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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교지 문화와 전통에 적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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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그곳에 계신 하느님을 증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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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14 발행 [834호]
이미 그곳에 계신 하느님을 증거해야


▲ 1. 한치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쏟아지는 폭우로 목욕을 하는 마닐라 빈민촌 아이들.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이 선교체험단 일행의 코끝을 찡하게 했다.2. 선교체험단을 인솔한 양창우(가운데, 오른팔 든 이) 신부와 말라테성당 존 레이던 신부가 말라테성당 앞에서 젊은이들에게 필리핀 선교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3. 스페인 선교사들이 진출한 1521년부터 현재까지 필리핀 복음화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대형 그림. 말라테 성당 안에 있다.
 마닐라 시내에 한바탕 폭우가 쏟아졌다. 아열대 지방의 불볕 더위를 식혀주는 스콜(squall)이다.

 뭘 좀 아는 사람들은 이 비를 피한다. 차량들이 뿜어낸 매연을 비롯해 각종 대기 오염물질이 비를 타고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신이 나서 빗속을 뛰어다녔다.

 '저 녀석들 대머리되면 어떡하려고….'하며 괜한 걱정을 하는 순간, 재미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골목에서 한 엄마가 나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을 불렀다. 그러더니 그 녀석들 웃통을 벗기고 구석구석 비누칠을 해서 다시 빗속으로 내보내는 게 아닌가. 아이들 엄마도 아예 길 옆 의자에 앉아 연신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며 비를 맞았다.

 도시 빈민들의 목욕 광경이다. 식구 7~8명이 쪽방에서 새우잠을 자는 그들 집에 목욕공간이 있을 턱이 없다. 30분쯤 지나자 하늘은 언제 비를 뿌렸냐는듯 맑게 갰다.

 유서 깊은 말라테(Malate)성당에 들어서자 아일랜드 태생의 존 레이던(John Leydon,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신부가 선교 체험단을 반갑게 맞아줬다.

 로하스 대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말라테성당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이 1929년 필리핀에 처음 도착해 선교 둥지를 튼 역사적 장소다. 400년전 스페인 선교사들이 건축한 고색창연한 성당은 필리핀 복음화 역사의 유적지이자 관광객에게는 인기있는 볼거리다.

 성당 옆 선교역사관 벽면에 적힌 의미심장한 문구가 시선을 끌었다.

 "다른 인종ㆍ문화ㆍ종교에 접근할 때 먼저 할 일은 신발을 벗는 것이다. 우리가 내디딜 이 땅은 신성한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하느님은 이미 이곳에 계셨다는 것을 잊지말라." -케네스 크라그 주교-

 레이던 신부는 "선교사들은 하느님을 모시고 필리핀에 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문화 속으로 들어가 이곳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증거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라고 보충 설명을 해줬다.

 그렇다. 1521년 스페인 선교사들이 포르투갈 탐험가 마젤란과 함께 세부(Cebu) 섬에 들어와 십자가를 세우기 전부터 하느님은 필리핀에 계셨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사는 복음을 심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것을 증거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선교의 출발은 선교지 전통과 문화의 이해"라는 레이던 신부 설명에 젊은이들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말라테성당 주변에는 빈민촌이 밀집해 있다.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와 고단하게 삶을 꾸려가는 주민들 모습은 70년대 서울 달동네 주민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주민들은 대부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도 벅차다. 가난도 가난이려니와 그로 인해 빚어지는 '거리 아이들'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이유도 가지가지다. 도시락을 싸갈 형편이 안 돼서 결석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밤새 공원을 배회하다 아침 늦게까지 잠자는 아이도 있다.

 한밤중에 베개를 들고 공원으로 나오는 아이들도 많다. 한 가족이 눕기에는 방이 너무 좁아서다. 찜통같은 방에서 웅크려 자는 것보다 모기에 뜯기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다.

 손선영(가타리나, 40)씨는 성당 부근 빈민촌에서 활동하는 평신도 선교사다.

 젊은이들은 손씨를 보고 놀라는 눈치다. 악취와 불결한 환경 때문에 단 하루도 머물기 힘들 것 같은 빈민촌에서 한국인 선교사를 만난 게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젊은이들은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라며 손씨에게 위로하듯 말을 걸었다.

 손씨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고생이라니요? 여러분도 여기와서 살아보세요. 하루하루가 얼마나 행복한데요."

 젊은이들이 하나 둘씩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저 고모뻘 되는 선교사가 말하는 행복이란 게 뭐지?'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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