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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고사' 위기 놓은 남대문, 고속터미널, 노량진수상시잔

르포 '고사' 위기 놓은 남대문, 고속터미널, 노량진수상시잔

'주님께서 노력한만큼 주실 것' 믿음만이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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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1 발행 [798호]
'주님께서 노력한만큼 주실 것' 믿음만이 희망


▲ 1. 10일 서울 고속터미널 4층 혼수상가 내 신라주단에서 옆가게 박성자씨와 정겨운 대화를 나누는 김희현 고속터미널성당 총회장(왼쪽)2. 10일 서울 남대문시장 E동지하상가에서 조인선씨가 겨울 스웨터를 놓고 옆 가게 이의광 (오른쪽)씨 등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3. 노량진수산시장 백형기(오른쪽) 신부가 11일 허성일 바오로 고문과 함께 본당 신자인 손복임씨 가게 `주희네` 를 찾아 격려하고 있다.
 물건이 하도 잘 팔려 잠 안자도 좋은 시절도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긴급구제금융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었다….

 전통 재래시장이 '질좋고 값싸게'를 내세운 대형할인점과 편의점에 시장을 내준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나마 물건 값 깎는 재미와 쏠쏠함, 서민적 정취, 백화점에선 찾아볼래야 볼 수 없는 옛 풍물로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켜온 시장이 '고사' 위기에 처했다. 재래시장의 위기의식은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일부 재래시장은 극도 소비침체로 매출이 예년에 비해 절반, 혹은 3분의1 수준으로 격감했다.

 오죽하면 시장 신자상인들의 위기의식을 보다 못해 시장사목 전담 준본당 공동체인 서울대교구 6개 시장성당 총회장들이 최근 신자점포에 가톨릭 관련 스티커 부착, 인근 본당과 자매결연, 시장본당간 교류와 정보 네트워크화 등을 포함한 '신자상인돕기운동'을 전개키로 결의했을까.


 
 우리나라 재래시장 일번지격인 남대문시장. 1평 남짓한 가게에 웃돈(프리미엄)이 1억이나 붙었었지만 이젠 웃돈은 고사하고 가게를 팔래야 팔 수도 없다. 도무지 '손님'을 찾아볼 수가 없다. 비가 내리는 데도 가게 바로 앞까지 나서는 호객 경쟁이 치열하기만 하다.

 "IMF 당시 매출의 3분의1도 안된다면 말 다했지요. 11월 들어서 더 해요. 가게들 90% 이상이 적자고, 나머지 10%도 현상유지에 만족해요. 종업원을 내보내고 '나홀로' 사장을 하는 데가 태반입니다."

 남대문시장 대도종합상가 E동 지하 '춘하추동' 매장을 운영하는 이의광(세베리노, 61)씨는 이같이 말하며 신자상인돕기운동에 가느다란 희망을 갖고 있다고 했다. 묵주를 낀 신자 고객들을 보면 너무 반가워 가능한한 저렴하고 좋은 물건을 팔아보려 한다. 이씨 가게 바로 옆에 위치한 모피점 '밀라노' 조인선(수산나, 56)씨는 "올해는 모피가 유행이라서 가져다 놨는데 고객이 없으니까 도무지 팔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지난해에 비해 올해가 다르고, 지난달에 비해 또 이번 달이 다르다"고 말한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상가를 찾았다. 4층 혼수매장 역시 드문드문 지나는 고객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김희현(보나, 56)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성당 총회장의 한복집 '신라주단'을 찾아갔다. 잘 될 때는 하루에 10팀이나 와서 한복을 맞췄다는데, 이제는 한달에도 그만큼이 안 된다. 그래도 명절이나 혼수철 때 그간 안면을 익힌 단골로부터 한복 주문이 이어지고 있어 불경기를 극복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고 김 회장은 밝혔다.

 터미널 혼수 상가에서만 17년째 한복집을 해온 그는 "우리 고속터미널성당에서도 그간 인근 잠원동본당 수첩에 신자상인목록을 넣기도 하고 신자 상인들에게 신자임을 드러내는 그림을 새긴 화분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는데 그게 쉽지만은 않다"며 "요즘은 살아가는 게 기적같다"고 말했다.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에서 '돌체비타'라는 같은 상호로 가게 둘을 경영하는 황광수(프란치스코, 45)ㆍ박종숙(도미니카, 43)씨 부부는 지난 10월에만 돌체비타 근처에서 5~6개 매장이 폐업했다고 전했다.  황씨는  "전엔 상가상인들이 장사가 안된다는 말을 하면 엄살 같았는데 지금은 힘겨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고 소비에 관한한 국민들의 의식이 무기력증에 빠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황씨는 "버티기엔 너무 절망적이고 버겁지만 그래도 한가지 희망적인 것은 주님께서 노력한만큼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고 의욕만은 살아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았다. 11일 오전 내내 수산물 판매를 마친 신자들은 마침 성당에 모여 있었다. 레지오와 자매회 회합이 있기 때문. 이들은 어려워도 주님 주시는 대로 산다고 했다. 25년째 냉동수산물 중매인으로 활동하는 박정수(요셉, 50) 노량진수산시장성당 총회장은 "신자들이 우리 신자 상인들의 점포를 이용해 주신다면 정말 욕 안먹게 서비스 잘 할 자신있다"며 빠듯빠듯하게 돌아가는 시장상황에서 신자상인돕기운동이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했다.

 성당 회합을 마치자마자 손복임(마리아, 49)씨는 급히 자신의 점포 '주희네'로 돌아가 오징어와 꽁치 판매에 나선다. "열마리 1만3000원, 다섯마리 7000원.… 냉동이 아닙니다.… 비싸지 않아요." 고객들을 대하는 그의 모습에선 삶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격려차 그를 찾은 백형기(노량진수산시장성당 주임, 작은형제회) 신부는 "보통 밤샘을 하고 새벽업무를 마치는 시간인 오전 11시에서 낮 12시까지 신자 상점을 찾아 격려하고 있는데 올해 경기침체는 굉장히 특수한 상황이다"며 "신자들이 신자점포에서 서로 믿고 신뢰하며 적정가로 좋은 물건을 사고 신자 점포를 이용해줄 수 있다면 좋겠고, 이게 좀더 파급되면 시장사목 또한 활성화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한편 교구 시장사목 사제단은 11일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성당에 모여 신자상인들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6개준본당 인터넷 누리방(홈페이지)을 개설해 시장사목 현황과 신자상인 목록을 게재하는 방안을 포함한 각종 사목방안 모색에 나섰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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