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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비극의 땅에 사랑을 심고 왔어요

(하) 비극의 땅에 사랑을 심고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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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21 발행 [765호]
▲ 1. `우린 한 신앙안에 한 형제입니다.` 국제청소년지원단(살레시오회) 동티모르 봉사활동을 이끈 김상윤 신부(살레시오회)가 동티모르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있다.2. 동티모르와 한국 청소년이 함께 땀을 모았다. 국제 청소년지원단 이정혜(로사,대학신입생, 인천 역곡2동본당)양이 동티모르 청소년과 함께 공소건물 마당 화단 조성작업을 하고 있다.3. 재의 수요일에 성당을 찾아 이마에 재를 바르는 동티모르 신자들. 동티모르 사람들은 성당에 올 때 집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온다.4. 살레시오 수도회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기술을 배우고 있는 동티모르 청소년들. 이들 어
■ 동티모르 후원문의 및 후원계좌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02-833-6006, 국민은행 758401-04-006021(예금주: 한국 천주교 살레시오회)

<지난주에 이어>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금까진 시범경기다. 긴장해야 한다. 마술리둔(MASULIDUN) 마을로 간다고 했다. 극빈층 62가구가 살고 있는 전형적 동티모르 마을. 아이들이 몰려나왔다. 열에 아홉은 맨발이었다. 산드라, 실비아…. 유치원생 혹은 초등학교 1학년 정도인줄 알고 나이를 물었더니 10살 11살이라고 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는데, 어떻게 키가 클 수 있겠어."

지원단에 함께 봉사활동에 나선 서울대교구 조형균 신부(안식년)가 안타까운 듯 아이들을 쳐다봤다. 마을엔 제대로 된 급수시설 하나 보이지 않았고, 대나무로 대충 엮어 만든 집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지원단이 할 일은 마을회관 겸 공소로 사용되는 건물을 새 단장하는 일. 땀 잔치가 다시 시작됐다. 10분, 20분…. 거미줄을 걷어내고, 벽에 묻은 오물들을 털어냈다. 조별로 나눠 벽과 의자에 페인트를 칠하고, 양수기를 설치하고, 전기를 가설했다. 이것도 저것도 할 줄 모르는 저학년 지원단은 동티모르 청소년들과 함께 공소 건물 주변에 화단을 조성했다.

따갑다 못해 세상을 녹일 것 같은 햇볕을 피하기 위해 얼굴을 온통 수건으로 감쌌지만 그래도 흐르는 땀을 막을 수 없었다. 이름 모를 벌레들이 계속 몸으로 달려들었다.  "도저히 못하겠어요." 한국 청소년 몇몇이 주저앉았다. 건강한 체력을 자랑하던 대학생 오빠와 누나 얼굴에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일 속도를 늦출 순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는 만큼 그 안에 일을 모두 마쳐야 했다.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말없는 것으로 유명한 안일평 신부(살레시오회)가 입을 열었다. 지친 지원단 청소년들의 어깨를 두드리는 안 신부 손에서 청소년들에 대한 진한 사랑에 배어났다. 점심까지 거르며 일은 계속됐다.

손동욱(토마스, 아퀴나스, 중2) 군이 갑자기 안절부절이다. 쉬고 싶은데 함께 옆에서 일하는 동티모르 또래 아이가 도대체 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말이라도 통하면 '좀 쉬었다 하자'고 할 수 있을 텐데 답답할 노릇이다. 하지만 쉬운 방법이 있었다. "아…, 아…, 허리, 허리." 손가락으로 자신의 허리를 가리키며 들고 있던 삽을 놓았다. 그제서야 동티모르 친구도 알았다는 듯, 흰 이빨을 드러내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문제가 생겼다. 어쩐지 너무 헤프게 쓴다 싶었더니 시너와 페인트가 떨어졌다. 현지인이 급히 시장에 가서 부족한 물량을 구해왔다. 덕분에 잘 쉬었다. 지원단은 다시 힘을 냈다.

"만세! 우리가 해냈다." 2월27일 오후 4시. 지원단은 서로 부둥켜안고 기쁨을 만끽했다. 공소건물이 싹 바뀌었다. 전기가 들어오고, 문은 방금 새로 만든 듯 반짝였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감사합니다." 어디서 배웠는지 한국말로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그리고 박수와 박수가 이어졌다. 잔치 분위기였다. 유진규(요셉,서울 봉천동본당) 주 동티모르 대사도 직접 찾아와 함께 기뻐하며 축하했다.

