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읽는 세상] 김헌식 "이건희 미술관 유치 경쟁...경제와 정치 논리 배제해야"

[문화로 읽는 세상] 김헌식 "이건희 미술관 유치 경쟁...경제와 정치 논리 배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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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6-11 17:36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김헌식 문화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전문]

문화 현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짚어보고 대안을 생각해보는 <문화로 읽는 세상>

김헌식 문화평론가와 함께 `이건희 미술관 유치 문제와 빌바오 효과`에 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평론가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요즘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하기 위한 지자체의 경쟁이 치열하다면서요?

▶지난 4월 삼성가는 이병철 선대 회장부터 수집한 미술품 2만 3000여점을 국가에 기증했습니다. 감정가만 3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보 216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보물 1393호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 등의 옛그림과 문화재, 유물 고지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이중섭의 ‘황소’ 등 근대 미술품 1천 600여점도 있습니다. 해외 작가로는 모네,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샤걀, 피카소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부는 일단 이건희 미술관을 따로 짓기로 했습니다. 이 때문에 전국의 지자체들이 유치 경쟁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알려진 곳만 30여곳이 넘습니다. 이렇게 미술관을 따로 짓는 것에 대해서는 기증자의 뜻을 거스리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하간 문체부는 6월 말에 미술관 신설을 발표할 계획입니다.


▷작품 수나 유명예술가의 작품 이름만 화제가 되는 것 같은데요. 미술이나 예술 면에서는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모든 작품이 훌륭할 수는 없습니다. 그 작품만이 아니라 그 작품을 둘러싼 내외적인 배경과 흐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한 작가가 대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전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해외에 많은 우리 작품이 반출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국내외 작품들이 모아졌다는 것은 한국적 시선과 관점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더구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끊기거나 공백인 예술사를 채워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대의 한국적 사회상과 세계관이 간접적으로라도 반영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업 활동을 통해 축적된 부를 예술작품이라는 문화 공공재에 투자를 하고 그것을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21세기에 매우 중요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죠. 문화예술은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지 누군가의 개인 보관함에 있는 것은 국가적 불행이자 인류 전체에게도 우울한 일입니다.


▷이른바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하려는 전국의 지자체들의 논리도 다양하고, 서울 수도권 유치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큰 것 같은데, 어떤가요?

▶문화예술 인프라가 있기 때문에 유치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점잖은 편에 속합니다. 이병철 선대 회장의 고향을 내세우거나 초등학교 졸업한 곳임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또한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의 유택이 있는 점을 강조하는 지자체도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고향은 물론이고 삼성의 발상지 나아가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지자체도 이를 강조합니다. 어떤 지자체는 선대 회장이 경관이 아름다워 부동산을 매입한 점을 부각합니다. 미국 기지를 반환하고 빈터를 활용할 수 있다거나 문화예술 중심 지역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서울 수도권 유치를 한 목소리로 반대하는 지자체들은 지역균형발전을 언급합니다. 여야 의원 가운데 `부울경` 의원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건희 컬렉션 미술관 수도권 건립을 반대한다는 청원이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와 있기도 합니다. 서울 수도권에 문화예술 시설과 공간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건희 미술관을 또 건립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다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는데, 왜 그런가요.?

▶기증 문화재와 예술품의 범위가 너무 넓기 때문에 이를 한 공간에 모아 놓을 수 있을지 불가능하고 현실적으로 의미와 가치가 없다는 점을 말합니다. 이른바 백화점식의 미술관과 백화점을 합쳐 놓는 방식은 저개발국가에서나 시도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이러한 점에서 뚜렷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나누어 기증한 것이 각각 9000여점과 1400점인 이유일 것입니다. 더구나 작품에 따라서 광주, 대구, 전남도립, 서귀포, 영구 등지에 분산 기증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만약 지자체가 유치한다면 기존의 기증한 대장 목록에서 삭제를 해야 합니다.

