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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드넓은 초원에서 '물고기' 낚는다

<상> 드넓은 초원에서 '물고기' 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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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5 발행 [822호]
▲ 1. 김성현 신부가 몽골 전통가옥(게르)에서 예비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2. 성당을 가득 메운 몽골 신자들. 김성현 신부가 3년 동안 신자 수 `0`에서 일군 기적이다.
 '선교.' 신앙인의 소명이다(루가 21,13 참조). 200여년 전 외국 선교사들이 낯선 한국 땅에서 피를 흘리며 순교한 것도, 1988년 5월15일 평화신문이 창간된 것도 바로 이 소명 때문이다.

 2005년 5월, 몽골 대초원에서 선교 사명을 위해 땀 흘리는 선교사들이 있다. 200여년 전 한국에 뿌려진 신앙의 싹이 이제 꽃을 피워, 그 홀씨가 세계로 흩어지고 있는 것.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들의 열정을 그대로 빼어 닮은 선교사들의 삶을 통해 평화신문의 창간 정신을 되돌아본다.



 쉽지 않은 길이었다. 바람이 막았다. 몽골로 가야할 비행기는 예정시간을 넘겨 하루가 지나도록 이륙조차 못하고 있었다. 몽골 현지에 돌풍이 불고 있다고 했다. 비행시간 4시간에 불과한 몽골에 가기 위한 길은 그렇게 멀었다.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에 도착한 것은 예정보다 하루 늦은 4월28일 저녁.

 "먼 길 고생하셨습니다." 울란바타르 항올(hangol) 지역 성당(성모승천본당) 주임 김성현 신부(대전교구)가 검게 그을린 얼굴로 반갑게 맞았다. 몽골 사람인지 한국사람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벌써 3년. 겨울이면 영하 40℃까지 내려가는 혹한, 기름기 가득한 낯선 몽골 음식, 불편한 잠자리를 견뎌냈다. 이제는 몽골어도 수준급이다.

 "왜 이곳에 오셨습니까." 기자가 물었다.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신명나게 일합니다." 김 신부 얼굴에는 활기가 넘쳤다. "내가 가는 곳마다 공동체가 생깁니다.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고기를 낚을 수 있습니다. 200여년 전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몽골은 선교 황금어장입니다. 제가 세례주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훗날 몽골 교회의 초석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 피곤을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김 신부는 몽골 내 3곳 성당 중 한 곳을 사목한다. 몽골 면적을 고려할 때 한국 2~3배에 해당하는 지역이 관할구역이다. 성당으로 향했다. 마침 저녁 미사를 앞둔 시각. '가득했다'(요한 21장 참조). 성당이 좁았다. 3년 전 이곳 신자 수는 '0'. 지금은 100여명으로 늘었다. 예비신자를 포함하면 150여명에 이른다. 신앙이 들불처럼 번지던 초기 한국교회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하늘의 별따기'다. 적어도 몽골에서 세례는 엄청난(?) 열정이 없으면 들어가기 힘든 '좁은 문'이다. 교리 과정이 2년이나 된다. 교리 암기는 필수. 교리기간에 미사와 교리에 성실히 출석해야 한다. 만약 한두번 교리와 미사에 빠지면 세례는 말 그대로 물건너 간다.

 "세례받기가 어렵다 보니, 영세한 여성 신자들은 미사보 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몽골 한인신앙공동체 함석규(보니파시오) 회장이 거들었다. 미사보 자체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어려운 과정을 통과한 월계관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

 "시작 단계인 만큼 철저한 신앙인을 양성해야 합니다. 영세 후 쉽게 냉담하는 신자는 만들지 않을 생각입니다." 초기 한국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몽골에도 신자 수의 양적 팽창보다 진정한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김 신부의 '고집'이다.

 열정에는 반드시 도전이 따르는 법. 울란바타르에만 100여개 개신교회가 들어와 있다. 성당이 3개에 불과한 가톨릭으로선 선교사 수, 재정 등 모든 면에서 경쟁이 되지 않는다.

 "이 시기를 놓쳐선 안 됩니다. 의무를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머지 않아서 선교 시기를 놓칠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으로 간다면,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물은 지금 쳐야 합니다."

 하지만 어려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당장 성당 증축이 필요하지만 손을 놓고 있다. 주일미사 헌금이 7000원인 실정에서 '무엇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당장 김 신부 생활비도 빠듯한 형편. 어려운 이들을 위한 활동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집이 없어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직장이 없어 구걸로 연명하는 가장, 방직공장에서 월 4만원을 받고 일하는 엄마, 아무도 돌보지 않는 장애인과 노인….

 김 신부가 말문을 닫았다. 한 중년 여성이 다가와 김 신부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오윤자갈(Oyunjargal, 52)씨. 곧 빗자루를 들고 성당을 청소한다. 성당에 나온 지 1년 된 예비신자다. 성당 인근 관공서 에서 청소일을 하며 생계를 잇는다는 오윤자갈씨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하루에도 서너번씩 성당에 찾아와 청소한다고 했다.

 오윤자갈씨를 보며 희망을 찾았는지, 김 신부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공소에 볼일이 있습니다. 함께 가시죠." 차로 40여분 걸리는 거리라고 했다. 차에 올랐다. 움직이는 것이 신기했다. 15년은 족히 지난 일본제 모델. 일주일에 서너번은 정비소를 찾아가야 한다고 했다. 차는 당장이라도 멈춰설 것처럼 심하게 덜컹거렸다.

 돌풍이 계속됐다. 어린아이 하나는 단숨에 날려버릴 것 같은 기세였다. 차도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헤지고 닳은 운전대를 꽉쥔 김 신부가 묵주를 꺼냈다.

 "우리 함께 기도할까요." 성모송이 이어졌다. 기도 후….

 "언제까지 여기에 계실건가요." "앞으로 몽골 방인 사제가 나오면 그땐 모든 것을 훌훌 털고 한국으로 돌아 가야지요"

 멀리 초원 위로 한무리 양떼가 지나가고 있었다.

  울란바타르=우광호기자
kwangh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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