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순수녀의 시편 묵상

제15강 시편 32편 죄의 고백과 용서

재생 시간 : 08:38|2013-01-14|VIEW : 2,718

"행복하여라, 죄를 용서받고   잘못이 덮여진 이! 행복하여라, 주님께서 허물을 헤아리지 않으시고 그 얼에 거짓이 없는 사람! (1-2절) 시편 32편은 개인 감사 시편이며 또한 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라 참회 시편에 속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32편의 말씀을 그의 침대 위에 새겨 놓고서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날 때 그 말씀을 제일 먼저 ...

"행복하여라, 죄를 용서받고  
잘못이 덮여진 이!
행복하여라, 주님께서
허물을 헤아리지 않으시고
그 얼에 거짓이 없는 사람! (1-2절)

시편 32편은 개인 감사 시편이며 또한 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라 참회 시편에 속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32편의 말씀을 그의 침대 위에 새겨 놓고서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날 때 그 말씀을 제일 먼저 보았다고 합니다.

이 시편의 시인은 병을 앓았으며 오직 회개와 용서를 통해서만 치유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하느님께 감추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심한 양심의 가책으로 고통을 받았고 하느님 앞에 죄를 솔직하게 고백할 때까지 그의 고통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죄를 고백함으로써 용서받았다는 확신감에 행복해집니다. 이 시편은 죄를 참회하는 것이 괴롭고 싫은 일이지만 진실하게 죄를 고백하고 나면 무한한 축복을 누리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죄를 용서받고 잘못이 덮여진 이! 행복하여라, 주님께서 허물을 헤아리지 않으시고 그 얼에 거짓이 없는 사람!" (1-2절)

"행복하여라"라고 묘사된 사람은 전혀 죄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죄의 용서를 받은 사람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충실함이나 덕에 대한 평가 없이 하느님께서 그를 용서하셨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다고 선언합니다. 시인은 "죄"와 "잘못"과 "허물"에 대하여 "용서받다", "덮여지다", "헤아리지 않다"와 같은 동사들을 사용하여 용서를 찬양하고 있으며 용서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필요한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거짓이 없는 사람"이란 죄를 회개하면서 '진실하게 고백하는 사람, 또는 위선을 벗어던진 사람'을 말합니다. 시인이 말하는 뜻은 '우리가 죄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과 우리 자신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절대적으로 진실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감추려하지 않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용서와 복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회개와 고백을 전제로 하고, 행복감은 이 회개와 고백이 진실할 때 경험됩니다.

"제가 입 밖에 내지 않으려 하였더니 나날이 신음 속에 저의 뼈들이 말라 들었습니다." (3절)

시인은 처음에 자기 죄를 고백하려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입 밖에 내지 않다"는 것은 '고백하지 않다'를 뜻합니다. '고백하지 않다'는 말은 '침묵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말하지 않고 감추고 있는 상태가 침묵으로 묘사됩니다. 이런 침묵은 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거부이기도 합니다. 회개는 자신의 죄를 공적으로 고백함으로써 새로운 관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자신의 죄를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알리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면서 죄의식 가운데 살고 있는 자신의 고통을 묘사합니다. 죄를 고백하지 않을 때는 마음이 무겁고 마음 안에 기쁨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시인을 괴롭힙니다. 자신의 죄를 감추려고 하자 점점 병이 깊어집니다. 그 결과 정신적으로 불안해지고 신체적으로 쇠약해지게 됩니다.

"신음"은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의 고통은 양심에서 일어납니다.

"뼈들이 말라들었다"는 것은 뼈가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므로 완전히 건강을 상실한 모습입니다.

시인은 죄가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가로막음을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제 잘못을 당신께 자백하며 제 허물을 감추지 않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 저의 죄를 고백합니다.' 그러자 제 허물과 잘못을 당신께서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5절)

시인은 이 절에서 고백과 용서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감추었던 죄를 고백합니다. 죄의 고백은 시인에게 있어서 회개를 의미합니다. 솔직한 자백이야말로 하느님의 용서를 받은 후에 하느님과의 관계를 성립하게 하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죄의 고백과 함께 시인은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죄의 고백으로 허물과 잘못을 용서받았습니다.

용서의 행위는 다른 어떤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고백의 행위 뒤에 직접 찾아옵니다. 괴로움(3-4절)과 용서(5절)의 차이는 주님께 죄를 고백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고백의 여부입니다. 죄의 고백은 카타르시스적이고 치유의 경험을 가져옵니다. 하느님께는 용서가 있습니다. (시편 130,4 참조)

시편 32편의 시인은 처음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고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죄를 마음에 감추고 있으면서 그는 결국 양심의 가책을 받고 마음과 몸에 무서운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심한 죄책감에 짓눌리고 몸에 병이 들었습니다. 시인은 죄의식에 짓눌려 있으면서 기운이 다 빠졌습니다. 죄는 눈을 어둡게 하고 양심을 마비시키고 영적인 감수성을 무디게 하여 즉각 죄를 고백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시인을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고 그를 짓누르셨습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체험합니다. 용서는 죄 고백이 있어야 이루어집니다.

이 시편은 신약성경에서 전하는 진리의 말씀에 대한 하나의 증언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1요한 1,8-9) 이로써 이 시편은 복음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용서의 필요성을 깨닫는 죄인들에게 진정한 행복의 길을 가르쳐줍니다.

"행복하여라, 죄를 용서받고 잘못이 덮인 이!" (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