 해서 성경으로서의 권위가 줄어들거나 폄하되는 것은 아니다. 똑같이 영감을 받은 하느님 말씀으로서 권위를 존중받는다.

◇언제 어떻게 쓰고 어떤 식으로 전했을까

바오로의 서간, 특히 친서들은 신약성경 가운데서 가장 먼저 쓰였다.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보다 더 이른 시기에 쓰였다. 그 중 가장 먼저 집필된 것은 테살로니카1서로 50~51년쯤에 작성됐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 생애를 연대기 순으로 정확하게 제시하기가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바오로 서간들이 언제 어디에서 쓰였는지를 정확히 밝혀내기는 현재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대략적 시기를 추정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마저도 학자들에 따라 많게는 20~30년 차이가 나기도 한다. <표 참조>
 바오로 서간, 그 중에서 친서들은 바오로가 직접 썼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오로 사도가 펜을 들고 직접 편지를 써내려 간 것은 아닌 듯하다. 바오로는 편지의 대부분을 다른 사람이 받아쓰게 했고 인사말 정도만 자신이 직접 썼다. "이 편지를 받아쓴 저 테르티우스도 주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로마 16,22)라는 구절이나 "이 인사말은 나 바오로가 직접 씁니다"(1코린 16,21; 콜로 4,18 등)라는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략적 시기만 추정…학자마다 차이 나기도

실제로 바오로 사도가 살던 당시에는 편지를 받아쓰게 하는 것이 널리 행해지던 관습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바오로는 글을 읽고 쓸 줄 알았지만 당시의 관행에 따라서 다른 사람이 받아쓰게 한 것 같다. 그렇다면 바오로가 인사말을 직접 쓴 의도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저자가 친필로 글을 쓰는 것은 그 편지가 진짜임을 확실히하면서 동시에 권위를 부여하는 의미를 지닌다. 바오로가 인사말을 직접 쓴 것 역시 같은 효과를 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쓴 편지 두루마리는 끈으로 묶어 봉인을 한 다음에 믿을 만한 인편을 통해서 전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로마제국에서는 우편 마차가 있었지만 이는 관리나 군인들만 이용할 수 있었고 일반인들은 다른 믿을 만한 사람의 도움을 빌려야 했다. 바오로도 티모테오나 티토 같은 가까운 동료 편에 서간을 딸려 보냈다고 한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 '바오로의 서간과 신학 사상' 기사는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참고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서간과 신학」(바오로딸) 「서간에 담긴 보화」(생활성서) 「바오로에 대한 101가지 질문과 응답」 「바울로와 그의 서간들」(생활성서) 「바오로 스케치」(빅벨) 「바울로」(분도출판사) 「신약성서입문」 (분도출판사).
 

 
▲ 성 바오로 대성전 안에 있는 바오로 사도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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