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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명훈 평신도선교사 선교현장 쌍치공소

황명훈 평신도선교사 선교현장 쌍치공소

10년전 선교사 부임 뒤 건물 짓고 신자들 재교육, 주일미사 참레를 90%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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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19 발행 [744호]
10년전 선교사 부임 뒤 건물 짓고 신자들 재교육, 주일미사 참레를 90%넘어


▲ 1. 전주교구 순창본당 쌍치공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황명훈 선교사(가운데)가 김기섭 공소회장 집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2. 쌍치공소 신자들이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와 직접 몸으로 뛰며 건립한 기와집 공소건물과 황 선교사 부부.
  내장산 자락 '쌍치'로 가는 길엔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기 시작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황금물결을 이룬 들녘에선 벼 수확이 한창이다. 냇가에 흐르는 맑은 물은 가을 햇살에 유난히 반짝인다. 여름 내 잦은 비와 태풍 '매미'로 전국이 몸살을 앓았지만 결실의 계절 가을이 어김없이 우리 앞에 와 있음을 실감하면서 전북 순창군 쌍치면 면소재지 '쌍치공소'를 찾았다. 쌍치공소는 전주교구에서 평신도선교사가 유일하게 활동하는 지역이다.

 매주일 오전7시30분 주일미사를 봉헌하는 쌍치공소는 주일미사 참여자가 평균 50~60명으로 신자들의 미사 참여율이 90%를 넘는다.

 추수가 마무리되는 10월말이나 11월초엔 추수감사제도 실시한다. 이때 신자들이 농사지어 봉헌한 쌀 등 농산물은 고창 나환우마을에 전달된다. 가난한 농민들이 또 다른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으며 나눔의 기쁨을 체험하고 있는 농촌 공소 공동체다.  

 김기섭(50, 베르나르도) 공소회장은 공소 활성화 비결에 대해 "선교사가 상주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곳에서 10여년을 함께 살아온 황명훈(44,요왕마타) 선교사와 부인 하계옥(43, 모니카)씨를 한 식구처럼 여긴다.

 "선교사님이 없었다면 이렇게 모이기 어려웠을 겁니다. 전엔 공소가 5개나 있었지만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봄·가을 판공 때만 신부님이 왔어요. 지금은 미사에 오는 신자들을 차량으로 나르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슴없이 찾아가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아요."

 하지만 황 선교사가 본당신부 요청으로 94년 이곳에 왔을 땐 살 집조차 없었다. 그만큼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냥 돌아가버릴까 주저하던 그는 마음을 굳히고 신자 집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낮에는 모두 일하러 나가기 때문에 주로 저녁에 방문했다. 쌍치면에는 33개 마을이 있다. 이 가운데 몇몇 마을은 교우촌이었다.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저녁마다 신자들과 어울려 술도 마시고 성가도 부르며 세상 사는 이야기도 하면서 때로 신자 재교육도 실시했다.

 이렇게 1년이 지난 후 판공 때 이 지역을 찾은 본당 신부는 예년과 다른 신자들의 숫자나 생기있는 모습에 놀랐다. 그리고 흩어져 있던 5개 공소를 통합해 면소재지 쌍계리에 96년 기와지붕의 공소건물을 건립했다. 당시 신자가 한명도 없던 쌍계리에 지금은 영세자들이 생기고 있다.

 공소 성당을 지을 때 공소 신자들은 도시락을 싸들고와 잡부역을 도맡아 하면서 공사비를 줄였다. 개신교측의 보이지 않는 반대 속에서도 성당이 무사히 완공되자 "사실 천주교 다녔었는데…"하면서 냉담했던 신자들도 돌아왔다.

 그후 매주 이곳에서 미사가 봉헌되자 거의 앞이 안보이는 황 선교사를 대신해 부인이 소형 승용차로 멀리 있는 신자들을 태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3년 전에는 공소신자들이 정성을 모아 15인승 승합차를 구입해 훨씬 수훨해졌지만 그래도 두번 가량 돌아야 한다.

 주일미사 후 신자들은 공소 텃밭의 농사도 같이 짓고 풀도 뽑으면서 때로 막거리 잔치도 연다. 아무리 농번기라도 주일미사 참여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신자들이다. 혹시 빠지게 되면 황 선교사의 '등쌀'에 못 배겨난다.  

 가난한 공소신자들은 이제 나눔도 익숙하다. 3년 전, 첫 추수감사제에서 자신들이 봉헌한 쌀 등을 모아 승합차에 싣고 고창 나환우마을을 찾았을 때 "정부미만 사먹던 우리에게 우리보다 더 가난한 농민들이 이렇게 좋은 쌀을 가져왔다"며 감격해 하던 수녀를 보면서 눈시울을 붉혔던 신자들은 이제 매년 김치까지 담가 보낸다.

 쌍치공소는 교육관 건물도 건립해 신자들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이 교육관은 여름이나 겨울 휴가때 도시 지역 신자들에게 수련회 장소로도 대여해 공소 수익에 보탬이 되고 있다. 주변 경관이 수려해 개인적으로 쉬러 오는 이들도 있다.

 황 선교사가 이곳에 온 뒤 쌍치공소에서 영세한 사람은 100명이 넘는다. 하지만 세례를 받아도 면소재지 학교나 면사무소 등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이는 발령받아 다른 곳으로 가고, 이곳이 고향인 젊은이는 고향을 떠나고, 노인들은 세상을 떠나 신자수는 잘 늘지 않는다. 결국 농촌에선 신자 수가 줄지 않으면 잘 하고 있는 것이다. 10년 전엔 신자 거의가 60~70대 노인 신자들이었으나 지금은 20% 정도가 30~50대 젊은층으로 연령층이 좀 낮아졌다.

 황 선교사가 요즘 예비신자 교리를 실시하는 사람은 노인 한명과 초등학생 한명, 그리고  대학원생 한명 등 세 사람이다. 도시본당처럼 정해진 시간에 예비자 교리를 실시할 수 없는 것는 당연하다.

 공소 옆 사택에 살고 있는 황 선교사 집은 오가는 사람들의 중간 정거장이다. 신자들은 5일장이나 다른 일을 보러 면소재지에 나왔다가 자연스레 들린다. 버스 탈 시각까지 한참 기다려야 할 경우는 황 선교사 부부가 모셔다 드리기도 한다. 또 아픈 환자가 생겼을 때 병원에 모시고 가기도 한다.

 "크게 무슨 일을 한다는 것보다 함께 한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죠. 그것이 공소신자들에게 힘이 되고요. 이젠 정말 가까운 이웃으로 생각하나봐요. 우리 식탁의 80%가 신자들이 갖다 준 것들이예요."

 쌍치공소 활성화에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황 선교사 부부는 그러나 지금까지 제대로 된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조립식으로 방음이 거의 되지 않는다.

   평신도선교사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 말을 아낀 황 선교사는 "병이 나도, 나이가 들어도 아무런 대책이나 신분보장이 없는데도 평신도선교사들은 선교사 직을 '성소'로 여기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뛰고 있다"며 평신도선교사에 대한 교회의 낮은 의식을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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