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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원 (사단법인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이사장)

박철원 (사단법인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이사장)

누가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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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25 발행 [877호]
누가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사람들인가?


 '지난 10년 간, 가톨릭을 믿는 신자는 두 배 가까이 증가했고 개신교는 교인이 계속 줄어드는 추세'라는 신문기사를 최근에 읽은 일이 있다. 개신교 신자인 나에게는 작은 충격으로 와 닿았다.

 그 신문기사가 사실적 통계를 바탕으로 쓴 기사라면, 많은 사람이 신ㆍ구교 중에서 가톨릭을 선택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고 인정해야할 것이다.

 그러면 개신교보다 가톨릭을 더 많이 선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역사책은 16~17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운동의 중요한 원인으로 그 당시 가톨릭의 지나친 교리주의와 교권주의, 세속화를 꼽는다. 특히 흑백논리에 도취돼 자기절대화의 독선에 빠지면서 성직자와 신학자들 내부에서 먼저 변화를 요구하는 혁신운동이 일어나게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개혁운동에 의해 개신교회(protestantism)가 급속히 세계로 번져나갔다. 우리나라도 미국 영향을 받아 개신교 신도가 10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초고속으로 성장해 세계 기독교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러나 참 신앙을 찾는 이들이 오늘의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별로 곱지 않은 것 같다. 종교개혁의 초심을 잃고 다시 옛날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많은 신앙 집회에서 교리나 교권을 내세워 신도들을 불편하게하고 축복권과 하늘나라를 빙자해 성도들 마음에 불안감과 공포심을 심어주는 듯한 설교(또는 강론)를 하는 경우를 여러 차례 목격한 일이 있다. 개신교 신앙집회에서 이런 경향이 더 많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바로 이런 일들이 성도들이 교회를 등지고 방황하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교회'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조직이, 이 땅에 하늘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교리와 적당한 권위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때의 교리나 권위는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직접 가르치시고 확립하셨던 원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야 한다. 신앙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교리나 과장되고 위장된 권위주의는 성도들을 죄책감과 공포감에 빠뜨려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 기준은 그리스도가 스스로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고 강조하셨던 말씀 속에 담겨있지 않을까?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에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있다"(마태 22,37-40)고 예수께서는 가르치셨다.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사랑을 실천해 나갈 때 교회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모습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하늘나라 건설을 위한 사랑의 실천운동에서 가톨릭이 더 많은 사랑의 손길을 폈고 땀과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가톨릭교회 쪽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는 것이 아닐까?

 가톨릭을 포함한 모든 고등종교가 행복과 평화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선한 싸움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교회와 성도들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쏟는 기도와 눈물과 땀의 질과 양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면 너무 무리한 생각일까?

 가톨릭이 옳은가 개신교가 옳은가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누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느냐, 누가 하늘나라 건설에 더 헌신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참사랑을 이루기 위해  진정으로 고뇌하고 교리 대신 사랑으로 권위주의 대신 헌신으로 아름다운 손길을 펼칠 때, 하늘나라는 더 가까워지고 성도들의 평화롭고 행복한 삶이 온 누리에 펼쳐질 것이라는 믿음이 결코 꿈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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