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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의 해] (6) 두번 째 전도여행

[바오로의 해] (6) 두번 째 전도여행

리디아 첫 개종…유럽에 '복음의 씨앗' 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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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3 발행 [981호]
리디아 첫 개종…유럽에 '복음의 씨앗' 뿌려


타락한 코린토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 거둬
몇 년 뒤 신자들 갈라서자 눈물로 일치 호소   

사도 바오로가 드디어 유럽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예루살렘에서 출발한 복음이 소아시아를 거쳐 유럽 이방인들에게 닿은 것이다. 이 씨앗이 싹 터 얼마나 큰 나무로 자랐는가는 유럽 대륙의 찬란한 그리스도교 문명을 보면 알 수 있다.

 성서주석가 요하힘 그닐카는 바오로가 2차 전도여행을 통해 유럽 남동부 그리스에 복음을 전한 것을 '손꼽히는 세계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사도행전을 펴놓고 이 세계사적 여행(사도 15,36-18,17)을 따라가본다.
▲ 사도 바오로의 2차 전도여행 경로

 
#그리스를 지나 로마까지
 바오로의 선교거점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지도1)다.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 이은 세 번째 도시 안티오키아는 3차례에 걸친 전도여행의 출발지이자 귀환지다. 마지막 3차 전도여행만 예루살렘에서 끝난다.

 안티오키아에서 서쪽을 응시하고 있던 하느님의 투사 바오로. 그는 소아시아 땅(지금의 터키)을 가로 질러 그리스를 밟고, 세계의 심장부 로마까지 달려가고 싶은 열망에 들떠 있었기에 용감히 길을 나서 마케도니아(현 그리스 북부와 불가리아 남서부)와 아카이아(지도2)에 도착한다. 이 지역들은 당대까지 알려진 세상의 전부다.

 2차 전도여행의 동반자는 실라스와 디모테오다. 디모테오는 이후 사도의 모든 선교활동에 동행하면서 가장 믿음직한 제자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이 세 사람은 주님의 영이 이끄시는대로 갈라티아 내륙지방으로 간다. 프리기아의 안티오키아, 이코니온 등 첫 번째 전도여행 중에 세운 교회들을 둘러보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오로는 마케도니아 사람이 "건너와서 저희를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하는 환시를 본다. 마케도니아, 그곳은 철학과 문화가 만개(滿開)한 그리스다.

 이 환시를 하느님 부르심이라고 확신한 바오로는 트로아스항에서 배를 타고 네아폴리스에 내린다. 이어 필리피(지도3) 성 밖 강가에서 리디아라는 여인을 만난다. 자색 옷감장수 리디아는 바오로의 설교에 감복해 온 집안 식구와 함께 세례를 받는다.

 이로써 리디아는 유럽의 첫 개종자로 기록된다. 옷감장수라면 수완이 좋고, 인맥도 넓었을 테니 신심 깊은 그녀가 필리피 교회 설립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순탄하던 전교활동은 귀신 들린 하녀의 주인들 때문에 암초에 부딪힌다. "도시에서 소동을 일으키고, 부당한 관습을 퍼뜨린다"는 죄목으로 고발당한 것이다. 이 때문에 바오로와 실라스는 매질을 당하고 감옥에 갇힌다.

 바오로는 훗날 이에 대해 "고난을 겪고 매질을 당했지만 오히려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용기를 얻어 격렬히 투쟁했다"(1테살 2,2)고 회고한다. 그는 자신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십자과 결부시킨다.

 이튿날 풀려난 바오로는 로마 시민권자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명예회복을 요구한다. 기원전 248년에 제정된 소위 포르키아법은 로마 시민을 부당하게 태형(笞刑)에 처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결국 일행은 관리들 사과를 받고 마케도니아 평야를 가로 질러 서쪽으로 걸어간다.
 
# 아테네에서의 낙담 
   바오로의 선교전략은 큰 도시를 거점으로 삼는 게 특징이다. 사람과 문물이 활발히 드나드는 도시는 복음을 사방으로 전파하는데 안성맞춤이다. 그런 그가 테살로니카, 아테네, 코린토 같은 '황금어장' 도시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그는 테살로니카에서 유다인 회당에 드나들며 성경을 갖고 토론을 벌인다. 그의 말에 감복해 사도를 따르는 무리가 있는가하면, 완고한 유다인들은 "온 세상에 소란을 일으키는 자들"이라고 비난을 퍼부으며 일행을 곤경에 빠뜨린다. 그럼에도 그는 굴하지 않고 '아버지가 자녀들을 대하듯'(1코린 2,11) 테살로니카 신자들을 대한다.

 바오로에게 아테네(지도4)는 참으로 탐나는 도시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을 배출한 이성의 요람에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세우는 일은 상상만해도 흥분된다.

 그러나 아테네에 당도해서 보니, 시민들이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등 여건이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물러설 사도가 아니다. 철학자, 법률가, 문인들이 모여 있는 아레오파고스에서 큰 소리로 외친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대단한 종교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인간의 예술과 상상으로 빚어 만든 금상이나 은상이나 석상을 신과 같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얘기하자 어떤 이들은 비웃는다. 이성과 신앙의 결합, 그게 어디 하루 아침에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일이겠는가.

 바오로는 낙담한 채 90㎞ 남짓 거리에 있는 코린토(지도5)로 걸음을 옮긴다. 코린토는 바다를 양편에 끼고 두 항구를 거느린 국제적 상업도시다. 매춘, 폭력, 사기 등 윤리적 타락이 특히 심한 곳이다.

 그는 18개월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십자가에 관한 말씀을 집중적으로 선포한다. 신자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더니, 어느새 그가 세운 공동체 가운데 가장 큰 공동체가 형성된다.

 물론 배척을 당한 적도 많다. 그가 전하는 십자가 사건은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음'(1코린 1,14-17)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주님은 환시를 통해 바오로에게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며 용기를 불어 넣어 주신다.
▲ 바오로와 실라스는 필리피에서 옷벗김을 당한 채 매를 맞는 수난을 당한다(사도 16, 19-24). 필리피 수난을 묘사한 로마 성바오로대성당의 프레스코화.

#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다는 말입니까?" 
 바오로는 이 타락한 도시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둔다. 공동체를 이끌 협력자들을 세워 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난다. 주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도처에 널려 있기에 잠시도 지체할 여유가 없다.

 그러나 몇 년 뒤 바오로는 코린토 교회 신자들 때문에 많은 눈물을 흘린다. 할례에 관해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들이 바오로에 대해 악평을 늘어놓는 바람에 공동체가 분열되고, 몇몇 교만한 신자들이 사도 권위에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코린토 신자들은 여러 패로 갈린다.

 이런 소식을 전해 들은 바오로는 "여러분이 저마다 나는 바오로 편이다. 나는 아폴로 편이다. 나는 케파(베드로) 편이다, 나는 그리스도 편이다라고 하는데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다는 말입니까?"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바오로는 에페소에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두 번째 편지를 써 보내며 다시 한번 눈물로 간곡하게 타이른다. 두 번째 편지 가운데 4장(2코린 10-13)은 '눈물 편지'라고 불린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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