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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만난 신학생들

김 양 호 교수 (숭의여대 미디어문예창작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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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1 발행 [872호]
김 양 호 교수 (숭의여대 미디어문예창작과, 소설가)


 자기를 아는 것은 쉽지 않다. 때문에 우리는 너 나 없이 자기자신에 대해 후한 평가를 내리곤 한다. 자기 모습을 정확히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자기를 아는 것은 성장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보약'이나 다름없다.

 한창 자라나는 시기인 18살. 자칫 자기를 돌아볼 여유 없이 앞만 보고 내달리는 나이다. 18살 평화신문은 잠시 멈춰서 이웃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마련했다. 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교회와 신자가 되기위한 준비작업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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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12월말 내가 떠났던 인도여행은 오기와 충동심이 반씩 섞여 있었다. 인도를 알지 못하고 글을 쓰냐는 말과 세상 사람은 히말라야를 본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으로 나눈단 말에 현혹된 충동이었다. 변변한 계획도 없이 혼자서 배낭을 메고 인도로 날아갔다.

 준비없는 여행결과는 이십일쯤 지나 조각 사원이 있는 카쥬라호에 도착했을 때 파김치가 됐다. 사원을 둘러볼 여력도 없이 게스트 하우스에 들어서자마자 곯아 떨어졌다. 잠에서 깬 것은 이튿날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서였다.

 밖에 나가봤더니 젊은 한국 학생 서넛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 여행객이 왔
단 말을 듣고 식사를 준비해 초대한 거였다. 안내하는 대로 그들 방으로 갔다. 군용 밥통에 수북이 담긴 밥과 김치, 맵게 볶은 닭볶음탕 등이 놓인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입속에서 튀어나오는 혀를 깨물어가며 정신없이 음식을 먹어치웠다.

 수인사를 나눈 건 그 다음이었다. 수원가톨릭대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학생들은 방학이 되어 배낭여행을 온 거라고 했다. 수원교구 주교님이 신학생일수록 사람 사는 밑바닥 생활을 경험해 봐야 한다고 경비를 지원해 주셨단다. 자신들만이 아니라 원하는 학생들에겐 원하는 나라로 배낭여행을 지원해 준다고 했다.

 신학생들은 식사가 끝나자 함께 설거지를 했다. 배낭에 취사도구를 집어넣고 뒷정리를 했다. 커피를 마시며 나는 그들의 일사불란하고 반듯한  모습에 차
츰 빠져들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그 학생들과 바라나시행 기차에 올라탔다. 배낭여행을 하면서 나름대로 세웠던, 동행을 만들지 않는다는 철칙은 기꺼이 버렸다. 해거름 무렵 열다섯 시간이 걸린다는 삼단 침대 기차에 올라탄 우리는 싸구려 인도 위스키에 날오이를 먹으며 얘기를 나눴다. 문학과 종교와 철학과 인생과 죽음에 관한 얘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뇌와 방황이 섞여 있는 젊은 신학도와 대화를 통해서 나는 앳되고 고통스럽지만 신의 뜻을 갈구하는 구도자의 자세를 엿보는 동시에 불안한 방황과 엄살 섞인 고뇌로 범벅된 내 젊은 시절을 다시 보았다.

 바라나시에 도착해 헤어질 무렵, 나는 총무 일을 관장하는 학생에게 얼마간의 돈을 건네주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자신들의 예산으로 밑바닥 삶을 체험해 보는 게 자신들의 여행목표란 거였다.

 기분 좋은 거절이었다.

 그들과 헤어진 뒤 나는 사막에 가서 추운 밤 쏟아지는 별무더기를 보았고 네팔에 가서 히말라야를 보았다. 사막의 별무더기와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바라보면 그 위에 삶의 진정성을 추구하던 그들의 눈빛이 함께 떠 있었다.

 지금도 그처럼 진실되게 자신의 별자리를 찾던 청년들과, 그리고 그들에게 그런 계기를 만들어준 당시 주교님의 마음 한 자락이 눈앞에 선연하게 떠오른다. 동훈, 현하, 창호, 희강이라고 기억되는 그 청년들은 지금쯤은 사제품을 받은 멋진 신부님이 되어 그들이 겪은 알찬 체험을 신자들에게 말해주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신학생들이 '천국의 열쇠' 주인공 치셤 신부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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