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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에 평화>"낳은 자식만 자식인가요?"

<이땅에 평화>"낳은 자식만 자식인가요?"

청주교구 옥산본당 신동주, 이영숙씨 부부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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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26 발행 [677호]
청주교구 옥산본당 신동주, 이영숙씨 부부 가정


▲ “태양없인 살아도 미사없인 못산다”는 비오 신부의 말씀을 신앙의 좌우명삼아 살아온 신동주(아래 왼쪽), 이영숙씨 부부와 자녀들.
남들은 ‘십자가’라고들 했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이영숙(45, 율리아, 청주교구 옥산본당)씨는 맨손으로 시작한 결혼생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남동생들은 늘 그녀에게 얹혀 지냈다.
게다가 80년대초 시아버지, 친정 아버지가 차례로 40∼50대의 중년으로 세상을 떠났고 젊은 올케가 타계한 뒤엔 남동생에겐 ‘신이 내렸다’.
그래서 IMF의 지원을 받던 시기에 지은 청주역 근처의 콩나물공장 2층에는 절이 들어섰다.

울긋불긋한 치장이 걸려 있는 절 옆에는 그녀의 삶의 보금자리가 있다.
동생이 재혼하자 그녀는 기꺼이 동생의 아들 둘을 받아들였다. 군에 입대한 자신의 아들 둘에 남동생의 자식 둘.
그런데도 그녀는 지난 4월2일 일곱살의 사내아이를 입양했다. 천안 톨게이트를 들어서자마자 나타난 공중전화 근처에서 만나 받은 아이의 이름은 호적명과 세례명을 일치시켜 ‘비오’라고 붙였다. 입양하자마자 전에 살던 온양의 한 보육원으로 보내달라고 떼를 쓰던 아이는 보름쯤 되니까 “이젠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한가한 가정주부인 것만은 아니다. 충북에서 최초로 포장지 콩나물을 개발, ‘원조 콩나물’을 설립해 운영하는 기업주일 뿐만 아니라 ME, 꾸르실료, 교구 교리신학원을 이수한데 이어 2년 과정의 청주교구 사도직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등 신앙생활에도 열심이다.
전엔 교구 성인합창단인 가브리엘합창단원으로도 활동했고 한국성음악동호회가 주최하는 각종 세미나에는 요즘도 빠지질 않는다.
또 평일 미사 한번 빠지는 법이 없다. 그녀의 소신은 곧 시성을 눈앞에 둔 오상의 비오 신부의 말씀인 ‘태양 없인 살아도 미사 없인 못살아요’다.

그녀의 얘기를 듣다 보니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참 궁금해졌다. 이처럼 평범하다고 할 수만은 없는 삶의 굴곡을 함께 해온 반려자라면 무언가 평범하지 않는 구석이 있을 법했다.

인터뷰를 한시간쯤 했을까, 마침 남편 신동주(48, 사도요한, 청주기능대 교수)씨가 집에 들어왔다. 야간수업을 앞두고 저녁식사를 하러 집에 들른 참이란다. 160㎝쯤 될까 싶은 단구에 무척 편안해 보이는 인상.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을 부르는 모습이 여간 정겹지 않다.

곁에 있던 부인 이씨가 한마디한다. “군에 간 애들은 무척 엄하게 매도 들어가며 키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애들을 너무 예뻐해요.”

그러자 신 교수가 곧장 말을 받는다. “나보다 집사람이 더해요. 지 새끼들을 그렇게 이뻐해주지.”

