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상) 코피 흘려가며 땡뼡에서 페인트칠

(상) 코피 흘려가며 땡뼡에서 페인트칠

국제청소년 지원단, 동티모르 딜리서 열흘동안 봉사

Home > 기획특집 > 세계선교현장을 가다
2004.03.14 발행 [764호]
국제청소년 지원단, 동티모르 딜리서 열흘동안 봉사


▲ 1. `사랑 심으러 왔어요.`2월19일 동티모르 수도 딜리에 도착한 국제청소년지원단(살레시오회) 일행이 공항에 마중나온 동티모르 청소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 섭씨 37도가 넘는 기온 속에서 국제청소년지원단 일행이 동티모르 청소년과 함께 기술학교 목공소 도장작업을 하고있다.
"울지마.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 아니잖아." "그래, 언젠가 다시 만날 날 있겠지." "약속할게. 꼭 다시올게."

2월29일, 동티모르 딜리 국제공항. 한국과 동티모르 청소년들이 서로 얼싸안았다. 그리고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렸다. 10일 동안 쌓은 우정.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 나라 청소년들은 하나가 됐다.

한 식탁에서 밥을 먹었고, 함께 땀을 흘렸다. 언어·관습·문화, 이 모든 것이 달랐지만 젊다는 것, 그리고 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마음을 열었다.

헤어질 시간. 손을 풀고 등을 돌렸다. 한국 청소년들이 비행기에 탑승한 뒤에도 동티모르 청소년들은 공항 철조망에 매달려 비행기를 향해 계속 손을 흔들었다. 비행기 안에서도 몇몇이 눈물을 훔치며 손을 흔들었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한국 청소년들은 10일 전 동티모르에 도착한 날을 더듬고 있었다.

           ----------------------------------

섭씨37도. 발걸음조차 떼기 든 더위였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땀으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국제청소년지원단(공동단장 이명천 교수, 황명덕 신부) 해외봉사활동에 참여한 청소년 17명(중학생 5명, 고등학생 6명, 대학 신입생 및 재학생 6명)이 동티모르 수도 딜리(Dili) 시(市)에 도착한 것은 2월19일 오후 2시.

쉬운 길이 아니었다. 서울서 대만까지 비행기로 4시간, 대만에서 발리(Vali)섬 덴파샤(Denpasar)시(市)까지 4시간. 발리 덴파샤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다시 새벽에 일어나 비행기를 타고 2시간을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정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부터 지낼 일이 더 걱정이다. 더위도 더위지만 문명이라고 해야 섬 일부에 보급되는 전기와 수도시설이 전부. 당분간 시원한 샤워, 깨끗한 화장실, 맛있는 햄버거와 콜라는 기억에서 깨끗이 지워야 한다.

닭 홰치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새벽 4시30분. 동티모르 사람들은 이미 깨어나 움직이고 있었다. 로마에가면 로마법을 따른다고 했다. 오랜 비행으로 인한 여독이 눈꺼풀을 눌렀지만 국제청소년지원단 일행은 불평 한마디 없이 몸을 일으켰다.

봉사활동 첫날. 동티모르 청소년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지원단은 섬 전체 인구 중 95%가 가톨릭 신자인 신앙 섬에 온 만큼 한국교회 '신앙 청소년의 힘'을 보여주기로 다짐했다.

일행이 첫날 밤을 묵은 숙소는 살레시오회 동티모르 관구 청소년사목위원장 아드리토(Aderito M.E) 신부가 제공한 '돈보스코 트레이닝 센터'(기숙 기술학교). 기술학교에는 전쟁 혹은 내전으로 가족을 잃은 청소년들이 목공, 컴퓨터 등 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하루 일정은 기술학교 일과에 맞춰졌다.

△5시 기상 △ 6시15분 미사 △7시30분 식사 △ 8시 작업, △12시30분 식사 △2시 오후 작업 △4시30분 작업 완료 △6시까지 동티모르 청소년들과 친교 시간 △7시 저녁식사 △8시30분 묵주기도 △9시 취침. 꽉 짜인 시간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첫번째 과제는 기술학교 목공소 페인트 칠. 둘레가 100여미터에 달하는 건물 2개동을 이틀 동안 모두 흰색 페인트로 칠해야 하는 방대한 작업이었다. "우린 할 수 있습니다. 해 봅시다." 지원단을 이끈 김상윤(베드로, 살레시오회) 신부가 채근했다. 동시에 아이들이 로울러와 페인트용 붓을 들고 벽과 싸우기 시작했다. 모두들 자신있는 표정이었다.

일이란 요령이 있는 법. 무턱대고 달려든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닐 터. "물, 물…."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하나 둘 나가떨어지며 물통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반은 일하고 반은 쉬는 상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몇몇은 아예 나무 그늘에 앉아 아직 칠해지지 않은 벽만 쳐다보고 있었다.

청소년들을 나무랄 일이 아니었다. 오전 9시를 갓 넘겼을 뿐인데도 태양 빛은 살갗을 파고들 것처럼 따가웠다. 옷을 짜자 땀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아직 초벌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상태. 아이들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아 왜 비는 안오나. 하느님 비 좀 오게 해 주세요." 일행 중 몇몇이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기여서 비가 자주 온다고 했지만 하늘은 높고, 구름은 없었다.

