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눈] 정수용 "1970년 안젤라씨의 삥땅과 2021년 대장동의 삥땅"

[사제의 눈] 정수용 "1970년 안젤라씨의 삥땅과 2021년 대장동의 삥땅"

Home > NEWS > 가톨릭
입력 : 2021-10-15 15:00 수정 : 2021-10-15 15:16


요즘 시내버스에 교통카드 단말기와 하차용 버튼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안내양이라 불리던 버스 차장이 있었습니다. 버스 입구에서 요금을 받고, 정류장을 안내하며, 문을 열고 닫는 업무였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가족의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했던 10대 후반의 어린 여성들이었습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 18시간 동안 일해야 했지만 1970년 당시 버스 차장의 월급은 고작 6천 원 정도였습니다. 그나마 식대 등 잡비를 제하고 나면 4800원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 300-400원식 승객이 지불하는 버스 요금을 횡령하는 이른바 '삥땅’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저는 버스 차장 일을 하면서 어머니의 병 치료비와 동생의 학비 때문에 하루에 300원씩 삥땅을 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신자인 저는 양심의 가책을 받아 교회에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1970년 어느 봄날, 서울 시내버스 차장 안젤라 씨는 한국노사문제연구소를 찾아 삥땅이 죄가 되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질문은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에게까지 전달되었고, 고민 끝에 지 주교는 그런 경우 삥땅은 죄가 아니며, 안젤라 양은 교회에 나올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지학순 주교는 서울 종로구 YMCA 대강당에서 열린 "삥땅 심포지엄"에서 이런 말도 남깁니다. 하루 3,4백 원의 삥땅은 자신의 권리 주장이며 ... 받는 만큼 주어야 하는 교환 정의에서 볼 때도, 모든 사람의 공공복리를 공정하게 다뤄야 하는 법적 정의에서도, 누구나 살 권리가 있는 사회 정의에도서 삥땅은 죄악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300원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낀 안젤라씨 뿐 아니라 당시 약 2만 명 정도였던 버스 차장에게는 분명 복음과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삥땅 소식으로 분노와 허탈을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바로 성남시 대장동 개발에서 벌어진 삥땅입니다.


20대 국회의원 아들은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을 받았고, 또 다른 이들도 50억을 약속받았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직 대법관, 검찰총장, 특별 검사 등 고위 법조인들은 고문 명목으로 고액의 자문료를 받았습니다. 성남시의회 의원들과 공무원들에게도 로비자금이 흘러갔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들 가운데 잘못을 인정한 사람,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의 모습은 한 명도 없습니다. 수사를 통해 드러나야 하겠지만, 수십, 수백억의 삥땅에도 과연 이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어머니의 병원비와 동생의 학비를 위한 하루 300원의 삥땅으로 괴로워했을 안젤라씨와, 수백억의 부동산 개발 삥땅에도 당당한 사람들의 모습이 씁쓸하게 겹칩니다.


그러고 보니 이들의 모습은 마치 루카복음 18장에 나오는 세리와 바리사이의 상반된 기도를 연상시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인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한 법조인 바리사이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겸손했던 죄인 세리였음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대장동 비리 의혹! 앞으로 수사기관의 철저한 수사는 물론, 다시는 유사한 비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관련 제도 개선을 촉구합니다.


오늘 <사제의 눈>은 "1970년 안젤라씨의 삥땅과 2021년 대장동의 삥땅"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모든 이들과 함께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
cpbc 서종빈 기자(binseo@cpbc.co.kr) | 입력 : 2021-10-15 15:00 수정 : 2021-10-15 15:16

■ 인터뷰 및 기사를 인용보도할 때는 출처 'cpbc 가톨릭평화방송'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가톨릭평화방송 · 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