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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비행' 류보형 공군 중령

중증 장애 윤석인 수녀에게 '날개' 달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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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1 발행 [701호]
중증 장애 윤석인 수녀에게 '날개' 달아줘


▲ 1. 서울공항 대기실에서 류보형 중령과 이경진(왼쪽)씨, 그리고 부대 관계자들이 `아름다운 비행`을 기원하고 있다.2. 조종석에 앉아 관제탑의 이륙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류보형 중령.
“Seoul ground…ready for take off”(이륙준비)

1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비행장.

공군 제○○○ 특수작전비행대대의 대대장 류보형(44, 사도요한) 중령은 관제탑에서 이륙신호가 떨어지자 육중한 C-130 수송기를 창공으로 가볍게 띄워 올렸다. 조종간을 잡고 전방을 응시하는 그의 구릿빛 얼굴에는 조종석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이 가득하다.

그는 오늘 특별 공수작전을 수행한다. 침대에 누워 지내는 중증 장애인인 윤석인(작은예수수녀회 원장) 수녀를 제주공항까지 안전하게 수송하는 일이다.

윤 수녀가 제주분원을 방문하려면 차와 배를 갈아타고 14시간을 가든지, 아니면 민간여객기의 8좌석 비용을 치르고 비행기를 타든지 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공군이 정기수송편을 이용해 벌이는 대국민 봉사활동이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떠나는 ‘아름다운 비행’.

이 ‘아름다운 비행’은 우연히 시작됐다. 윤 수녀가 비행기삯을 아끼기 위해 고행(苦行)을 자처하는 것을 TV에서 본 그가 상부에 윤 수녀의 공수작전을 건의했다. 비장애인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주는 윤 수녀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어서다.

그는 “정규작전에 지장을 받지 않는 선에서 하는 봉사인데 세상에 알려져 쑥스럽다”며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서 그런지 이런 봉사가 즐겁기만 하다”고 말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그의 한마디에는 깊은 사연이 담겨있다.

경기도 안성 시골에서 푸른 하늘을 보며 성장한 그는 하늘이 좋아 공군사관학교(공사 31기)에 들어갔다. 전투기 조종훈련 과정을 마치기까지 피눈물나는 노력을 했다. 차를 타도 멀미를 하는 ‘시골 촌놈’이라 밤마다 연병장에 나가 코끼리 코처럼 손으로 코를 붙잡고 맴을 돌면서 신체적 한계를 극복했다.

동료들 사이에서 정신력이 강하기로 소문난 그는 고된 막바지 훈련과정(CRT 과정)을 1등으로 수료했다. 직접 전투기에 올라 그의 비행솜씨를 본 부대장은 “적지 공습명령이 떨어지면 반드시 자네와 함께 출격하겠다”면서 엄지손가락을 추겨올렸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1983년 아웅산 폭파사건이 발생해 전군이 전투태세에 돌입했을 때 수렁처럼 깊고 어두운 죽음을 체험했다. 경계비행 중 뒤에 따라오던 전투기에서 오발된 미사일이 그의 전투기 꼬리에 맞은 것이다. 2만6000피트 상공에서 거꾸로 뒤집혀 날던 상태였다.

그는 생존확률 제로(0)라는 최악의 탈출조건에서 이젝션(탈출) 단추를 눌렀다. 낙하산이 펴지는 순간 체중의 30배 충격이 그를 덮쳤다. 핏줄이 터지고, 온 몸의 신경조직이 늘어난 채 허공에서 정신을 잃었다.

25년 인생의 순간 순간이 뇌리에 주마등처럼 스치더니 환한 불빛이 나타났다. 하늘나라에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상태로 강원도 태백의 석탄야적장에 떨어졌다. 동승한 선배 조종사는 공중에서 그대로 산화했다.

그 정도의 충격을 받고 비행기에 다시 오르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그는 눈에 부상을 입어 시력도 예전 같지 않았다. 하지만 소년시절부터 동경해온 파일럿의 꿈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3개월 만에 병실에서 나온 그는 “다시 날고 싶다. 창공에서 산화한 선배의 몫까지 2배를 타겠다”며 다시 전투기에 오르게 허락해 달라고 간청을 했다. 그의 집념을 높이 평가한 상관은 그를 수송기 부대로 배치했다.

그는 “사고일이 생일보다 하루 빠른 10월15이라 생일을 두 번 차려 먹는다”면서 크게 웃었다.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19살이라고 합니다. 그때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느님께서 멋진 군인으로 살아가라고 보너스를 주셨는데 욕심내고 바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제게는 조종사복만큼 어울리는 옷이 없습니다.”

그는 민간항공사의 집요한 스카우트 제의도 단호히 거절했다. “여보, 우리도 나갈까….”라며 운을 떼던 부인 이경진(42, 데레사)씨를 “내게 군인의 길보다 더 가치 있는 길은 없다”는 말 한마디로 눌러 앉혔다. 그는 무엇보다도 선배 조종사의 몫까지 2배의 비행을 하겠다고 한 약속을 어기고 싶지 않았다. 걸프전 때 제일 먼저 지원해 비행에 나서고, 대대장인 그가 요즘도 부하 조종사들과 똑같이 조종간을 잡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면 부인과 함께 아침기도를 바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집을 나서는 시각은 6시30분. 부대로 들어가지 않고 영내에 있는 한성대성당에 들러 성체조배부터 한다. 기도내용은 1년 365일 똑같다.

‘부하들이 오늘 비행임무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주님 당신께서 조종석 옆 좌석에 앉아 주십시오.…’

성당에서 나오면 활주로 건너편 산에서 먼동이 트기 시작한다. 추위가 일찍 찾아온 탓에 항공기들을 세워놓은 주기장은 시베리아 벌판처럼 춥다. 그런데도 정비병들은 벌써 나와 항공기의 구석구석을 점검한다. 그는 “수고한다”면서 정비병들의 꽁꽁 언 손을 잡아주고, 장난치듯 귓불을 잡고 비벼댄다. 과묵한 그의 사랑 표현법이다.  

그리고 나서 항공기들에 일일이 손을 갖다 대본다. “간 밤에 잘 잤냐?”라는 그만의 인사법이다. “차가운 금속 덩어리지만 시동을 걸면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움직이는 게 항공기”라고  말했다.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조종사의 애환도 많다. 휴일에 외출을 해도 1시간내 복귀거리 밖으로는 나가지 못한다. 가족외출이라고 해봐야 일요일에 비행임무가 있어 영내에서 미사참례를 못할 경우 부대 밖 성당으로 저녁미사를 보러 나가는 게 고작. 그가 하늘에 떠있는 시간은 남편의 안전비행을 비는 부인의 기도시간이다.

“가정에서 아빠와 남편으로서의 점수는 20점 밖에 안될 거예요. 그러나 하느님께서 다시 살려주실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항공기와 ‘빨간 마후라’를 지독히 사랑한 군인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게 유일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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