신 교수 부부가 결혼한 것은 지난 79년 10월. 연애 1년만에 결혼에 골인한 부부는 ‘맨땅에 머리를 박는 격으로’ 빈손으로 시작했다. 청주 직업훈련원에서 일하며 받던 월급 18만원의 50%는 무조건 저축하며 부식은 텃밭에 채소를 길러 해결했다.
그런데도 성남직업훈련원으로 옮길 때는 빚을 1000만원이나 졌다. 그래서 신 교수가 창원기능대학에서의 2년간의 위탁교육, 한국방송통신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산업대 대학원 기계공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금형기능장과 금형기술사 자격을 따는 동안 부인 이씨는 미싱을 배워 하루 종일 가방과 인형을 만드는 부업을 해야 했다. 한때는 호주로 기술이민을 떠날 생각을 했을 지경이었다. 학위를 따고 광주기능대학을 거쳐 청주기능대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부인 이씨가 청주역 근처 500여평의 땅에 조립식주택을 세우고 콩나물업체를 운영하게 되자 생활이 조금 나아지게 됐다.

이처럼 어려웠다면 어렵다 할, 평범했다고 한다면 평범하다 할 이들 부부의 삶에 버팀목이 되어 준 것은 역시 ‘신앙’이었다. 54세를 일기로 타계한 시아버지가 대세를 받고 선종한 것이 계기가 돼 83년 12월24일 세례를 받았다.  

“예수님, 그분이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못살았어요. 살 희망이 없었을 거예요. 힘들 때마다 앞에서 끌어주시고 뒤에서 밀어주신 그분이 우리 삶의 반석이었죠.”(부인 이씨)

그래서 부부는 ‘가정기도’만은 일주일에 2∼3번씩 모여 꼭 바친다. 기도를 바치지 않으면 자녀들을 물구나무를 세워 20∼30분씩 거꾸로 세워 놓았을 정도. 맏이 상헌(22, 다윗)씨는 하느님을 첫째에 놓는 아이로 성장했지만, 둘째 정헌(20)씨는 곧잘 벌을 선택하는 등 애를 먹였다. 그래도 부부는 두 자녀 모두 하느님 안에서 사는 자녀로 성장한 것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또 조카인 이청(14, 시몬, 중3), 이성민(12, 바오로, 중1)군도 이들 부부의 자랑. ‘신이 내린’ 아버지와는 달리 둘 다 옥산본당의 복사로, 예비신학생으로 반듯하게 성장하고 있다.

신앙이 이들 부부에게 가져다 준 또 하나의 선물은 비오의 입양이다. 자신의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신 교수가 “딸이 있었으면” 하고 타진하자 부인 이씨는 “낳느니 입양하겠다”며 비오를 데려왔다. 이 또한 교구에서 그간 숱하게 강조해운 가정사도직에 관해 배우고 생각하며 부인 이씨가 가져온 생각의 하나였다.

“사실은 비오를 데려오기 이전에 여자아이를 하나 데려올 기회가 있었는데 인연이 닿질 않았어요. 그래서 비오를 데려왔어요. 처음 데려올 때는 비오가 얼굴이 검고 버짐이 끼고 습진으로 고생을 하고 있어서 원래 이렇게 약한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못 먹여서 그런 거예요. 데려다 보약을 먹이고 잘 먹이니까 지금은 속살이 뽀얗습니다. 남들은 남의 새끼를 어떻게 키우냐고 하지만 사람들이 몰라서 그래요. 키우면 그게 내 새끼예요. 낳은 자식만 자식인가요? 모두들 하나씩 입양해서 키웠으면 좋겠어요.” (부인 이씨)

그래서 부부는 요즘 꿈을 꾼다. 주변에서 반대도 많지만, 다섯명만 더 입양해서 키울 생각이다. 집을 1층만 방 다섯개에 건평 70평 크기로 지은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아이들을 향한 부부의 바람은 단 하나다. “우리가 저 아이들한테 꽃 필요한 사람이 되어 사니 정말 좋아요. 그래서 아이들한테는 바람이 하나밖에 없어요.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살아라’ 하는 것이죠.”

매일 새벽 2시30분쯤이면 일어나 콩나물공장으로 향하는 것을 시작으로 밤 10시, 11시까지 일하는 부인 이씨는 “미사가 낙이고 기도생활 하는 게 기쁨이고 그 힘으로 여태껏 살아왔다”고 털어놓는다. 아카시아 향기 은은한 청주 지동 들녘은 벌써 어둠이 거뭇거뭇해지는 해거름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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