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11/28(목) - 4. ‘화성 8차’ 무기수 윤 빈첸시오의 신앙

재생 시간 : 05:19|2019-11-28|VIEW : 158

<4> ‘화성 8차’ 무기수 윤 빈첸시오의 신앙   화성연쇄살인사건 중에서 범인이 붙잡힌 유일한 사건이죠. 8차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범인으로 몰려 옥살이를 한 윤 빈첸시오 씨가 재심을 청구했는데요. 윤 씨가 긴 옥살이를 버틸 수 있었던 건 신앙의 힘이 컸다고 합니다. 윤 빈첸시오 씨를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

<4> ‘화성 8차’ 무기수 윤 빈첸시오의 신앙

 

화성연쇄살인사건 중에서 범인이 붙잡힌 유일한 사건이죠.

8차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범인으로 몰려 옥살이를 한 윤 빈첸시오 씨가 재심을 청구했는데요.

윤 씨가 긴 옥살이를 버틸 수 있었던 건 신앙의 힘이 컸다고 합니다.

윤 빈첸시오 씨를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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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 빈첸시오 씨의

어린 시절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했고,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그만둬야 했습니다.

혹시 사회적 약자에 가까웠던 이런 환경이 윤 씨를 범인으로 몰아간 건 아닐까.

 

윤 씨는 옥살이 내내 억울함을 주장해 교도소에서 ‘무죄’로 통했지만, 그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춘재가 8차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자백하면서, 억울함을 풀 용기를 냈습니다.

윤 씨는 지난 13일 수원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맹현균 기자>

"여기는 충북 청주입니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들의 정착을 지원하는 뷰티플라이프 교화복지회 앞인데요. 화성연쇄살인사건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서 2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윤 빈첸시오 씨도 이곳의 도움을 통해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과연 억울함을 들어줬던 사람은 누구인지, 윤 씨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지 어느덧 3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윤 빈첸시오>

"글쎄 과거 얘긴 하고 싶은 얘긴 별로 없어요. 인터뷰도 많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30년 전 얘기하면 트라우마 때문에 머리가 많이 아파요. 그래서 인터뷰할 때도 그건 제가 생략을 많이 해요."

 

억울함을 주장하는 윤 씨의 허위 자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경찰의 가혹행위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윤 빈첸시오>

"무조건 사형이라는 거에요. 그분(교도관)이 말하기를 ‘시인하고 동정 받아라. 그러면 무기(징역)는 받을 것이다’. 그래서 저도 살고는 봐야 할 것 아니에요. 그 당시 사형도 구형이 있었고..."

 

결국 2심과 대법원은 윤 씨의 항소와 상고를 기각했고, 무기징역이 확정됐습니다.

그렇게 기나긴 수형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도움을 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도관 박종덕 씨는 윤 씨를 살뜰하게 챙겼습니다.

 

김현남 수녀와 뷰티플라이프 나호견 원장 등 천주교 교정위원들은

윤 씨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줬습니다.

 

<윤 빈첸시오>

"장기수들이 종교가 없으면 버틸 수가 없어요. 누가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가족들이 온다고 해도 10년이 짧은 세월이 아니에요. (중략) 천주교에 입문해 종교의 힘(신앙)을 갖게 된 건 내 의지에요. 자기 의지가 종교의 힘(신앙)이 없으면 버텨내지 못해요."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버틴 끝에 모범수가 됐습니다.

그렇게 윤 씨는 20년형으로 감형을 받았고, 2009년 출소했습니다.

 

스물두 살 청년은 마흔이 넘어서야 감옥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갈 곳이 없던 윤 씨를 받아준 건 교정위원으로 만난 뷰티플라이프 나호견 원장이었습니다.

 

<나호견 엘리사벳 / 사단법인 교화복지회 뷰티플라이프 원장>

"원장님, 모든 사람이 저를 살인자라고 해요. 그런데 저는 아니에요. 원장님 한 분이라도 제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믿어주시면 저는 원이 없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는데 제가 너무나 놀랐죠. 그 때 말할 때는 그냥 소문이었고, 본인이 손을 잡고 얘기하는데 저도 떨리더라고요. 그리고 어떻게 눈물이 나는지 정말이냐 그랬더니 맞다는 것이에요. 그렇게 어떻게 살았어 20년을 그랬더니. 안 그러면 죽겠더라고요. 살아야 하니까요."

 

윤 씨는 출소 이후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고 있습니다.

8년째 한 직장에서 일하면서, 월급의 일부를 꼬박꼬박 저축합니다.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습니다.

나 원장은 지난 10년 동안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윤 씨의 무죄를 확신했습니다.

 

<나호견 엘리사벳 / 사단법인 교화복지회 뷰티플라이프 원장>

"다른 형제들 신자들 많아요. 안 가요. 그냥 자요. 피곤하다고. 놀러는 가도 성당은 안 가요. 그런데 빈첸시오는 최대한으로 특별한 경우 외에는 그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미사를 가요. 저는 그 때 대단하다..."

 

윤 씨는 재심이 끝나면 자신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계획입니다.

 

<윤 빈첸시오>

"수용자들 (교도소에) 다시 들어가는 이유가 우리 사회의 냉대에요. 냉대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어요. 우리가 보듬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 앵커 리포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