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사제수품 50돌 맞는 두봉 주교

서로 사랑하면 행복하고 아름답게 됩니다

Home > 기획특집 > 가톨릭세상보기
2003.02.16 발행 [711호]
서로 사랑하면 행복하고 아름답게 됩니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주는 중압감 때문이었을까. 두봉 주교를 만나야 하는 날. 한참을 망설이다가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그 선택을 후회해야 했다. 포근한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1953년. 벌써 50년이다. 사제서품 50주년.

두봉 주교가 언젠가 스스로 말한 것처럼 ‘하느님이 좋아서’, ‘그리스도가 좋아서’ 걸어온 길이다. 이제 쉴 법도 할 나이.

하지만 두봉 주교는 바쁘다. 1990년 안동교구장을 사임한 이후 거의 매일 피정지도, 강의 등으로 ‘현역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사순시기가 다가오는 요즘이면 피정지도를 요청하는 전화가 하루에도 서너 통씩 걸려온다.

한 달을 기다린 끝에 어렵게 잡은 약속이었다. 2월6일 오후 1시.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점심도 거르고 두봉 주교 숙소가 있는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 성당을 찾았다.

두봉 주교는 따뜻했다. 특유의 호탕한 웃음으로 반갑게 기자를 맞은 두봉 주교는 간편한 스웨터  차림이었다.

# 회상

“점심 드셨습니까.”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곧 ‘따뜻한’ 떡국을 내왔다. 자연스레 한국음식, 한국인, 한국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난 외국인이 아닙니다. 한번도 스스로 외국인이라고 생각해 본일이 없습니다.”

두봉 주교가 수 년 전 프랑스에 갔을 때의 일이다. 기차를 탔는데 앞 자리에 있던 사람이 “프랑스인이 아닌데도 프랑스 말을 잘 하시는군요”라고 했다고 한다. 사제수품 후 줄곳 50년간 한국에서만 생활한 탓에 억양이나 태도, 습관까지 모두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고국 프랑스가 오히려 한국보다 더 낯설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두봉 주교가 한국에 온 것은 수품 이듬해인 1954년. 프랑스에서 배를 타고 출발해 일본을 거쳐 한국의 인천항까지 꼬박 두달 반이 걸렸다. 당시 한국은 전쟁 후유증으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내가 한국에 온 그 해에 태어난 사람은 아마 지금 50살이 되었겠지요. 그 때 태어난 사람들이 가장 힘든 시절을 보냈습니다. 비참했습니다. 서울 시가지엔 남아 있는 건물이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모두가 가난할 때였습니다. 그 시련을 이기고 이렇게 발전한 한국이 참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이 끝이었다. ‘농민사목의 대부’로 통하던 안동교구장 재직시절의 추억, 주교회의 J.O.C 담당 주교로 활동할 당시의 일 등 할말이 많을 법도 했지만 두봉 주교는 “다 지나간 일”이라며 입을 닫았다.

두봉 주교는 사제수품 50주년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언제 사제품을 받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더욱 중요한 화두인 것 같았다.

# 자유, 행복, 그리고 아름다움

두봉 주교는 “요즘 피정을 지도할 땐 주로 ‘자유’ ‘행복’ ‘아름다움’을 주제로 삼는다”고 말했다. 프랑스인으로서 대륙 합리론 전통을 이어받은 때문일까.

두봉 주교의 논리 전개방식은 프랑스 합리론자인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를 빼 닮았다. 두봉 주교의 ‘자유론’ ‘행복론’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자명한 명제, 그 인식에서 출발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살고 싶어합니다. 여기에는 반대 의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스스로 속박된 삶을 살아갑니다. 소위 개성이 강하다는 요즘 젊은이들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음악을 듣습니다. 이것은 개성이 강한 것이 아닙니다. 자유로운 삶이 아닙니다.”

두봉 주교는 가장 완벽한 자유인으로 그리스도를 꼽는다.

“신앙은 해방의 삶입니다. 자유인이신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 삶을 따를 때 우린 자유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우린 자유인입니다. 그리스도가 선사하는 자유를 체험해야 합니다.”

‘아름다움’과 ‘행복’ 대한 성찰도 마찬가지.

“누구나 아름답게 되고 싶고 또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또 행복하고 싶어합니다. 또한 사람들은 아름다움과 행복의 전제조건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예외없이 자녀에게 자연과 이웃, 자신을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두봉 주교는 세상이 아름다움과 행복과는 점점 더 멀리 떨어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미 그리스도가 완벽한 사랑의 전형을 보여주었는데도 말이다.

“정치 경제 문화 모두가 고발, 시기, 험담 등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사랑하면 행복할 수 있고 아름답게 될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지 못합니까.”

그럼 자유와 아름다움, 행복을 위해 우리가 ‘지금 여기서’,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안들을 무엇일까.

“잠을 많이 자야 합니다.”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요즘 사람들은 도통 잠을 자지 않습니다. 도시는 밤새워 술판이 벌어지고 학생들은 잠자지 않고 책에만 묻혀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밖에서, 자녀는 학원에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저녁을 먹습니다. 그리곤 늦게 집으로 귀가해 쓰러지듯 잠자리에 들고, 또 아침에 어렵게 일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평화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두봉 주교는 또 텔레비전과 인터넷에 대한 절제, 그리고 ‘가족이 함께 하는 식사’를 강조했다. 특히 최근 가정에서의 대화 단절 문제를 가장 안타까워했다.

#우리 교우

인터뷰를 마치고 주교관 바깥을 산책하며 건강, 취미 등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참 대단해요. 대단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더 절실히 느낍니다.”

들으라고 한 말인지 혼자 말을 한 것인지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직한 목소리였다. 무엇이 노(老) 주교의 마음을 이토록 감동시켰을까.

“우리 교우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탄복이 저절로 나옵니다. 대다수 교우들이 빚을 지고 있고 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어렵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교우들은, 심지어는 삶의 희망조차도 보이지 않는 그 상황에서도 주님께 매달리고, 참아내고, 이겨내고, 교회에 봉사합니다. 대단합니다. 우리 교우들은 아름답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런 우리 교우들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습니다.”

두봉 주교에게 한국 교회 평신도들은 ‘우리 교우’였다.


<두봉 주교>
초대 안동교구장. 주교. 파리 외방전교회. 본명 르네 뒤퐁(Rene Dupont)
▲1929년 9월2일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출생 ▲1949년 오를레앙 대신학교 졸업 및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입학 ▲1951년 로마 그레고리오 신학대학원 진학 ▲1953년 6월29일 사제수품 ▲1954년 한국 입국 ▲1955년 대전 대흥동본당 보좌 ▲1960년 대전대목구 대목대리 ▲1962년 대전교구 상서국장 ▲1967년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 ▲1969년 5월29일 안동교구장 임명 ▲1969년 7월25일 주교 수품 ▲1982년 프랑스 정부의 나폴레옹 훈장 받음 ▲1979년 교황청에 교구장직 사임 요청 ▲1984년, 1986년, 1989년 잇달아 교구장직 사임 의사 표명 ▲1990년 10월6일 교구장 사임 ▲현재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 성당에 머물며 피정 지도 및 강론을 하며 활발한 활동을 전개 중.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
오늘의 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