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영적 갈망과 천주교

김연수(변호사)

Home > 여론사람들 > 내가 본 가톨릭
2007.01.28 발행 [906호]
김연수(변호사)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전후라고 할 수 있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를 소개하고 있고, 그 뒤 청나라에 끌려간 소현세자가 서양 선교사들과 접촉해 「천주실의」와 같은 책을 가지고 귀국하는 기록이 나온다.

 실학파가 학문으로 연구하던 천주교는 영ㆍ정조 시대에 본격적 종교 신앙으로 발전해 많은 박해를 받았음에도 신앙을 지켜내 오늘에 이른다.

 신해ㆍ 신유박해를 거쳐 대원군 시절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수많는 신도들과 지도자들이 고문을 당하고 순교했음에도 조금도 꺾이지 않고 신앙을 지켜냈으니, 천주교사에 있어서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뜨거운 신앙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세도 정치로 인해 피폐해진 민중들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기존 유교의 형식적 틀에 매인 사상체계에 염증을 느낀 이들이 천주교의 영적 가르침을 통해 진정한 하느님을 발견하고 자신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천주교 모습은 어떠한가?

 비단 천주교에 국한된 문제는 아닐 터이지만, 영적 갈망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어떠한 답을 주었는가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천주교가 전래 이후 집권층으로부터 무수한 박해를 받았다. 불교 역시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하찮은 대우를 받았다. 승려를 죽이는 것은 살인죄에 들지도 않는다고 할 정도였다. 힘깨나 쓰는 사대부들은 불상을 비롯한 사찰 문화재를 깨뜨리고 탈취했다.

 그러다보니 사찰 살림은 어려웠고, 민중과 같이 보릿고개 넘기를 1970년대까지 해야 했다. 그럼에도 구도 정신은 형형하게 살아 있어 경허 스님에서 비롯한 선맥의 중흥은 지금의 한국 불교를 세상에 우뚝 서게 하는 원천이 됐다. 그러나 소득이 높아지면서 사찰 살림은 살찌기 시작했고 외양적으로 커지며 문제들이 나타났다.

 그러면, 천주교 현재 모습은 어떤가? 우리네 영적 갈증을 해소시켜 주고 영육 일치의 삶을 살도록 갈 길을 제시하고 있는가? 아니면 겉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회복지와 같이 세상에 드러나는 일이 천주교 진짜 모습으로 비쳐지지는 않은가?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그대로 체현하고 자신 안의 하느님을 찾아 신앙의 세계로 침잠하는 이가 과연 천주교에 얼마나 있는가. 이 문제에 답을 하지 않으면 다른 종교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또 미국이나 유럽 교회 성당처럼 텅 비는 아픔을 겪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을 것이다.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
오늘의 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