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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자폐 딛고 우뚝 일어선 은성호씨

중증 자폐 딛고 우뚝 일어선 은성호씨

애끓는 모정이 '기적' 일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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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06 발행 [812호]
애끓는 모정이 '기적' 일궜다


▲ 1.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을 연주하는 은성호씨를 어머니 손혜숙(오른쪽부터)씨와 성분도복지관 관계자들이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2. 은성호씨가 성분도복지관 수녀의 도움을 받아 사과 깎는 연습을 하고 있다. 3. 마라톤대회에서 장애를 떨쳐 내려는 듯 힘차게 달리고 있는 은성호씨.
 마라톤 하프 코스 8회 완주, 베토벤과 모짜르트 명곡을 연주할 정도의 피아노 실력, 바이올린은 물론 클라리넷 연주 수준급, 신기에 가까운 인터넷 정보 검색은 물론 컴퓨터 프로그램 제작도 가능한 컴퓨터 운영 능력….

 보통 사람도 쉽게 이루지 못할 재주다. 하지만 이 모든 재능을 한꺼번에 가진 사람은 정신지체 2급 장애우다. 올해 22살인 은성호(스테파노, 수원 서둔동본당)씨가 주인공.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레인맨'으로 불린다. 자폐증(현실과 동떨어진 내면세계에 몰입하는 정신질환) 환자의 삶을 다룬 영화 '레인맨'(1988년 제작)의 주인공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대인관계는 물론 사회성, 학습력, 인지력 등이 떨어져 스스로 신변관리가 불가능한 전형적 자폐 환자다.

 상대방과 눈도 마추지지 못하고, 의사소통은 물론 작은 일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그가 어떻게 이런 재주를 갖게 됐을까. 불가능을 가능케 한 것은 어머니 손혜숙(마리아, 49)씨의 끈질긴 노력과 사랑 덕분이다.

 "생후 20개월인데 불러도 쳐다보지 않고 말수가 적어 처음에는 청각에 이상이 있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진단 결과는 자폐였습니다. '자폐 중에서도 최악의 상태'라는 의사의 말은 청천벽력 그 자체였습니다."

 손씨는 아들을 끌어안고 매일 울었다. 하늘을 원망했다. 임신 중 소홀하지 않았나하는 자책감에 울부짖었다. 하지만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의사는 '절망'을 말했지만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희망만 심어주고 싶었다.

 대소변도 못 가리고, 말도 못하고, 손만 놓치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성호를 업고, 좋다는 특수교육기관은 모두 찾아 다녔다. 평생 '장애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비장애인과 '분류된 삶'을 살아야 하는 아들에게 단 한번이라도 동등한 삶을 살게 해주고 싶어 일반 초등학교에 진학시켰다.

 '장애인과 함께 공부할 수 없다'며 반대하는 학부모를 찾아다니며 눈물로 호소했고, 5분도 가만있지 못하는 성호를 붙들고 같이 수업을 받는 열성으로 6년을 버텨 졸업장을 받았다. 방과 후에는 특수교육을 병행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 왜 돈을 퍼붓느냐'는 주위 만류에도 손씨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대인관계나 사회성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였기 때문이다.

 "전혀 집중 못하는 성호가 음악시간에 피아노 치는 선생님을 유심히 보더니 피아노를 가르친 적도 없는데 선생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 곡을 그대로 연주했어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손씨는 그 즉시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악보 보는 법을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악보를 통째로 외우고 거침없이 연주해내는 놀라운 발전을 보였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아들이 '잘하는 것'이 생긴 것이다. 그간 눈물로 지새우며 참아냈던 고통의 시간이 사라지고 새로운 '희망'이 자리잡는 순간이었다.

 성호가 TV에 방영되는 컴퓨터 교육에 유달리 관심을 보이자 어머니는 컴퓨터도 배우게 했다. 학습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불과 몇 달만에 국내외 인터넷 사이트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컴퓨터 프로그램도 스스로 만드는 수준에 이르렀다.

 또 특수학교에 진학한 성호씨는 고1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운동량이 부족해 간단한 조깅 정도만 가르치려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같은 팔과 다리를 움직일 정도로 달리기에 소질 없던 성호는 전국장애인체전에 경기도 대표 선수로 출전할 정도가 됐다. 내친 김에 마라톤에도 도전, 하프 코스를 8번이나 완주했다.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영화 '말아톤' 주인공처럼.

 이 뿐 아니다. 바이올린, 클라리넷 연주도 도전했고, 배트민턴과 탁구도 배웠다. 성호씨가 그간 각종 대회에서 받은 상만 50여개가 넘는다. 제12회 전국장애인종합예술제 음악부문 우수상(1999년), 전국장애청소년 정보검색대회 금상(2002년), 교육인적자원부 주최 제1회 전국특수교육정보화대회 우수상(2003년)….

 성호씨의 피아노 교사인 최란씨는 "음대에 진학,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을 정도의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정신지체 장애우가 음대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이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라면서 "많은 이들의 관심과 후원으로 성호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길이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성호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운영하고 있는 성분도복지관에서 사회적응 훈련을 받고 있다. 이곳 교사들은 한결같이 "성호의 재능은 마치 끊임없이 생명수를 토해내는 샘물같다"고 입을 모은다. 퍼내면 퍼낼수록 샘솟는 재능을 찾느라 성호씨는 지금도 노력 중이다.

 이제는 또렷이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버스를 갈아타며 혼자서도 복지관을 오갈 정도로 호전된 '레인맨' 성호씨. 그에게 더 이상 자폐는 장애가 아니었다. 끊임없는 도전과 희망만 남아 있을뿐.

글=박주병 기자 jbedmond@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아들의 장애 앞에서 절망을 희망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일궈낸 어머니 손혜선씨. 그는 아들을 '보물'이라고 표현했다. '나를 살게 한 힘'이 되고 '축복이 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주저 앉고 싶을만큼 힘들었던 여정을 이기고 아들에게 한없는 사랑을 고백하는 어머니의 편지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듯하다. 2001년 가을 어느날 아들에게 보낸 편지 한통을 옮겨본다.

 아들아! 내 아들아!
 언젠가 너를 부르며 목이 쉬도록 울고 또 울었을 때도 너를 그렇게 불러댔다. 이제는 한탄 섞인 목소리로 너를 부르지 않는다.
 엄마에게 축복받은 삶을 일깨워 준 너를, 부족한 내게 맡겨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단다. 네가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살거다.
 오늘 어떤 엄마가 애물단지 운운하며 힘들다길래, 왜 지금 우리 아들이 보물단지인지 힘주어 설명했단다. 다시 태어난대도 우리 성호 엄마로 태어나 지금보다 더 제대로 엄마 노릇해주고 싶다고 했더니, 어떤 엄마는 정말 그러냐고 물었다.
 아들아! 우리 아들 성호야!
 '달리기 힘들지?'하면 참고 달려야 된다고 엄마를 가르치는 예쁜 아들아!
 마술사 같은 선생님들께 평생이 걸려도 다 못갚은 은혜를 받으며, 지금도 발전하는 너 때문에 행복하다. 오늘도 컴퓨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열심인데 먹는 일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잘할 줄 믿을테니까 제발 너 안에서 바깥 세상으로 나와서 같이 살자. 아름다운 것이 더 많은 세상에 언제쯤 어울리자 할거니? 조금씩이라도 다가와 주렴. 사랑하는 아들아, 건강하게 커주어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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