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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하느님, 일어나소서

참상만 불러오는 전쟁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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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16 발행 [715호]
참상만 불러오는 전쟁 막아야 한다


▲ 1)코소보 사태 당시 알바니아 피난민 행렬.2)코소보 사태 당시 마체도니아 국경 부근에서 아기를 안고 망연자실해 하고 있는 알바니아 여인.3)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반전시위에 나선 수도자들. 4) 1991년 걸프전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된 집을 둘러보고 있는 한 이라크인 가족. 5) 아프간 전쟁 직후 아프간의 한 가족이 수도 카불의 폐허가 된 집 앞에서 잠시 쉬고 있다.6) 2002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 분쟁 당시 가족과 함께 피난온 세살된 인도 소녀가 그물 망 사이로 캠프 촌의
하늘에 먹구름 같은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땅에서는 ‘Peace’(평화), ‘No War!’(전쟁반대!)라고 적힌 반전(反戰) 깃발이 물결치고 있다.

걸프지역에 30만 병력을 배치한 미국은 사실상 이라크 공격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전세계적 반전 여론에도 불구하고 개전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에 맞서 사담 후세인 정권은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면서 결사항전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공격개시’ 명령이 떨어지면 최첨단 무기로 중무장한 미국 항공모함과 전투기들은 이라크를 향해 엄청난 화력을 내뿜을 것이다. 그리고 무고한 생명들이 무차별 폭격에 쓰러지고, 피난 행렬 속에서 굶주림과 질병으로 쓰러져 나갈 것이다.

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해맑은 얼굴의 아이들까지도….

전쟁은 인간의 야만성과 광기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전쟁은 소수 권력자들의 결정에 의해 발발하지만 무고한 약자들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긴다. 그렇기 때문에 최악의 폭력이다.

또 대부분의 전쟁에는 증오·보복·패권·강자의 이익이라는 추악한 속셈이 정의, 혹은 평화유지라는 이름으로 덧씌워져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는 제2의 산유국으로 부상할 이라크에 친미 정권을 옹립, 이 지역 석유자원을 장악하려는 속셈이 깔려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세계에서 반전 여론에 들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쟁이 최악의 폭력이자 ‘야만성의 충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굳이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없다.

1994년에 총성이 멎은 아프리카 르완다 내전은 인구 750만명 가운데 5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남부여대(南負女戴)의 난민은 200만명에 달했다. 이 전쟁은 후투족과 투치족간의 광기어린 학살극이었다.

그러나 원인을 더듬어 내려가면 유럽 제국주의가 이식해 놓은 인종주의의 갈등과 UN의 침묵이 빚은 대재앙이라는 ‘뿌리’가 나온다.

인류는 ‘전쟁의 세기’였던 지난 세기의 막바지에 또 한번 전쟁의 참상을 경험했다. 1998년 발칸반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코소보 사태다. 세르비아 정부군은 신유고연방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인종청소’ 하듯 학살했다.

그 속에서 어느 꼬마는 겁에 질린 눈으로 아버지와 형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엄마가 군인들에 의해 강간을 당하는 장면을 보았다.

이 전쟁 역시 1980년 유고슬라비아의 강력한 지도자 요셉 티토가 죽자 권력욕에 눈이 먼 일부 정치인들이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바람에 발생한 추악한 폭력이었다. 그 이전까지 코소보의 알바니아인들과 세르비아인들은 한 마을에서 다정하게 살았다. 코소보 비극은 민족주의의 광기가 낳은 산물이다.

그 전쟁의 참화가 이라크를 덮치려 하고 있고, 먹구름은 한반도에도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전쟁은 결코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전쟁은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진정한 평화는 군사적 승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갈등 원인의 제거와 민족들간의 화해에서 오는 것”(「백주년」 18항)이다.

평화를 이룩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화해와 사랑이다.

(“인간이 죄인인 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는 전쟁이 인간을 위협할 것이지만, 인간이 사랑으로 결합되어 죄를 극복한다면, 폭력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에는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민족들은 칼을 들고 서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아니하리라’(이사 2, 4)한 성서 말씀이 채워질 것이다”(「현대세계의 사목헌장」78항).

그렇기 때문에 전쟁은 막아야 하고 단죄해야 한다.

“전쟁의 야만성을 단죄하고, 평화의 주 그리스도의 도우심으로 정의와 사랑에 뿌리 박힌 평화를 확립하고, 평화의 수단을 강구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과 협력하도록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열렬히 호소한다”(「현대세계의 사목헌장」77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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