해외의 경우에도 각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성격이 분명합니다. 영국의 데이트 모던은 19세기 이후 20세기 작품, 국립미술관은 초기 르네상스에서 19세기 후반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은 아예 공예미술품과 디자인을 특화했습니다. 이런 사례들을 봐도 알 수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전처럼 백화점식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많은 전문가들은 국립근대 미술과 같은 방식을 권하고 있습니다. 별도의 공간을 그 안에 마련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현실적인 방안 때문입니다.


▷이건희 미술관은 이른바 `빌바오 효과` 때문에 유치하려고 한다는데 빌바오 효과란 게 뭔가요?

▶빌바오(Bilbao) 효과는 문화예술이 도시발전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말합니다. 한때 철강과 조선소로 융성했던 스페인의 지역 도시 빌바오가 쇠퇴하게 되어 실업률이 35%를 기록합니다.빌바오 효과는 이런 빌바오에 1997년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시작한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게 되면서 일어난 효과를 가리킵니다. 약 40만명이 되지 않는 작은 도시에 한 해 130만명의 관람객이 오가게 된 것은 바로 구겐하임 미술관 때문인 것이죠. 쇠락한 공업 도시를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로 변화시켰습니다. 경제 효과도 수입억 달러의 관광 수입이 늘어났고 한해 200억원 이상의 매출 효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빌바오의 사례는 도시 건축물이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를 낳는 사례로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빌바오 효과라는 게 단지 미술관 하나를 건립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지 않나요?

▶건축비 2500억원을 내겠다는 지자체도 있습니다. 하지만 빌바오 시에 미술관만 지은 것은 아닙니다. 주변 지역의 연계개발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주변 강의 수변 공간을 정비하기도 하고 주거지역도 탈바꿈시켰습니다. 운송, 교통 시스템 등 도시 인프라를 구축하여 사람들이 편리하게 지내거나 오갈 수 있게 했습니다. 이 때문에 더욱 많은 예산이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의 문화시설만이 아니라 포괄적인 도시 프로젝트가 필요한 것입니다. 빌바오시는 단지 하나의 건물이 들어섰기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상호 시너지 효과를 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더구나 미술관 하나를 짓는데도 엄청난 노력과 지난한 과정이 필요한 것인데 갑자기 유치전에 나서는 것은 문화예술을 대하는 태도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명분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미술관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선거를 의식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겠죠. 유치를 희망하는 지자체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경우 현재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과연 제대로 운영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입니다. 운영 관리 수준이나 예산 그리고 인력 수준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미비하기 때문입니다. 그간 운영하던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그럼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게 됩니다. 지자체의 경제 논리, 정치 논리가 더 크게 보이는 오늘의 상황입니다.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전무합니다.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만 해도 바스크 정부가 정치 문화적 정책으로 운영 재원과 지원을 맡고, 솔로몬 구겐 하임재단은 예술 소장품을 기증하여 전시 프로그램 지원과 박물관 운영 관리의 세계적 수준이 결합되어 이뤄집니다. 이와 같이 최고 수준의 관리와 협력 체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안이 우선이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시민과 국민을 위해 작품들이 존재해야 할텐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세요?

▶당연히 이건희 컬렉션에 있는 문화예술작품은 모두 국민에게 관람의 기회를 통해 문화적 향유가 이뤄져야 합니다. 분류와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고 이를 다양한 기회를 통해서 국민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작품들은 13개 분관을 통해서 지역민들에게 향유될 수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도 지역 분관과 국공립 공간을 통해서 협업적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역 공간 경우, 항온항습 그리고 조명과 보안 등에 관한 기술과 시스템이 갖춰져야 합니다. 시설 확충만이 아니라 전문인력의 확보도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미술관이든 박물관이든 건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연구와 조사, 기획 등에 관한 강화가 우선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지속적이고 항구적이며 선순환될 수 있는 방안을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구겐하임 미술관을 만든 폐기 구겐하임은 돈을 바라고 작품을 모으고 미술관을 만든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사점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네, <문화로 읽는 세상> 김헌식 문화평론가와 함께 했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cpbc 윤재선 기자(leoyun@cpbc.co.kr) | 입력 : 2021-06-1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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