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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월) - <3> ‘양냄새 나는 착한 목자’ 문창우 주교의 삶과 신앙

재생 시간 : 03:21|2020-11-23|VIEW : 135

제목 : ‘양냄새 나는 착한 목자’ 문창우 주교의 삶과 신앙[앵커] 제주 출신 첫 주교인 문창우 주교.제5대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는 한평생 제주를 사랑하고 낮은 곳에서 신자들을 위해 살아온 목자입니다. 문 주교의 삶과 신앙을 전은지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제주 출신인 문창우 주교는 감수성 충만한 청소년 시기인 고2 때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났습...
제목 : ‘양냄새 나는 착한 목자’ 문창우 주교의 삶과 신앙

[앵커] 제주 출신 첫 주교인 문창우 주교.

제5대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는 한평생 제주를 사랑하고 낮은 곳에서 신자들을 위해 살아온 목자입니다.

문 주교의 삶과 신앙을 전은지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제주 출신인 문창우 주교는 감수성 충만한 청소년 시기인 고2 때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어릴 때 복사를 서거나 소신학교를 다닌 건 아니었지만, 청년시절에는 주일학교 교리교사로 봉사에도 나섰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언제나 문 주교의 별명은 ‘착한 아이’였습니다.

여동생들이 싸울 때면 다툼을 중재하고, 길가에서 만난 헐벗은 아이를 보면 입고 있던 옷을 벗어주기도 했습니다.

문 주교는 1981년 제주대 농화학과에 입학 후 마리아 영성 운동인 ''포콜라레’를 접하게 됩니다.

이탈리아어로 ‘벽난로’를 의미하는 포콜라레는 2차 대전 당시 폐허가 된 세상에 희망을 불어넣고자 이탈리아 평신도인 끼아라 루빅 여사가 설립한 ‘사랑과 일치의 영성’을 사는 평신도 단체입니다.

민주화 운동으로 전국이 어지러웠던 1980년대, 문 주교는 학생들과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치면서 포콜라레 모임을 통해 신앙을 깊이 다졌습니다.

문 주교는 대학 졸업 후 포콜라레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로 무작정 떠나게 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확인하고 싶어 떠난 ‘영성유학’을 마친 뒤에야 사제 성소를 확신하게 됐습니다.

이처럼 문창우 주교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신앙을 키우고, 성소를 발견해 사제로, 또 주교로 서품될 때에도 많은 이의 기대와 사랑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2017년 6월 28일, 제주교구 부교구장 주교로 임명된 문 주교의 사목표어는 요한복음 17장 21절 말씀인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입니다.

문 주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언인 이 말씀을 사제 수품 때부터 마음에 새겼습니다.

<문창우 주교 / 제주교구장, 2017년 8월 15일 문창우 주교 서품식>
“예수님의 유언인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는 말씀의 실천을 통해서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키워드로 섬김과 사랑, 기쁨과 은총의 리더십을 우리 가운데 자리매김하는 시간이길 기도해봅니다.”

문 주교는 언제나 친근한 목자입니다.

신성여자중학교 교장으로 지내던 때의 일화는 유명합니다.

교장실을 개방하고, 아이들에게 직접 달걀을 까서 간식을 나눠줄 정도로 소탈한 모습을 보인 문 주교는 또한 제주도민을 돕는 일이라면 언제나 발 벗고 나섰습니다.

해군기지 건설로 논란이 일었던 강정마을에는 한 달에 한 번 방문해 주민들과 미사를 봉헌했고, 제주 4·3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면서 상처받은 도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줬습니다.

<문창우 주교 / 제주교구장, 2018년 1월 18일>
“한국 천주교회가 좀 더 이러한 응답들을 본격적으로 해나가는 데 있어서, 특별히 올해 70주년은, 이제 70주년이 지나면 4·3을 직접 겪었던 분들이 거의 나이가 들고 세상을 많이 떠나시고 있기 때문에, 뭔가 이 제주의 아픔을 한국 천주교회가 함께 해나가는 안에서 이것들을 성찰하고…”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낮은 이들에게 손길을 내밀어온 문 주교는 이제 제주교구장으로서 제주도의 복음화를 위한 새로운 목자로 첫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CPBC 전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