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순수녀의 시편 묵상

제12강 시편 131편 고요한 영혼

재생 시간 : 08:24|2012-12-20|VIEW : 3,012

"오히려 저는 제 영혼을 가다듬고 가라앉혔습니다. 어미 품에 안긴 젖 뗀 아기 같습니다. 저에게 제 영혼은 젖 뗀 아기 같습니다." (2절) 시편 131편은 신뢰 시편에 속합니다. 이 시편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와 같습니다. 짧고 아름다운 시이며 평온과 평화가 넘칩니다.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편입니다. 이 시인은 자기와의 싸...

"오히려 저는 제 영혼을
가다듬고 가라앉혔습니다.
어미 품에 안긴 젖 뗀 아기 같습니다.
저에게 제 영혼은 젖 뗀 아기 같습니다." (2절)

시편 131편은 신뢰 시편에 속합니다. 이 시편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와 같습니다. 짧고 아름다운 시이며 평온과 평화가 넘칩니다.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편입니다. 이 시인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후 격정이 없습니다. 주님을 신뢰한다는 신앙고백은 '눈의 외적인 표시'와 '마음(영혼)의 내적 태도'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시인의 염원(열망)이 잘 통제되고 있습니다. 시인은 깊은 내적 평화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이 시편은 우리가 관상을 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 시편은 하느님의 사랑을 모성애의 이미지로 소개합니다. 어머니와 아기의 표상이 나옵니다. 어머니는 '나'이고 아기는 '나의 염원'입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팔 안에서 흔들어 주듯이 시인은 자신의 염원을 통제합니다.  

"주님, 제 마음은 오만하지 않고 제 눈은 높지 않습니다. 저는 거창한 것을 따라나서지도 주제넘게 놀라운 것을 찾아 나서지도 않습니다." (1절)

시인은 간청도 찬양도 아닌 자신의 내적 평화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내세울 것이 없는 가난한 자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고요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교만한 사람들의 특징에 "않다"라는 부정적인 표현으로 자신의 겸손을 보여줍니다.

"내 마음은 오만하지 않고"라는 말은 마음을 높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우쭐대거나 으쓱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곧 자신이 겸손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자신의 인간됨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람은 주님만을 바라볼 때 겸손하게 됩니다.

"제 눈은 높지 않습니다"라는 말은 '거만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거만한 눈은 주님께서 싫어하십니다. 눈 높은 악인이 일구어 심는 것은 죄밖에 없습니다.

"거창한 것"이란 '너무 어려운 일'을 말할 수 있습니다. 벤시라는 겸손을 가르치면서 "너에게 너무 어려운 것을 찾지 말고 네 힘에 부치는 것을 파고들지 마라."(집회 3,21)고 훈계 합니다.

"주제넘게 놀라운 것을 찾아 나서지도 않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한계 때문에 무한하신 하느님께 의존하고 그분의 보호를 받는다고 느낍니다. 한계를 인식하는 것은 하느님과의 통교를 가능하게 합니다. "찾아 나서지도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대해 야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에 겸손하게 순종한다는 표현입니다.

"오히려 저는 제 영혼을 가다듬고 가라앉혔습니다. 어미 품에 안긴 젖 뗀 아기 같습니다. 저에게 제 영혼은 젖 뗀 아기 같습니다." (2절)  

시인의 모습은 어머니의 품에 있는 아기의 모습입니다. 그의 내적 평온을 고백합니다. 여기에는 평화롭고 만족스럽고 완전한 신뢰가 있습니다.

"제 영혼"과 "젖 뗀 아기 같습니다"라는 말이 두 번 반복되어 단순한 표현 속에 만족스런 영혼의 상태를 잘 보여줍니다. 차분히 주님께 의지하는 모습입니다. 시인이 어머니 품안에서와 같은 평화를 느끼는 것은 그가 오만하지 않고 자기의 분수를 알기(1절) 때문입니다. 시인은 분명히 교만과 죄악과 인간적인 욕심이 없는 상태입니다.

"젖 뗀 아기"는 젖을 빨지 않고 엄마 품에 안겨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젖을 성공적으로 뗐다는 표시입니다. 그래서 시련을 극복하고 성숙을 향해 내딛는 첫걸음입니다. 시인은 젖뗀 후에 다시 어머니 품에 들어가는 고요함과 평안함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느님의 품에 안긴 채 젖 뗀 아기의 평화를 체험하면서 자신을 편안하게 주님께 맡깁니다. 이 표현은 만족한 상태를 상징합니다. 하느님은 시인이 구하기도 전에 모든 것을 다 채워주시기 때문에 시인은 그것을 알고 하느님께 의지합니다.  

시편 131편은 평온하고 신뢰에 찬 느낌을 줍니다. 겸손에서 나오는 아주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주님 앞에 고요히 머무는 모습은 관상의 경지를 말해 줍니다. 이런 영적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완고한 자아와 피나는 싸움을 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제는 하느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명예와 부와 권력을 뒤로한 자세입니다. 그는 자신의 뜻을 굽히고 완전히 하느님께 의지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완전히 의탁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는 때가 많습니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뿌리에는 자아가 있습니다. 자신의 계획, 의지를 실현시킬 수 없기 때문에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므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자아에 집착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편안히 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마태 11, 28)고 하십니다. 안식을 얻는 것은 자녀가 어머니 품에 안기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 앞에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기가 아무 것도 숨김없이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리듯이 약한 자신의 모습 그대로 하느님 품에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자녀를 위로하듯이 하느님은 나를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제 영혼은 젖 뗀 아기 같습니다." (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