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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치와 회복을 위하여

"그 안에 살아계신 하느님을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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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8 발행 [836호]
"그 안에 살아계신 하느님을 느꼈어요"


▲ 1. 공소 앞에서 한국 선교체험단을 반기는 퀘손시 라우라 빈민촌 개구쟁이들. 한국 평신도 선교사 이경자씨는 이 어린이들이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도록 동화책을 자주 읽어준다.2. 라우라 빈민촌에서 선교하는 다니엘 신부의 쪽방 사제관.3.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필리핀지부 신부들과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 평신도 선교사들이 선교체험단 일행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4. 벨로칠로 수녀(왼쪽)가 생태환경 체험장에서 물 정화과정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시끄러운 미사도 있나?'

 마닐라 중심가에서 약 50분 떨어진 퀘손시 빈민촌 라우라 공소의 주일미사.

 찜통더위도 더위지만 시끄러워서 도무지 미사에 집중할 수가 없다. 공소가 다닥다닥 붙은 판자집들 바로 옆에 있는 데다 벽돌 대신 쇠창살로 벽을 만들어 바깥 소음이 그대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골목에서 개구쟁이들 뛰노는 소리, 빨래한 물을 하수구로 쏟아붓는 소리, 어느 집에선가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

 공소 신자들은 소음이 조금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모양이다. 다니엘 고데프로이(53) 신부 역시 밖에서 시끄럽게 뛰노는 개구쟁이들 야단 한 번 치지 않고 미사를 집전한다.

 미사 후 "소음 때문에 분심이 많이 들었다"고 하소연(?)하자 다니엘 신부는 "그건 소음이 아니라 우리네 삶의 소리"라며 푸근하게 웃는다.

 다니엘 신부는 자비의 아들수도회 소속 프랑스 선교사. 깔끔한 프랑스인이 이런 빈민촌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해 사제관을 기웃거렸다.

 사제관은 얼기설기 짠 선반과 합판 침대뿐인 쪽방이다. 그 흔한 선풍기 한
대 없다.

 다니엘 신부는 "그래도 이 정도면 주민들보다 낫다"며 "내가 마음을 활짝 열면 하느님과 주민들이 내게 기쁨을 넘치게 주는데 불편할 게 뭐 있냐"고 말했다. 가난한 이들 속으로 들어가 기쁜소식을 전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반해 선교사가 됐다는 그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의 신앙고백은 선교체험단 젊은이들 코 끝을 찡하게 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고 싶어 필리핀 선교를 자원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주민들 안에서 목말라하는 하느님을 만난다. 그래서 행복하다. 이 세상 그 무엇이 이런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겠는가."

 라우라 빈민촌은 자비의 아들수도회 선교사들이 진출해 활기를 불어넣은 공동체다. 주민들은 대부분 날품을 팔아 끼니를 잇는데 그나마 일자리가 없어 빈둥빈둥 노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청년들도 도무지 '미래'나 '희망'이란 걸 몰랐다. 마약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들도 많았다.

 선교사들은 방황하는 청년들을 불러모아 성가대, 레지오 마리애 등 단체를 조직했다. 어느 생활성가 가사대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걸 자꾸자꾸 일러주었다. 한국 평신도 선교사 이경자(크리스티나, 42)씨도 이곳 선교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처음엔 시큰둥하던 청년들이 어느날 다니엘 신부를 찾아왔다.

 "저희들이 '성 다미아노 기도 모임'을 만들려고 하는데 신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청년들은 요즘 매주 한번씩 이 기도모임을 열어 기도하고 찬양한다. 그리고 고민과 희망을 나눈다. 학교에 갈 형편이 안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티셔츠 인쇄작업을 하는 자활사업은 이 기도모임에서 나온 생각이다.

 라우라 청년들은 선교체험단 일행을 자신들의 기도회에 초대했다.

 두 나라 청년들이 낡은 전자오르간 반주에 맞춰 합창한 유명한 떼제노래 'Bless the Lord(주님을 찬미하라)',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찬미 노래가 또 있을까 싶었다. 한국 젊은이들은 빈민촌 청년들의 기도소리에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선교체험단은 이튿날 매우 흥미로운 곳을 방문했다.

 '100% 무공해 지역', '하느님 창조질서 보존 구역'이라 불리는 셀(CELL, 생태환경 체험장). 마닐라 시내 말라테본당 존 레이던 신부 등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이 생태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려고 조성한 4500평 넓이 농장이다.

 셀은 명성대로 태고적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땅, 나무, 곤충, 물 등 자연이 인간의 간섭 없이 살아 숨쉰다. 분뇨가 박테리아에 의해 자연으로 돌아가고, 생물들이 질서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학습 프로그램은 감탄을 자아낸다. 1999년에 문을 연 셀은 마닐라 중ㆍ고교생들의 필수 현장체험 명소가 됐다.

 선교체험단 일행 가운데 한 명이 벨로칠로 관리 수녀에게 엉뚱한 질문을 했다.

 "이런 농장을 운영하는 것도 선교입니까?"

 "인간 욕심이 '어머니 땅'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은 심각한 생태 위기에 경종을 울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느님 창조질서 회복 노력은 21세기가 요구하는 중대한 선교사업입니다."

 10일간 선교체험 여행을 마친 젊은이들은 가슴에 날아든 '선교성소의 씨앗'을 품고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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