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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와 태극기에 얽힌 사연

한국 천주교회와 태극기에 얽힌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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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10 발행 [736호]
▲ 1. 뮈텔 주교의 문장에 등장하는 태극 문양. `순교자들의 꽃을 피워라`라는 내용의 사목표어 위에 등장하는 태극은 독립신문 제호에 실린 태극기의 태극과 문양이 동일하다.  2. 안중근 의사의 혈서에 등장하는 태극 문양. 혈서에 등장하는 태극은 현재의 태극기와 양방(홍색 부분)과 음방(청색)의 위치가 같지만 방향은 반대로 그려져 있다. 3. 1946년 세례식 직후 감곡성당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신자들의 오른쪽에는 임 가밀로가 고종 황제로부터 선물받았다는 태극기(위)가 걸려 있다.
 '태극기와 교회'. 얼핏 생각하면 민족국가주의적 색채가 짙은 태극기와 '보편성(Catholicism)'에 터전하는 가톨릭교회를 연관짓는 일은 모순돼 보인다. 하지만 한국 가톨릭교회가 한반도에서 숨쉬는 이상, 교회가 태극기를 특별히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또 국기와 관련된 특별한 교회 규정도 없다.

 바티칸 등 외국에서 교회 행사가 열릴 때마다 태극기는 한복과 함께 단골 메뉴로 등장했고 한국교회 대표단의 상징은 '태극'이 되곤 했다. 이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 지난해 한·일 월드컵 때도 국내 각 성당에는 태극기의 응원 물결이 넘쳐났다. 조광(이냐시오)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국가와 교회는 충돌되는 게 아니고 국기는 나라의 상징일 뿐이기 때문에 성당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며 "민족주의가 강했던 19세기 교회는 성당에 국기와 함께 교황기를 제대 근처에 내걸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대를 중심으로 한 제단에는 국기는 물론 교황기도 걸지 못한다는 것이 전례 원칙. 다만 민족과 관련된 특별한 기념미사 때나 특별한 지향을 둔 야외미사 때 독서대 전면이나 제대 아래 왼쪽에 국기를 게양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 전례학자들의 대체적 견해다. 정의철(가톨릭대 신학부총장 겸 신학대학장, 전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신부는 "전례적으로는 제단 위에 태극기를 둘 수 없다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도 "특별한 기념미사 때 제단을 제외한 성당 안에 태극기를 둬도 되지만, 조심할 것은 전례적 의미를 잃고 주객이 전도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같은 전례적 측면만 주의한다면, 창조·발전·자유·평등·무궁이라는 다섯가지 의미를 함축한 태극기를 성당에 거는 일이 교회 전례와 크게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성모승천대축일이자 58주년 광복절(15일)을 맞아 한국천주교회와 태극기에 얽힌 사연을 되새겨본다. 이는 국민으로서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신앙의 관계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동일한 기원, 곧 하느님께로 소급하는 국가와 교회(비오 12세, 1947년)의 유대를 생각해 보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애국 애족의 정신이 신앙인들의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를 성찰해 보기 위한 것이다.

 
 ■뮈텔 주교(제8대 조선·서울대목구장)와 태극

 43년간 조선대목구장(21년)과 서울대목구장(22년)으로 재직한 뮈텔 주교는 1890년 8월4일 밀로 명의 주교로 조선대목구장에 임명되면서 제작하게 된 문장에 '태극'을 등장시켰다. 이미 1877년 선교사로 조선에 입국해 황해도와 서울, 경기도 일대에서 사목했던 탓에 우리나라 전통 문양이 태극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 이유가 됐을 것이다. 태극 문양이 들어간 주교 문장은 아직까지 한국에서 유일한 사례로, 금 바탕의 들판에 우리나라를 의미하는 태극을 가시와 덩굴로 떠받침으로써 박해 속에서 피어나는 한국 가톨릭교회를 표현하고자 했다.

 물론 이 태극 문양은 현재 태극기에 그려진 태극 도안과는 달리 하늘을 나타내는 양방(홍색 부분)과 땅을 나타내는 음방(청색)이 각각 위, 아래가 아니라 왼쪽과 오른쪽에 그려져 있다. 항일독립운동가이자 최초의 의사였던 서재필 박사에 의해 1898년 7월1일 발간된 독립신문 제호에 실린 태극기의 태극과 문양이 동일하다.