마지막 밤. 동티모르 청소년들이 조촐한 환송식을 마련했다. 지원단 일행 한명 한명에게 국빈에게만 준다는, 영대 형식의 전통 목도리를 선물했다. 춤을 추었다.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빙글빙글 돌았다. 노래도 불렀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가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동티모르 청소년들도 '사랑해'를 따라했다. 몇몇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지원단 일행을 끝까지 보살펴 준 동티모르 아드리토 신부가 입을 열었다. "한국 군인들의 친절한 도움으로 동티모르인에게 한국은 친구의 나라입니다. 한국군은 떠나갔고, 이제 여러분들이 그 가교를 다시 놓았습니다. 동티모르는 여러분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카를로스, 떼뚜, 로페스, 프랭키, 프란치스코, 이녜스, 프랭키…. 동티모르 청소년들이 한국 청소년과 악수하고 또 부둥켜 안았다. 그리고 한명 한명 이름을 불렀다.

"표한미 요세피나, 정연준 대건안드레아, 최지희 클로틸다, 전인혜 율리아나, 김덕화, 허영란 유스티나, 김승우 대건안드레아, 신한수 그레고리오, 곽지훈 요한, 신종현 제르비노, 이유나 레아, 심정민 데레사, 이정혜 로사, 신은경, 서승연 마틸다, 장현정, 박성관, 손동욱 토마스아퀴나스." <끝>



<동티모르 가톨릭교회>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재의 수요일을 맞은 지원단 일행은 딜리시 외곽에 있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성당'에 갔다. 놀라운 일이었다. 열악한 상하수도 문제로 평소 며칠씩 옷을 제대로 갈아 입지 않고, 양말은 아예 신지도 않았던 동티모르 사람들이 전혀 몰라보게 변한 것이다.

바지를 입은 여자는 볼 수 없었다. 모두 화려한 드래스 일색. 남자들도 깨끗한 옷을 입고 있었다. 여자 아이들은 형형색색 머리핀으로 한껏 멋까지 부렸다. 동티모르 사람들은 성당에 올 때 입는 옷이 따로 있다고 했다.

1950년대 한국교회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모습이다. 사제들은 외국 원조품을 신자들에게 나눠주고, 신자들은 집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경건한 태도로 미사에 참여했다. 또 묵주기도를 즐겨 바치고, 성모신심이 강하다는 것도 빼닮았다.

다른 점은 동티모르가 전체 국민 중 95%가 가톨릭 신자인 신앙섬이라는 것.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동티모르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벨로 주교가 독립 운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실제로 동티모르는 교회에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다. 특히 교육, 사회복지, 의료 분야는 교회가 없으면 기반이 무너질 정도다.

국가와 교회, 사회가 한 축으로 움직이는 나라. 살레시오회 박경석 수사는 "우리나라도 과거 1950년대 외국 교회의 도움으로 이렇게 일어설 수 있었다"며 "환율 차이나 경제적 수준으로 비춰볼 때 비교적 적은 노력으로도 동티모르 재건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만큼 한국 신자들의 많은 기도와 관심을 바란다"고 말했다.





<봉사 체험기 / 심정민 소화데레사 서울대치2동본당>

엄살을 부릴수가 없었다. 한국이었다면 아마 '엄마~'소리쳐 부르며 '시원한 것 먹고 싶어 물 주세요'라고 했을 것이다. 동티모르에 도착한 첫째 날,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열흘 동안 어떻게 일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내가 주로 한 일은 페인트 칠이었다. 땀과 페인트가 온몸에 범벅이 되었고, 그럴 때마다 짜증이 나 견딜 수 없었다. 내 몸에서 그런 심한 땀냄새가 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중도에 포기하고 싶었던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예 '몸이 아파서 일을 못하겠어요'라고 말하고 쉬고 싶었을 정도였다.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게 한 것이 '사귐'이었다. 지원단 일행과 땀 속에서 함께 일군 우정.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동티모르 청소년들과 함께 밥먹고, 노래하며 지낸 소중한 추억들. 동티모르 친구들은 나를 진정으로 친구로 대해 주었고, 나를 사랑해 주었다. 얼굴색과 언어, 문화가 달랐지만 우리는 젊다는 것 만으로도 쉽게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은 열악한 상황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을 수조차 없었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고 돌밭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 얼굴은 밝았다. 난 한국에서 비교적 풍요롭게 살아왔다. 그동안 내게 주어진 좋은 환경을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내가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감사'가 무엇인지 이젠 조금은 알 것 같다.

처음엔 동티모르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실상은 내가 더 많이 배웠다. 열심히 일한 다음에 다가오는 성취감, 땀의 아름다움, 나눔의 기쁨,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신앙섬, 동티모르는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한국에 왔을 때 한 친구가 "동티모르 봉사활동이 어땠느냐"고 물었다. 난 자신있게 대답했다. "나…, 동티모르를 사랑하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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