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순수녀의 시편 묵상

제38강 시편 139편 모든 것을 아시고 어디에나 계시는 주님

재생 시간 : 08:37|2013-03-05|VIEW : 5,036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살펴보시어 아십니다. 제가 앉거나 서거나 당신께서는 아시고 제 생각을 멀리서도 알아채십니다"               시편 139편 1-2절 시편 139편에는 간구·탄원·감사·신뢰·지혜 등 여러...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살펴보시어 아십니다.
제가 앉거나 서거나 당신께서는 아시고
제 생각을 멀리서도 알아채십니다"
              시편 139편 1-2절

시편 139편에는 간구·탄원·감사·신뢰·지혜 등 여러 유형의 요소가 들어 있어서 어느 한 유형으로 분류하기가 어렵지만 전체적으로 찬양 시편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찬양 시편은 아니고 아주 독특한 찬양 시편에 속합니다. 1-18절까지는 찬양의 요소가 두드러지고, 19-24절까지는 탄원의 요소와 함께 악인의 멸망을 청하는 험한 말이 나옵니다. 시인은 모든 것을 다 아시며 어디에나 계신 재판관이시요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이 시편은 성경의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말해 주며, 하느님과 인간의 거리감과 친밀감을 잘 드러내 줍니다. 이 시편에 나타나는 하느님은 전지하시고 편재하시며 창조주이십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고(1-6절), 하느님은 어느 곳에나 언제나 계십니다(7-12절). 더욱이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오묘하게도 지으셨다고 합니다(13-18절). 그리고 하느님을 거역하는 원수는 하느님의 징벌을 받아야 합니다(19-24절). 이 시편에는 ‘알다’라는 동사가 일곱 번이나 나오면서 하느님이 무엇이나 다 아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시인은 고난 가운데 있으면서 묵상을 통하여 자신의 영혼을 성찰하며 주님의 현존을 체험합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살펴보시어 아십니다.(1절)

시인이 ‘주님께서 자신을 아신다’고 고백하는 것은 그의 원수들에게서 비방과 고발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19-24절) 주님 앞에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1사무 2,3) 공의로운 판단을 내려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살펴보다”는 단어는 보석을 분별할 때 사용되며(욥 28,3) ‘조사하다’는 뜻이고, ‘꿰뚫어보다’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아신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생각(2절)과 행동(3절)과 언어(4절)를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알고 계심은 두려움이 아니라 친밀하게 사랑의 관계로 해석해야 합니다. ‘알다’를 ‘사랑하다’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알 때 그것은 사랑입니다. 영성적인 면에서 본다면, “저를 살펴보시어 아신다”는 말은 내면을 가장 깊이 성찰하는 표현입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신비한 당신의 예지 너무 높아 저로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6절)

하느님께서 알고 계심에 대하여 감탄하며 경탄하고 있습니다. 경탄의 표현은 감사와 은혜로움을 느끼는 사랑의 표현이지 무서워하는 자의 표현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의 이해차원을 훨씬 넘어서서 알고 계십니다. “예지”는 하느님께서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말과 행동과, 생각과 동기까지 다 아신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높다”는 것은 ‘접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는 절대적인 거리가 있고 우리의 생각으로는 그 간격을 메울 수 없습니다.

제가 오묘하게 지어졌으니 당신을 찬송합니다. 당신의 조물들은 경이로울 뿐. 제 영혼이 이를 잘 압니다.(14절)

시인은 자기를 지어내신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시인이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은 그가 자신을 하느님 손의 놀라운 작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이 그를 특별하게 창조하심에 경탄합니다. “오묘하게”로 옮긴 히브리 말은 ‘무섭고 감탄스럽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오묘하게’ 지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그와 하느님 사이의 무한한 차이를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단지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을 찬양하고 또한 하느님의 최고의 신비를 보면서 두려움에 떨뿐입니다.

하느님, 저를 살펴보시어 제 마음을 알아주소서. 저를 꿰뚫어 보시어 제 생각을 알아주소서.(23절)

시인은 처음(1-3절)과 같은 주제를 다룹니다. 시인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이미 살펴보시어 아셨지만 앞으로도 엄격하게 살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는 “제 마음”과 “제 생각”을 알아 달라고 합니다. “마음”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일어나는 자리입니다. “생각”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고 불안한 감정으로서 걱정(시편 94,19)과 공포(욥 4,13)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께서 자신의 생각뿐 아니라 불편한 심기까지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자신을 완전히 하느님의 손에 맡깁니다.

 시편 139편은 하느님께 대한 지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곧 이 시편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시고(전지성), 어느 곳에나 계시며(편재성), 인간을 오묘하게 지으셨다는 것(창조성)을 알리고 있습니다. 시인은 인간의 이해를 능가하는 하느님의 무한한 지식에 대해 놀랍니다. 그 때문에 그는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철저한 조사와 올바른 길을 따를 수 있는 안내를 간청합니다.

원수들 때문에 고통 받는 시인은 재판관이신 하느님께 나아가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합니다. 그는 주님께서 자신을 알고 계심을 확신하며, 하느님은 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며, 자신의 가장 깊은 곳도 아신다는 확신을 갖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 하느님의 전지하심과 편재하심과 전능하심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전지하시고 편재하시며 전능하신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영성적인 면에서 볼 때, 이 시편은 독자에게 영적인 고독에서 벗어나 따스한 위로를 느끼게 하며, 하느님과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도록 해 줍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어디에나 계시는 주님께서 우리와 동행해 주십니다. 하느님은 한 순간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 저를 살펴보시어 제 마음을 알아주소서. 저를 꿰뚫어 보시어 제 생각을 알아주소서.”(2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