 '태극·4괘 도안'의 태극기가 공식 국기로서 제정 공포된 것이 1883년 3월6일, 그로부터 7년후 조선대목구장에 임명된 뮈텔 주교가 자신의 문장속에 태극문양을 삽입한 것은 그 의미가 참으로 깊다. 벽안의 뮤텔주교, 그의 문장속 '태극'은 일제 강점기 36년을 포함, 43년간 조선사목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청주교구 감곡본당과 태극기

 구한말의 태극기는 청주교구 감곡본당에도 인연이 이어졌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임 가밀로 신부는 한불조약 이후 조선에 입국, 고종황제로부터 직접 태극기를 하사받는다. 이 태극기가 그 유명한 감곡성당 소장본 태극기로, 안타깝게도 현재는 사진만 남아있을 뿐 원본 태극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 태극기는 1886년 조선 외교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청의 간섭을 신랄하게 비난했던 데니(Deny, Owen N)가 소장했던 태극기와 동일한 형태로, 태극 음방과 양방의 몸체가 가늘고 길게 그려져 있으며 1874년 청나라에서 발간된 룗통상조약장정성안휘편룘이라는 책 표지에 그려진 태극문양인 통상약장태극문양과 비슷하지만 음방과 양방의 위치가 다르다. 감곡본당 신자들은 일제강점으로부터 해방되자 이 태극기를 본떠 태극기를 그려 만세를 불렀고 광복의 기쁨을 나눴다. 감곡본당 소장 태극기는 1950년께 충북도청에서 빌려간 후 행방을 알 수 없다.
 

 ■안중근 의사 '대한독립 혈서'와 태극

 조국 독립을 위해 몸 바친 안중근(토마스, 1879~1910년) 의사가 1909년 결성한 단지(斷指)동맹에도 태극기가 등장한다. 안 의사는 그해 2월7일 아라사(현 러시아)에서 독립의 뜻을 함께 하는 동지 11명과 함께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기로 하고 동의단지회를 만들어 '태극'문양 밖 사방에 피로써 '대한독립'의 혈서를 썼다. 아래 왼쪽에는 안 의사의 단총, 오른쪽에는 안 의사 손가락이 각각 그려져 있다. 혈서에 등장하는 태극은 현재의 태극기와 양방과 음방의 위치가 같지만 방향은 반대로 그려져 있다. 18살 때인 1897년 세례를 받고 나서 빌렘 신부를 도와 여러 고을을 다니며 복음을 전파, '한국의 바오로 사도'로 불리는 안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은 깊은 신앙심에서 우러나온 의거로 평가되고 있다. 저격 당일 하느님께 기도하고 거사가 성공한 뒤 성호를 그으며 감사 기도를 잊지 않았던 참 신앙인 안 의사가 거사를 앞두고 행한 단지동맹에도 태극은 신앙과 민족혼의 상징으로서 등장하는 셈이다.
 

 ■메리놀외방전교회와 태극기

 미국 뉴욕주 오씨닝(Ossining)에 자리한 메리놀외방전교회 본부 성당에는 현재 메리놀회가 진출한 35개국의 대형국기가 걸려 있다. 그 중 제대 좌우 신자석 쪽 벽에 걸려 있는 태극기는 79년간 평양교구를 비롯해 인천·청주교구에서 왕성한 선교활동을 벌였던 메리놀외방전교회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아직도 한국에서의 첫사랑 '평양교구'를 잊지 않고 북한 복음화를 위해 태극기를 보며 기도를 바치는 메리놀 회원들의 의지인 것처럼 비춰지는 대목이다.


 ■기타 한국교회와 태극기 인연

 이밖에도 교회사연구자들의 반론이 있긴 하지만, 고 김원영(아우구스티노, 1869~1936년)신부의 주도로 제작된 태극기가 교황기와 함께 1935년 11월19일 황해도 정봉성당 봉헌식 때 게양됐다는 김 신부의 증손자 김순례(가타리나,78)씨의 증언(2002년 10월27일자 평화신문 참조)도 있다.그러나 이 태극기는 게양 여부보다 일제하 우리 신자들에게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일깨워주기위해 제작했다는 그 정신이 보다 중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박희봉(이시도르, 1924~1988년) 신부는 75년부터 5년간 서울대교구 혜화동본당에서 제12대 주임으로 재임하는 동안 특별한 기념미사나 행사 때 태극기를 성당에 걸었다는 조광 고려대 교수의 언급도 있다. 이와 함께 최근에도 국경일 때 태극기를 성당에 걸고 마침성가로 애국가를 부르는 사례도 종종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신앙과 '태극기'로 상징되는 애국심은 나란히 병존하면서 조화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현대 한국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교의 전통이 오랜 유럽에서처럼 국가와 조약(Concordatum)을 맺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는 법적으로 복잡하지 않고 타종교와 동등한 법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따라서 교회와 국기인 태극기의 관계도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전례에 따르면 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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