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순수녀의 시편 묵상

제27강 시편 6편 병 고침을 위한 기도

재생 시간 : 09:03|2013-02-01|VIEW : 2,882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는 쇠약한 몸입니다. 저를 고쳐 주소서, 주님, 제 뼈들이 떨고 있습니다. 제 영혼이 몹시도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 당신께서는 언제까지나...?" (3-4절) 시편 6편은 개인 탄원 시편에 속하며, 초대교회 때부터 32; 38; 51; 102; 130; 143편과 함께 참회 시편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이 ...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는 쇠약한 몸입니다.
저를 고쳐 주소서, 주님, 제 뼈들이 떨고 있습니다.
제 영혼이 몹시도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 당신께서는 언제까지나...?" (3-4절)

시편 6편은 개인 탄원 시편에 속하며, 초대교회 때부터 32; 38; 51; 102; 130; 143편과 함께 참회 시편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이 시편에는 병든 사람을 위한 간구가 담겨 있습니다. 시인은 탄식과 울음과 눈물로 자신의 심정을 드러냅니다. 그는 자신의 쇠약함과 죽음과 건강의 위협을 말하면서 병 고침을 위해 간구합니다. 이 시편 본문에는 '기도(터필라)'라는 단어가 명백히 나타나기 때문에(10절) 이 시편은 '병 고침을 위한 기도'로 볼 수도 있습니다.

시인은 심각한 병에 걸려 죽음과 저승에 가까이 와 있으면서 탄식하고 밤마다 울음으로 잠자리를 적십니다. 그는 병과 죽음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죽으면 하느님을 찬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하느님의 응답을 확신하고 믿음으로 나쁜 짓 하는 자들을 물리칩니다.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는 쇠약한 몸입니다. 저를 고쳐 주소서, 주님, 제 뼈들이 떨고 있습니다. (3절)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는 기도 형식이며 아마 병중에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쇠약해지다"는 것은 병과 불행의 결과입니다. 병은 사람의 기력을 빼앗아갑니다. 그는 육체적으로 죽음에 이르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뼈"는 육체적인 힘과 건강이 자리하는 곳입니다. 수사학적 표현으로 "뼈"는 인간 자신(시편 35, 10)을 가리키거나 '감정이 있는 곳'(시편 51, 10)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따라서 "뼈가 떨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무너지는 것이며, 몸과 마음이 극도로 쇠약해지고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다는 뜻입니다.

제 영혼이 몹시도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 당신께서는 언제까지나...? (4절)

시인의 뼈들이 떨고 있을 뿐 아니라(2절) 그의 영혼마저 떨고 있습니다. "떨린다"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그가 신체적·정신적으로 완전히 쇠약해졌음을 의미합니다.

"영혼"으로 번역된 히브리 말 네페쉬(שׁפנ)는 쓰임이 다양하며 목구멍·목·숨·갈망·생명체·생명·영혼·자기 자신 등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 "제 영혼"은 시인 자신을 가리킵니다. 시인은 하느님의 부재를 깊이 느끼면서 떨고 있습니다. "영혼이 떨고 있다"는 것은 그 인간 전부가 완전히 흔들려 그의 존재까지도 의심스럽게 된 극한의 상태를 말합니다.

"언제까지나"는 전형적으로 탄원 시편의 불평을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언제까지"라는 히브리 말은 하느님이 계시지 않은 것에 대한 구슬픈 신음을 나타냅니다.  

죽으면 아무도 당신을 기억할 수 없습니다. 저승에서 누가 당신을 찬송할 수 있겠습니까? (6절)

죽음의 땅으로 내려가고 있는 시인은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고 저승으로부터 구원받길 원합니다. "죽으면 아무도 당신을 기억할 수 없습니다."에서 '기억하다'는 '찬양하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기억하다'는 주님의 크신 업적을 생각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시편 111, 4) 그러므로 이 구절은, 죽은 자는 주님을 찬양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시인은 병들어 죽음에 처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성전에서 주님을 찬양할 수 없게 됨을 탄식합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도록 자신의 건강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합니다.

"저승"은 죽은 이들을 위한 지하세계로 '침묵의 땅' (시편 94, 17)이요, '망각의 나라' (시편 88, 13)이며 '멸망의 나라' (시편 88, 12)입니다. 그곳은 참 실재가 아닌 '그림자들' (시편 88, 11)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저승은 인간의 욕망도 하느님의 활동도 없는 곳을 말합니다. 저승은 돌아올 수 없는 땅이며(욥 7, 9) '산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곳'(욥 30, 23)으로 인류의 공통 운명의 장소입니다. 그곳에 거하는 자는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진 자입니다. 시인은 죽음으로써 더 이상 하느님을 찬양하지 못하고 하느님과 관계가 단절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내게서 모두 물러들 가라, 나쁜 짓 하는 자들아. 주님께서 나의 울음소리를 듣고 계신다. (9절)

"내게서 물러들 가라"는 말은 이 시편에서 전환점을 이룹니다. 여기서 시인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말합니다. 시인은 주님께서 들으셨다는 확신이 들자, 그의 탄식이 기쁨으로 전환됩니다. 그는 기도나 제사장을 통해서 위로의 말을 듣고 확신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시인의 편이 되셨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의 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로마 8, 31ㄴ)

"나쁜 짓 하는 자들"은 병들어 죽어가는 시인을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라고 말하며 그를 괴롭히는 자들로 볼 수 있습니다.

시편 6편의 시인은 죽을병에 걸려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그는 병들어 죽게 된 가운데 하느님의 부재를 깊이 느낍니다. 하느님은 그에게 죽음의 고통을 주고 떠났습니다. 죽을 지경에 이른 시인을 보고 그의 원수들은 좋아했을 것입니다. 시인은 그를 떠나신 하느님께 "돌아오소서"라고 간구하고 원수들에는 "물러가라"고 외칩니다.

시인은 그의 뼈들과 영혼이 떨리는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고 주님께 구원해 달라고 매달립니다. 그는 "죽으면 주님을 기억할 수 없고, 저승에서는 주님을 찬송할 수 없다"고 하면서 주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그는 자신을 버린 것 같은 하느님 앞에서 많은 눈물로 하느님의 은총을 구했고, 결국 하느님은 시인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이 시인은 우리에게 하느님이 떠나버린 것 같은 그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기도하게 합니다.

"제 영혼이 몹시도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 당신께서는 언제까지나...?" (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