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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목사(한국기독교협의회 교회일치 평화통일 위원회 간사)

김태현 목사(한국기독교협의회 교회일치 평화통일 위원회 간사)

또다른 형제에게 관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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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13 발행 [883호]
또다른 형제에게 관용을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습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에 있는 내용이다. 건강한 교회라면 신경의 네 징표를 온전히 갖고 있어야 한다, 이 중에 보편적이라는 의미의 '가톨릭'이 교회를 특정화하는 말로 사용된 것은 대략 기원후 2세기께로 추정하고 있다. 즉, 지금이야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이런 식으로 의미를 규정해서 그렇지 넓게 보면 모두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유달리 보수성이 강하다고 한다. '로마보다 더 로마적인' 교회가 한국 가톨릭이라고들 한다. 이 비슷한 말을 성공회에서도 들은 듯하다. 아마도 전통을 존중하고 아끼는 한국인의 심성이 교회에도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장로교의 사례이긴 하지만 한국 개신교의 경우 본래의 경건하고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예배를 회복하자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 여긴다. 난 이런 모습들이 아름답다고 본다. 서양인들조차 무거워 벗어던진 것을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일까? 오히려 서로에 대한 벽을 높이 쌓는 한국 그리스도교인들을 만날 때면 무척 난감하다. 개신교인들만 천주교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천주교인들 역시 개신교를 한몸으로 생각지 않는 발언을 서슴없이 할 때면 뭔가 속에서 탁 막히는 기분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원칙적으로 건강한 그리스도교회는 모두 보편된 교회, 즉 가톨릭교회이며 사도전통을 따르는 정교회다. 하지만 자기 전통에 대한 자긍심이 오히려 남과 나를 구분 짓는 경계가 된다면, 그것은 슬픈 일이다.

 얼마 전 발터 카스퍼 추기경께서 한국을 다녀가셨다. 내게는 추기경보다는 신학자로 더 익숙한 분을 가까이서 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리스도인 일치 포럼에 참석하신 추기경은 "일치는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적 사목"이라는 말씀으로 한국의 일치운동을 격려하고 지지해 주셨다. 더 나아가 "일치운동은 사회문제와 함께 연결돼야 하는 역사적인 것"임도 강조하셨다. 사실 교회 분열, 특히 개신교와 가톨릭의 분열은 500여년 전 서양 역사와 문화 속에서 일어난, 지극히 서양적인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분열로 인한 상처는 서양에서보다 한국에서 더욱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통을 아끼고 사랑하는 순진한 마음이 비정상적인 것조차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보는 가톨릭은 하느님 은총 아래 있는 그리스도 교회다. 더욱이 한국 가톨릭은 하느님 은총에 대한 신뢰와 교회 전통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교회다. 그렇기에 그만큼 또다른 '형제들'에 대한 관용적 태도를 바라는 것은 나만의 욕심일까?  아니라고 난 믿는다. 이 글은 가톨릭 신자들만을 위해 쓴 글은 아니다. 언젠가 같은 마을의 천주교회와 개신교회가 만나 체육대회를 하고 신앙수련회를 하며 한가족 사랑을 나누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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