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순수녀의 시편 묵상

제28강 시편 27편 하나의 소원

재생 시간 : 08:28|2013-02-08|VIEW : 2,638

"주님께 청하는 것이 하나 있어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을 우러러보고 그분 궁전을 눈여겨보는 것이라네." (4절) 시편 27편은 신뢰(1-6절)와 탄원(7-14절) 요소가 함께 나타나지만 전체적으로는 개인 탄원 시편으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신뢰의 요소가 특별히 강조된 탄원 시편입니다. 이 시인은 많은 위험 ...

"주님께 청하는 것이 하나 있어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을 우러러보고
그분 궁전을 눈여겨보는 것이라네." (4절)

시편 27편은 신뢰(1-6절)와 탄원(7-14절) 요소가 함께 나타나지만 전체적으로는 개인 탄원 시편으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신뢰의 요소가 특별히 강조된 탄원 시편입니다. 이 시인은 많은 위험 가운데서도 용감하게 자신의 현실과 직면하도록 해 주시는 하느님께 두려움 없는 신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체험하고 있는 어둠 속에서 주님이 그의 빛이요 구원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에서 시인은 악인들이 그를 집어삼키려 달려들고 성전 예배에서도 쫓겨날 상황인데도 그는 '오직 한 가지 소원'을 가지고 주님께 기도합니다. 그것은 그가 주님의 집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며, 한평생 주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느님과의 영속적인 친교 안에 살면서 그분의 보호하심을 누리려는 열망을 표현합니다. 구원을 받은 그는 계속 주님의 인도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께서는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1절)

시인은 적들의 공격을 받고 있지만 전혀 두려워하지 않음을 천명합니다. 그는 "두려워하랴", "무서워하랴"고 하면서 어떠한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음을 반복적으로 말합니다. 이러한 반복적인 표현은 시인이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강한 믿음을 드러냅니다.

주님은 빛·구원·요새로 묘사됩니다. "빛"은 어둠을 물리칩니다. "구원"은 빛과 동의어이며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역사적인 구원 사건을 통하여 자신을 백성들에게 드러내 보이셨지만 그분의 구원 활동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백성들의 구원자요 개인의 해방자이십니다. "요새"는 보호와 안전을 뜻합니다. 하느님이 시인의 요새가 되시는 것은 그에게 적대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청하는 것이 하나 있어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을 우러러보고 그분 궁전을 눈여겨보는 것이라네. (4절)

주님께 "청하는 것 하나"란 그의 '단 하나의 소원'이며 그의 '인생 목표'입니다. "하나"는 강조 용법으로 '오직 한 가지'만을 나타냅니다.

"내 한평생"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을 말합니다. 달리 말해 '지속적으로'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산다."는 것은 주님이 현존하시는 성전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이라기보다, 지속적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주님을 가까이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아름다움"은 기본적으로 '은총'과 '‘사랑'을 의미합니다. "아름다움"으로 옮긴 히브리 말 '노암'은 '즐거움, 아름다움, 애정, 은혜'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아름다움을 우러러본다."고 하는 시인은 주님과의 친밀함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궁전을 눈여겨본다."에서 '눈여겨보다'로 옮긴 히브리 말 '바카르'는 '조사하다, 구하다'라는 뜻을 가지는데, 이것은 '기도하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결국 시인이 바라는 것은 주님의 은총 속에서 기도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버릴지라도 주님께서는 나를 받아 주시리라. (10절)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버릴지라도"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는 자신이 아무리 극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하느님이 보호하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 방식입니다. "버릴지라도"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버린 것이 아니라 버릴 가능성을 가정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부모님의 사랑보다도 훨씬 더 크고 확고하기 때문에 자신은 완전히 버림당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받아 주시리라"고 하는 표현은 주님께서 고통 받는 이와 같이 계실 것이며, 그를 하느님 백성의 집안에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선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 당신의 길을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 저의 원수들 때문이니 바른길로 저를 인도하소서. (11절)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로 기울어지는 나약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바른길로 가기 위해서는 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가르쳐 주소서"라고 하는 것은 시인이 주님을 스승으로 모신다는 자세입니다. 더욱이 원수들이 있는 상황에서 바른길로 가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주님께서 바른길로 인도하고 가르쳐 주시도록 기도드립니다.

"바른길"은 장애물이 없는 쉬운 인생길을 의미하기보다는 주님 앞에 올바른 인생길을 말합니다. 올바른 인생길을 위해서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주님의 길," 곧 율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시인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원하시지 않는 것,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것과 싫어하시는 것을 알고자 합니다. 그가 해야 될 것을 하지 못한다면 그는 죄를 지을 것입니다.

시편 27편의 시인은 두려움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는 원수들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으며, 게다가 그의 부모마저도 그를 버릴 수 있는 극심한 고통 중에 있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시인은 큰 힘이신 주님께 대한 굳건한 믿음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큰 시련 속에서도 시인의 유일한 소원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을 우러러보며 그분 궁전을 눈여겨보는 것'입니다. 소원이 있기에 그는 주님을 의지하여 삶의 온갖 두려움을 몰아내듯이 주님과 친밀하게 지내고자하는 소원은 신앙생활의 큰 힘이 됩니다. 우리의 유일한 소원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분은 우리의 빛이요 구원이십니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1ㄱ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