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순수녀의 시편 묵상

제31강 시편 34편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재생 시간 : 08:33|2013-03-04|VIEW : 4,184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행복하여라, 그분께 피신하는 사람." (9절) 시편 34편은 일반적으로 감사 시편으로 분류되지만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고 교훈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점으로 보아 교훈적 감사 시편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시편은 각 절이 히브리 말의 알파벳 순서에 따라 알렙, 베트, 기멜 등의 글자로 시작되는 ...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행복하여라, 그분께 피신하는 사람." (9절)

시편 34편은 일반적으로 감사 시편으로 분류되지만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고 교훈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점으로 보아 교훈적 감사 시편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시편은 각 절이 히브리 말의 알파벳 순서에 따라 알렙, 베트, 기멜 등의 글자로 시작되는 알파벳 시편이라서 히브리 말 본문을 기억하기가 쉽습니다.

이 시인에게 하느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이들에게도 하느님의 선하심을 맛보도록 초대합니다. 하느님은 약한 자들의 호소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며, 그들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며, 악인들이 멸망하게 하십니다. 특히 이 시편은 의인이 많은 고난을 당하더라도 하느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신다고 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들은 듣고서 기뻐하여라. (3절)

"자랑하다"는 낱말은 '찬양하다'와 같은 어근(ללה)에서 나옵니다. 자랑과 찬양은 동의어입니다. 구원받은 이의 감사노래는 주님을 자랑하는 것이고, 이는 가난한 이들에게 증언과 메시지가 됩니다. 구원을 체험한 이가 주님을 자랑하면 가난한 이들이 듣고 그들도 그 기쁨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 자랑은 자신에 대한 자랑이 아니고 주님에 대한 자랑이기에 자기 자랑과는 달리 불쾌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자랑하는 소리는 주위 사람들까지 기뻐하게 만듭니다.

"가난한 이들"은 시련을 당하며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로 구원받은 이의 찬양에 기뻐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궁핍함으로 인해서 오직 주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들 스스로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것을 하느님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는 그저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도움 받을 데 없고 기댈 데 없는 사람들입니다.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행복하여라, 그분께 피신하는 사람! (9절)

이 구절에서는 주님의 선하심(좋으심)을 맛보고 그분을 의지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시인은 주님의 선하심을 체험하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맛보도록 초대합니다. 이 시편에는 '좋음 또는 선함(בוֹט)'이 여러 번(9.11.13.15절) 나타나는데, 이 말이 주님께 직접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여기뿐입니다. 여기서는 "주님의 좋으심"을 언급합니다.

"맛보다"는 낱말은 음식을 '먹다, 맛보다'를 뜻하고, 또한 경험이나 배움을 통해서 아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체험을 통해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눈여겨보다"로 번역된 말은 단순히 '보다'라는 뜻에서 의미가 확장되어 '인지하다, 의식하다, 알다, 주시하다, 고찰하다'는 등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맛보고 눈여겨보아라."고 하는 표현은 하느님의 선하심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여 알게 된 시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맛보아 알 것을 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아, 와서 내 말을 들어라. 너희에게 주님 경외함을 가르쳐 주마. (12절)

이 구절은 교훈적인 어조를 띱니다. 시인은 지혜 교사로서 "주님 경외함"을 가르치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아이들"은 지혜 교사의 학생들입니다. 현인들은 자기에게 배우는 이들을 제자들이라고 합니다. 스승이 제자들을 아이들, 곧 자녀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혜 교육을 통해 그들을 현인들의 가문으로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지혜 교사의 교육 내용은 "주님 경외함"입니다. 이는 이론이 아닌 실천적인 교육으로 올바른 인생길을 걸어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말을 조심하고,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며 평화를 찾는 것입니다. 카시오도루스는 주님 경외함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공포를 일으키는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을 일으키는 두려움입니다. 인간적인 두려움은 괴로움을 포함하지만, 이것은 감미로움을 포함합니다. 인간적인 두려움은 우리를 억지로 노예로 만들지만, 올바른 두려움은 자유를 향해 우리를 데리고 갑니다."

의인의 불행이 많을지라도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에서 그를 구하시리라. (20절)

현실적으로 볼 때 의인에게 어려움이 많습니다. 의인이 위기와 시련을 모면하게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사실 의인이 악인보다 더 큰 고통을 겪습니다. 그렇지만 의인은 악인과는 다른 차원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의인의 삶과 길은 다른 이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혜 2, 15) 그는 이 세상 안에 하느님의 의식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이 세상에서 고통 받으시듯이 그도 고통에 찬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에서 그를 구하십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의인의 고통에서 나타납니다. 의인은 고통 속에서도 함께하시는 주님과 함께 기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바로 이것이 그의 구원입니다.

시편 34편의 시인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선하심을 맛보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선하심을 체험한 이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또한 그는 주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칩니다. 주님을 경외함은 삶의 기초이며, 삶의 기쁨과 행복과 장수의 비결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경외한다고 해서 언제나 인생이 편안하고 고통을 맛보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의인에게도 인생의 시련이 따릅니다. 고통 없이 마음상하지 않고 사는 편안한 인생이란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구원이고 행복입니다. 하느님은 선하시고 우리의 고통 가운데서도 함께 해 주시는 분이시기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감사는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의인의 불행이 많을지라도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에서 그를 구하시리라." (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