지원단 막내 손동욱(토마스 아퀴나스, 중2, 경주 성동본당)군이 다른 사람이 휴식을 취하는데도 쉬지 않고 일하더니 탈이 났다. 코피가 난 것이다. 그 모습에 아이들이 하나둘 바뀌기 시작했다. 나무 그늘에서 앉아 있던 고등학생 언니, 형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시간이 흐르면서 붓질에 요령도 생겼고 재미도 생겼다. 모자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어디선지 수건을 구해와 머리에 둘렀다. 이곳저곳에서 농담도 터져나왔다. 일 진척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오후 4시. 지원단이 목표한 일을 초과해 하루 일과를 마쳤다. 건물 1개 동이 마치 새집인 양 흰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대단합니다. 이틀 동안 할 일을 하루에 하셨습니다." 아드리토 신부는 "하루에 일을 모두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대단하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앞으론 더 큰 어려운 일이 남았다. 이젠 동티모르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직접 들어갈 계획이다. 누군가 상상도 못할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오늘은 기술학교 기숙식당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먹었지만, 앞으론 식사도 직접 해결해야 할지 모른다.

지원단 일행은 저녁 식사 시간에 동티모르 청소년과 함께 섞여 앉아 식사를 했다. 지원단은 김치와 깻잎, 멸치를 꺼냈고, 동티모르 청소년들은 '나시 고랭'(Nasi Goreng, 밥·닭고기·계란·동티모르 간장 등을 섞은 볶음밥의 일종), '아얌 고랭'(Ayam Goreng, 소금으로 간을 맞춘 닭고기 튀김), '미 고랭'(Mie Goreng, 삶은 국수를 볶아 조리한 음식) 등 자기네 토속음식을 내놨다. 서먹서먹했다. 말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했다.

식당 건물 벽엔 도마뱀 수십마리가 붙어 있었다. 동티모르인에겐 해충을 잡아 먹어주는 고마운 동물이다. 지원단 일행은 이 도마뱀에 적응하기까지 여러날이 걸려야 했다. 지평선까지 별이 반짝였다. 점하나 찍을 자리 없는 하늘. 도마뱀 우는 소리와 함께 이국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계속)


<동티모르는 어떤 나라인가>

 o 면적 : 1만5387㎢(우리나라 강원도 크기)
 o 인구 : 80만명
 o 수도 : 딜리
 o 공용어 : 전체 국민 중 테툼어(현지어) 80%, 인도네시아어 40%, 포르투갈어(공용어) 10%, 영어 2%(대부분 성직자와 가톨릭계 학교 재학생) 가능.
 o 종교 : 가톨릭
 o 평균수명 : 54세
 o 한국교민 : 단기 체류자 20여명
 
동티모르에서는 '제한송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수도 딜리시도 밤 12시엔 어김없이 암흑으로 변했다. 아름다운 별을 보기엔 더없이 좋았지만 그 암흑은 동시에 암울한 동티모르의 현주소를 드러내고 있었다. 전체 인구 중 3분의1이 산간오지 주민. 도시 거주민들도 독립 전쟁과 내전으로 경제기반이 붕괴돼 처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텃밭에서 가꾼 옥수수로 끼니를 챙기고 있었고, 아이들은 월 50센트(한화 약 540여 원)가 없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만난 아이들은 대부분 신발이 없었고, 수저가 없어 손으로 밥을 먹었다.

취재 도중 만난 동티모르 대통령 자문위원 비르질리오(Virgilio Dias Maecal, 50)씨는 "국민의 50% 이상이 하루 1달러(한화 약 120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벌고 있다"며 "한국교회가 가톨릭국가인 동티모르를 조금만 도와 준다면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청소년 기숙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살레시오회 마르코스(Marcos) 신부는 "미화 3000 달러만 있으면 학교 강당 하나를 지을 수 있다"며 "동티모르는 현재 외부 도움이 없으면 교육마저도 붕괴될 상황"이라고 말했다.

1500년대부터 포르투갈 지배를 받았지만 평화로웠던 섬 동티모르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은 1975년. 포르투갈 국내 정세가 악화된 틈을 타 인도네시아가 그해 12월 동티모르를 침공, 이듬해 7월 인도네시아령으로 편입시킨 것이다. 이때부터 시작된 독립전쟁으로 동티모르인 20만명 이상이 죽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1996년)인 동티모르 벨로 주교를 비롯해 등 국제사회 압력에 굴복했다. 독립 여부 주민투표가 1999년 유엔 감시하에 실시됐고, 그 결과는 독립 찬성으로 나타났다.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독립을 거부하는 친인도네시아 자치파 민병대가 무자비한 살상, 방화, 약탈을 자행(1000∼2000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 이를 피해 약 25만 동티모르인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동족상잔의 이 비극은 한국 상록수부대를 포함한 다국적군이 동티모르에 진입하고 나서야 그칠 수 있었다. 이후 동티모르는 2002년 5월 독립을 선포, 21세기 첫 독립국가가 됐다.

현재 동티모르는 우기다. 하지만 동티모르에 있는 열흘 동안 비는 이틀밖에 오지 않았다. 이상기후였다. 지금 동티모르는 사랑의 단비를 목말라하고 있다.
 
■ 동티모르 후원문의 및 후원계좌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02-833-6006, 국민은행 758401-04-006021(예금주: 한국 천주교 살레시오회)


<국제청소년지원단>

국제청소년지원단(Korean Supporters For International Youth)은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전세계 청소년들을 돕고자 중앙대 이명천(광고홍보학과) 교수와 살레시오회(한국관구장 황명덕 신부), 박경석(살레시오회, 돈보스코 정보문화센터) 수사가 중심이 돼 결성한 봉사단체다.

국제청소년지원단은 아시아를 비롯해 중남미와 몽골 등 빈곤지역 청소년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문화 교류 등을 통해 현지 청소년들에게 자립 환경을 마련해 주는 한편, 한국 청소년들에게는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는 나눔의 소중함을 체험하고 성장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국제청소년지원단은 국제 살레시오회 공동체와 연대, 살레시오회 정신에 따라 활동을 펼쳐나가되 종교나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단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문의: 02-833-6006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
오늘의 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