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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병 투병 중 박사학위 받은 이원규씨

루게릭병 투병 중 박사학위 받은 이원규씨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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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5 발행 [788호]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있노라'


▲ 이원규씨가 아내와 함께 루게릭병 환자를 위해 직접 개설한 `한국루게릭병 연구소` 홈페이지를 보고 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건 가운데 손가락과 발가락뿐. 남들처럼 자유로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수도, 책장을 넘길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박사가 됐다.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 하나로 화상 키보드를 누르고, 발가락으로 책장을 넘겨가며 논문을 완성해 냈다.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있노라'고.

 온 몸 근육이 굳어지는 '루게릭병'과 투병하면서 8월25일 성균관대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원규(아우구스티노, 45, 서울 신천동본당, 서울동성고교사 휴직)씨의 희망 노래다.

 이씨는 동성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재직 중이던 99년 말 루게릭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술이 취한듯 혀가 꼬이기 시작해 이상을 느끼긴 했지만 불치병에 걸린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발병 초기만해도 병의 진척이 느려 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지만 지난해부터 병세가 급격이 악화돼 누구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을만큼 온 몸의 근육이 굳어 버렸다.

 '수업 시간 내내 아이들을 웃길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로 유머 감각이 뛰어난 그였지만 병이 진척될수록 발음이 꼬여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때는 절망적이었다. 결국 이씨는 그해 말 18년간 지켜온 교단을 떠나야 했다. 평생 교직의 길을 걸으며 아이들과 함께 하고 픈 그였기에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절망 대신 희망을 택했다. 2000년부터 계속해 온 박사과정을 끝까지 마쳐 그토록 원하던 논문을 손에 쥐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이씨는 밥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논문을 쓰는 데 보냈다. 정상인이 10분이면 쓸 수 있는 분량을 2~3시간 이상 걸려 힘겹게 써내려가야 했다. 그럴 때마다 이씨 머리 속에는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있노라'고.

 "루게릭병은 발병 후 보통 2~3년 안에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무서운 병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이렇게 버틸 수 있었던 건 모두 하느님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오기를 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절 사랑해주시는데 힘들어도 반드시 해내야 되겠다고요."

 4년간 자신과의 힘겨운 투쟁을 이겨낸 이씨. 하지만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었다. 발병 후 6년간 곁에서 손과 발이 되어준 아내 이희엽(크리스티나, 41)씨가 없었다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씨는 졸업 소감문에 '사랑하는 아내가 없이는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것도 아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적었다. 고마운 마음을 직접 말로 전하면 좋으련만, 이미 굳어버려 정상 발음을 낼 수 없는 입과 혀가 요즘따라 더 야속할 뿐이다.

 평소 감기 한번 안걸릴 정도로 건강했던 남편이었기에 하루 아침에 불치병에 걸려 손발을 쓸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은 아내 이씨에게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이요,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 아픈 아빠를 보며 울먹이던 두 아들 진우(그레고리오, 14)·진성(암브로시오, 12)군도 그런 엄마를 보며 이제 절망 대신 희망을 가슴에 품었다.

 "아픈 남편과 함께 꽃동네에 간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기도하면서 하느님 음성을 들었어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 가족을 지켜주겠다'고 하시더군요. 우리에게 이런 시련이 없었다면 하느님의 크신 은총을 깨닫지 못했을 거예요. 오히려 하루하루가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기에 이들 부부에겐 감사해야 할 이들이 너무 많다. 박사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아끼지 않으면서 매년 연하장을 보내 격려해 주는 전 교장 김운회 주교, 언제나 따뜻하게 격려해 주는 본당 한정관 주임신부, 종종 전화를 걸어와 힘과 용기를 주는 동료 교사들…. 모두가 희망을 일구는 데 밑거름이 되어 준 은인들이다.

 이씨에겐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음성변환장치를 사용해어디서든 강의를 하며 꿈에 그리던 교단에 다시 서는 것이다.

 "평생을 배우고 가르치며 살아간다면 그보다 더 신성하고 축복받은 삶은 드물겁니다. 또 지금보다 더욱 열심히 병을 이겨내서 주님 영광을 드러내며 살고 싶어요. 그러나 만약 최악의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이씨는 성서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지만 더 이상 두렵지는 않다. 늘 곁에서 손과 발이 되어주는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세상 그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하느님이 계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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