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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종 (동아일보 기자)

세상에 열린 교회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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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9 발행 [879호]
세상에 열린 교회를 기대하며


 지인이 성당에서 결혼하면 으레 신부 얼굴만 감상한 뒤 재빠르게 빠져 나온다. 성당 탈출은 허기진 배를 국수로 채우거나 신부와 얽힌 말 못할 사연에 붙잡혀서가 아니다. 1시간 이상 이어지는 근엄한 예식은 주말마다 예식장을 찾아야 하는 30대 미혼에게 분명 가혹하다. 지루한 표정을 꼭꼭 숨긴 채 축복한다는 눈초리로 신부님을 응시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오히려 풍파를 견뎌온 붉은색 벽돌 건물을 바라보며 새 커플의 행복을 비는 것이 현명하다.

 가톨릭이 뿜어내는 인상이 이교도에게 늘 불가근(不可近)은 아니다. 단 한번도 미사를 드린 적은 없지만 성당의 단아한 분위기는 항상 마음을 차분하게 이끈다. 종교란 나무처럼 늘 그 자리에 서 있어 심적으로 기대고 싶은 대상이다. 나약한 인간은 신부님께 투정이라도 부려 세파에 찌든 마음의 고름을 떨쳐내고 싶다. 때로는 장기간 수도원에 머물며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고뇌를 덜어내려고도 한다. 영악한 인간은 가톨릭을 종종 피난처로 이용한다.

 그렇지만 일상에서 가톨릭은 여전히 범인(凡人)들 영역 밖에 존재한다. 성당은 그저 믿는 사람들만의 공간이며 닫힌 세계에 불과하다. 가톨릭이 의도적으로 문을 열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소통하려는 적극적 몸짓이 부족해 점차 자신들 세계에만 머무르고 있다는 뜻이다.

 중세 유럽처럼 가톨릭이 세상만사에 끼어들 필요는 없지만 담을 낮추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평범한 사람들과 격의 없이 지내면 자연스럽게 하느님 뜻이 옮겨지기 마련이다.

 독일 체류 시절 같은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한 신부님을 만났다. 개인적으로 신부님과 가진 첫 대면이었는데 전통적 신부님 모습과는 상당히 비껴 있었다. 유학생들과 함께 고스톱을 치면 판돈에 따라 엇갈리는 희비를 얼굴에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근엄하지 않았지만 소탈하고 오히려 인간적이었다. 이국땅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함께 희비애락을 나누는 모습에서 가톨릭이 그렇게 딱딱한 종교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가톨릭을 접할 수 있는 데는 기껏해야 교육기관과 복지시설 정도다. 성당이나 여타 가톨릭계 시설은 가톨릭인이 아니라면 거의 찾지 않는다. 매개체를 만들어 세상과 통하는 것은 어떨까. 외부인과 섞이는, 그래서 어떻게 보면 꼭 종교적이지 않은 단체나 시설 말이다. 간혹 종교 단체로 출발했지만 세상 속에 깊이 파고들어 점차 종교색을 잃은 단체들이 꼭 배신이나 변절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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