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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하느님 말씀에 상반되는 것들을 복음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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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바로 우리 여동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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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1 발행 [835호]
"그들은 바로 우리 여동생들이었다"


▲ 1. 올롱가포 시내 다리 밑 아이들. 낙서 투성이 벽에 붙어 있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이콘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2. 친교시간에 선교체험단 짝꿍과 그림을 그리는 프레다센터 소녀들. 3. 젊은이들이 아이따 부족 원주민들과 밀림 산비탈에 망고 묘목을 심고 있다.
 "웰컴(Welcome), 웰컴."

 소년들이 예고도 없이 보금자리에 들이닥쳐 단잠을 깨운 이방인 불청객을 환영한다.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올롱가포(Olongapo) 다리 밑. 집도 부모도 없이 거리를 떠도는 소년소녀들의 보금자리다.

 그런데 아무리 '다리 밑 생활'이라지만 살림이 너무 없다. 솥단지 한 개가 유일한 살림살이. 아이들 대장인 알버트(20)는 "경찰이 며칠 전에 살림을 다 거둬갔다. 그들은 툭하면 그 짓을 한다"며 화를 낸다.

 소녀들은 악취가 진동하는 시궁창물로 머리를 감는다. 올롱가포 시내 상가와 주택가에서 나오는 폐수다. 그런데도 "까르르, 까르르" 잘도 웃는다. 이들은 시내에서 구걸이나 좀도둑질로 먹고 산다. 주차장에서 일을 도와주고 몇 푼 벌어오는 아이도 있다.

 젊은이 선교체험단을 안내한 프레다(PREDA)센터 사회복지사 쟈키(23)씨는 "해결책이 없다. 어렵사리 부모를 찾아 가정에 돌려보내도 얼마 후면 또 뛰쳐나온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낙서 투성이 벽에 찢어진 채 붙어있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이콘 그림 때문인가,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다.

 한때 아시아 최대 미군 해군기지가 있던 수빅만 근처에 있는 프레다센터는 2001년, 2003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유명한 시설이다. 1974년 센터를 설립해 31년째 이곳에서 정의평화운동을 벌이고 있는 선교사 쉐이 컬렌(62,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신부의 명성 덕분이다.

 26살 피끓는 나이에 필리핀에 온 컬렌 신부의 억척스런 정의평화 활동은 이루 다 열거할 수가 없다. 대표적 활동이 1992년 성공을 거둔 미군기지 반환운동과 '거리의 아이들' 보호사업.

 그는 미군기지 앞에서 수만명 시위대를 이끌며 데모를 벌이고,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케했던 기지촌 유흥가 성매매업자들과 싸웠다. 이 때문에 감옥에 다녀오고 깡패들에게 폭행도 당했다. 정부는 이미 오래 전에 그를 '말썽만 일으키는 선교사'(Trouble Maker)로 지목했다.

 그는 요즘 불법 감금된 어린이 구출 활동과 성폭력 피해 소녀 보호 활동에 주력한다. 거리에서 말썽을 피운 아이들을 성인 감옥에 집어넣은 채 구타를 일삼고, 재판을 질질 끄는 사법당국과 줄기차게 싸우고 있다. 5살짜리 여자아이가 성인 감옥에 구금된 사건이 국제사면위원회 고발로 국제적 이슈가 된 적이 있을 만큼 인권 상황이 열악하다.

 컬렌 신부는 "배고파서 빵을 훔친 5살짜리 아이에게 죄를 물을 수 있느냐"며 "난 하느님 모상대로 창조된 그들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켜주려는 것일뿐 싸움꾼이 아니다"고 말했다.

 프레다센터에는 성폭력 피해 소녀 50여명과 거리나 감옥에서 데려온 소년 등 약 100명이 살고있다. 컬렌 신부는 "소녀들 중에는 성매매 희생자도 있다"며 "필리핀으로 섹스관광을 오는 사람들은 주로 유럽ㆍ일본ㆍ호주ㆍ한국인"이라고 지적했다.

 컬렌 신부 설명을 듣던 젊은이들은 "어이쿠, 한국도 끼어 있네"라며 고개를 떨궜다.

 선교체험단과 소녀들의 저녁 친교시간에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소녀들을 데리고 나온 심리치료교사 샘 로사리아(22)씨가 "파트너를 정하라"고 하자 소녀들은 먼저 달려들어 악수를 청하며 이름과 나이를 물었다. "기념 사진을 찍자"며 파트너 손을 잡아 끌기도 했다. 가슴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그들이 먼저 이방인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을 보고 순진한 젊은이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들은 여느 10대 소녀들마냥 맑고 순수했다.

 친교시간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이들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녀들은 바로 우리 여동생들이었다. 그들에 대한 편견이 한없이 부끄럽다."

 선교체험단은 다음날 프레다센터 소년들과 잠발레스 지역 밀림으로 들어갔다.

 아이따(Aetas) 부족 코흘리개 꼬마들이 마을 아래까지 맨발로 내려와 반겨줬다. 얼굴색이 검고 머리카락이 곱슬곱슬한 꼬마들은 무슨 희한한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고산지대에 살던 아이따 부족은 피나투보 화산 대폭발(1991년)로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뒤 산 중턱 아래로 내려와 사는 소수 부족. 그야말로 '소외 속 소외'를 뼈저리게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젊은이들은 가톨릭 선교 손길이 이 깊은 밀림에까지 미치는 것에 감탄했다.

 젊은이들은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아가면서 산비탈에 망고 묘목을 심었다.

 먼 훗날 주렁주렁 매달린 망고는 원주민들 식량과 아이들 교육비가 될 것이란 생각에 힘든 줄을 몰랐다.

 나무를 심는 사람 마음은 늘 행복하다. 희망도 함께 심기 때문이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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