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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의 해] (5) 첫번 째 전도여행

[바오로의 해] (5) 첫번 째 전도여행

유다인들 훼방과 박해에도 '믿음의 문'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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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0 발행 [979호]
유다인들 훼방과 박해에도 '믿음의 문' 열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려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6).

 사도 바오로의 이 짧은 고백이 전도여행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3차례에 걸친 그의 전도여행은 매우 유명하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보자면 이방인들의 땅, 즉 지금의 터키와 그리스 일대를 약 15년간 누비며 복음을 전했다.

 학자들은 그의 총 여행거리를 1만5000㎞로 추산한다. 서울과 미국 LA 거리가 9500㎞다. 도보여행자의 하루 이동거리가 30㎞를 넘으면 강행군에 속한다. 사도가 뙤약볕 아래에서 걷고, 기껏해야 나귀와 나룻배를 타고 이동했을 거리 1만5000㎞ 앞에서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 지상(紙上)순례를 떠난다. 사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로운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다.

#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1차 전도여행(45~48년경, 사도 13-14) 출발지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다.

 안티오키아는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3번째로 중요한 도시였다.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피해 도망나온 그리스도인들이 이곳에서 제법 큰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예수의 제자들을 '크리스티아노스'(Christianos, 그리스도인)라고 처음 부른 곳도 이곳이다. (헬레니즘ㆍ로마시대에 안티오키아 지명이 40여 군데 있다. 따라서 '○○○의 안티오키아'로 구별해야 한다)
▲ 제1차 선교여행 경로

 예루살렘 사도들과 갈등 때문에 다마스쿠스에 머물던 사도를 안티오키아 공동체로 데려온 사람은 바르나바다. 바오로는 안티오키아에 쉽게 적응하고, 이곳에서 한동안 복음을 전했다. 그때 안티오키아 공동체가 성령의 말씀을 들었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사도 13,2-3).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마침내 안티오키아 공동체의 파견을 받고 출발했다. 바르나바의 사촌 마르코(마르코 복음 저자)라는 젊은이도 두 사람을 따라 나섰다. 마르코는 조수격이었다.

 이들 일행은 셀레우키아로 내려가 배를 타고 키프로스 섬으로 갔다. 그 중간에 살라미스에 내려 유다인 회당들을 찾아다니며 하느님 말씀을 선포했다. 바깥 소식이 궁금해 모인 회당 사람들은 낯선 방문객이 구세주 예수 운운하는 것을 보고 역정을 냈을 것이다.

 일행은 키프로스를 가로질러 파포스에 이르렀다. 그곳의 총독 세르기우스는 이들을 만나보고 싶어했으나 악령에 사로잡힌 수행원이 훼방을 놓았다. 그러자 바오로가 독설에 가까운 저주를 퍼부었다.

 "온갖 사기와 온갖 기만으로 충만한 자, 악마의 자식, 모든 정의의 원수! 당신은 언제까지 주님의 바른 길을 왜곡시킬 셈이오? … 당신은 눈이 멀어 한동안 해를 보지 못할 것이오"(사도 13,11).

 바오로의 말대로 짙은 어둠이 그를 내리쳐 눈이 멀었다.

 이어 일행은 다시 배를 타고 팜필리아의 페르게에 도착했다. 페르게에서 험준한 타우루스 산맥을 넘어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이코니온, 리스트라, 데르베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여정을 거꾸로 밟아 출발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피시디아는 타우루스 산맥 서쪽에 있는 고원지대인데, 큰 호수와 해발 2000m가 넘는 산들이 있다. 페르게에서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까지는 160㎞다.

 사도행전 저자 루카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선교활동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특히 두 안식일에 걸쳐 회당에서 행한 연설 내용을 부각시킨다.

 바오로는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이집트 종살이, 광야의 고통 등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역사를 죽 훑은 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주셨다"고 말했다.
▲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남아있는 비잔틴 시대의 대성당 터. 이 성당 터는 본디 유다교 회당 자리로 판명됐다. 사도 바오로는 두 안식일에 걸쳐 이 회당 자리에서 연설을 했으리라. 저 멀리 구름 아래로 타우르스 산맥이 늘어서 있다.

 "그런데 예루살렘 주민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죄하여, 안식일마다 봉독되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목도 찾아내지 못하였지만, 그분을 죽이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하였습니다"(사도 13,27-29).

 바오로는 예수의 부활을 강조한 뒤 "모세의 율법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예수를 통하면 모든 죄에서 벗어나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반응이 좋았다. 그러나 두 번째 연설 때는 유다교 지도자들이 격분하며 반박했다. 결국 회당장이 귀부인과 유지들을 선동해 바오로 일행을 몰아냈다. 사도행전은 "그들(바오로 일행)은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나서 이코니온으로 갔다"고 전한다.

 바오로 일행은 이코니온에서도 시련을 겪는다. 바오로가 주님께 의지해 담대히 설교하고, 주님께서 그들을 통해 표징과 이적들을 보여주시자 도시 사람들이 두 편으로 갈라졌다. 일행은 유다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을 돌로 쳐죽이려는 낌새를 채고 급히 자리를 떴다.

 리스트라에서의 전교활동은 성공적이었다. 바오로가 태생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자 군중은 흥분해서 "신들이 사람 모습을 하고 내려오셨다"고 소리쳤다. 바오로는 졸지에 헤르메스, 바르나바는 제우스가 됐다.

 두 사도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가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복음을 전할 뿐입니다"라고 외쳤다.

 그러나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에서 유다인들이 뒤를 쫓아와 바오로에게 돌을 던졌다.
 
 # 협력자들 도움으로 이방인의 사도 돼

 아무튼 바오로 일행은 첫 전도여행에서 당시 권세가인 총독 세르기우스에게 복음을 전했다. 또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사도로 인정받지 못했음에도 성령의 힘으로 총독 수행원의 악령을 쫓아내고, 여러 이적을 보여줬다. 유다인들은 복음에 거부감을 나타내고 돌팔매질까지 했으나 이방인들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하느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셨다고 기뻐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공동선교와 마르코의 등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바르나바는 바오로가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용기를 북돋아줬다. 바오로가 '이방인의 사도'가 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협력자를 보내주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조수로 따라 나선 마르코가 페르게에서 두 사람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도 흥미롭다. 바오로와 마르코 사이에 다툼(사도 15,37-39)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바오로는 불같은 성격의 사도다. 오직 한 분, 그리스도 외에는 어느 누구도 등에 올라타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외길을 질주하는 야생마 같았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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