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잠비아(3)- 유근복 신부

Home > 기획특집 > 세계선교현장을 가다
2003.05.04 발행 [722호]
▲ 1. 유 신부가 3월30일 프란치스꼬 전교봉사 수녀회가 세운 성 필립스 성당 축복식에서 오레건 주교와 함께 입장하고 있다. 2.기자 일행을 보며 환호하는 땀부 주민들. 유 신부의 선교활동에 힘입어 굶주림에서 벗어나 자립을 꿈꾸고 있다.
 유근복(서울대교구) 신부가 주임으로 사목하고 있는 땀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인천공항에서 잠비아 수도 루사카까지 비행기를 두번 갈아타고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만 하루였고, 루사카에서 땀부까지 이틀 동안 차를 타고 달린 시간까지 합하면 서울에서 땀부까지 꼬박 사흘이 걸린 셈이다.

 포장도로로 달릴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땀부를 약 70㎞ 남겨놓은 지점부터는 비포장 길이 얼마나 좁고 험한지, 70㎞ 가는데  3시간이 걸렸다. 오랜 승차의 지루함을 달래준 것은 차가 지날 때마다 길가로 뛰쳐나와 손흔들며 반겨준 땀부 주민들, 특히 아이들의 티없는 미소였다. 처음 보는 기자 일행을 어찌나 반가워하는지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아이들이 지나가는 차를 그토록 반길 수 있도록, 교통이 불편해 섬이나 다름없이 외부와 단절된 채 살던 땀부 주민들이 차를 구경할 수 있도록 차가 다니는 길을 닦은 이가 바로 유근복 신부다.

 유 신부 별명은 세례자 요한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미리 길을 닦은 세례자 요한처럼 틈만 나면 길 닦는 일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유 신부가 닦은 길은 대략 300㎞ 정도. 유 신부가 낡은 성당은 새로 짓지 않고 길 닦는 일에 그토록 열심인 이유는 뭘까. '길'이야말로 만사의 근본이라는 것이 유 신부 답변이었다.

 "한국이 오늘과 같은 경제 성장을 이룩하는 데 경부고속도로 없이 과연 가능했을까요.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곳 주민들에게 농사를 짓게 하고, 수확한 농산물을 외부에 판매케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필요합니다. 길이 있어야 판로가 생기게 되고, 그래야 사람들이 의욕을 갖고 농사를 짓든지 할 것 아닙니까."

 유 신부는 96년 처음 잠비아에 왔을 때 많은 선교사들이 주민들에게 무작정 퍼주는 식으로 선교하는 것을 보고는 매우 실망했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물고기만 줘서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즉 주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유 신부가 택한 사업이 바로 길닦기다.

 유 신부가 길을 닦고 농사를 적극 독려한 덕분에 땀부 지역 주민들의 삶은 유 신부가 처음 왔을 때보다 놀랄 정도로 향상됐다. 유 신부는 아직은 넉넉하지는 못한 상태이지만 5년 후 쯤이면 식량난이 말끔히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생활 수준이 나아짐에 따라 이곳에는 잠비아의 다른 지역과 달리 구걸하는 이가 없다. 구걸해야 할 만큼 어려운 이가 있다면 서로 도와주자는 유 신부의 호소도 큰 몫을 했다.

 "이곳 사람들의 생활이 향상되는 모습이 눈에 보일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옷 입는 것만 봐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사람들이 좀더 인간답게 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흐뭇합니다."

 유 신부 포부는 땀부를 잠비아의 곡창지대로 만드는 것이다. 잠비아 정부로부터 곧 1400헥타르의 땅을 불하받아 농사지을 계획인 유 신부는 10년 후면 땀부 지역 전체가 농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잠비아 전 지역에서 땀부로 몰려들어 농산물을 살 수 있도록 땀부를 옥토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면 이곳은 다른 한국 신부에게 넘겨주고 다른 지역을 개척하고 싶은 게 유 신부 꿈이기도 하다.

 그 넓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는 한국인 사제는 유 신부 한명밖에 없다. 유 신부는 이곳 땀부를 선교에 뜻을 둔 이들이 생생한 체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선교사양성센터로 만들고 싶다.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에서 영성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유 신부가 공부를 마치자마자 오지 선교사로 나선 이유는 세계화에 대한 그의 남다른 시각에서 잘 드러난다.

 "수출 많이 하는 것이 세계화가 아닙니다. 세계 곳곳에 가서 우리를 심는 것이 바로 세계화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고립돼 있어요. 특히 젊은이들이 미래지향적 사고를 갖고 멀리 나가기를 권합니다.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하느님의 사랑 또한 크게 다가올 것입니다."

 비 오는 밤길에 운전하다가 차가 고장나 그 자리에서 혼자 며칠 밤을 새우는 고생을 하기도 했던 유 신부는 이제 엔진소리만 들으면 어디가 고장인지 금방 알 정도로 일급 정비사가 다 됐다. 농사 짓는 법도 책을 읽어가면서 배운 그는 또한 프로 농사꾼이다. 서울에서 사흘 걸리는 오지에서 원주민들을 돕고자 정비사, 농사꾼 다 된 유 신부는 한국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낯선 이들을 위해 그와 함께 일할 동료 사제를 기다리고 있다.
  
  땀부(잠비아)=남정률기자 njyul@pbc.co.kr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
오늘의 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