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순수녀의 시편 묵상

제10강 시편 55편 배반당한 아픔 속에서 바치는 기도

재생 시간 : 08:16|2012-12-20|VIEW : 4,151

"원수가 저를 모욕한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제가 참았을 것입니다. 저를 미워하는 자가 제 위에서 거드름을 피운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제가 그를 피해 숨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 내 동배 내 벗이며 내 동무인 너." (13-14절) 시편 55편은 개인 탄원 시편에 속합니다. 이 시편은 위험과 고뇌와 버림받은 때에 바치는 기도입니다. 이...

"원수가 저를 모욕한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제가 참았을 것입니다.
저를 미워하는 자가 제 위에서 거드름을 피운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제가 그를 피해 숨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 내 동배
내 벗이며 내 동무인 너." (13-14절)

시편 55편은 개인 탄원 시편에 속합니다. 이 시편은 위험과 고뇌와 버림받은 때에 바치는 기도입니다. 이 시편에서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의 '갈등'이 잘 묘사되어 있고 '폭력․분쟁․불의․고통․파멸․억압․속임수'가 무섭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10-12절)

시편 55편의 시인은 성안의 폭력과 친구의 배반 때문에 괴로운 심정을 토로합니다. 시인은 이런 현실을 벗어나 차라리 인적이 없는 광야로 도피하고 싶어 합니다. (7-9절) 시인은 아마도 임금이나 지도자로 보이며, 가까운 친구에게 치명적인 배신과 반역을 당한 자로 보입니다. 그는 폭력의 공포와 배신의 아픔 속에서 탄원하고 있습니다.

"아, 내가 비둘기처럼 날개를 지녔다면 날아가 쉬련마는. 정녕 멀리 달아나 광야에 머물련마는." (7-8절)

시인은 공포에서 벗어나 도망가고자 합니다. "비둘기"가 도피의 상징으로 나타납니다. 그는 한적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습니다. 완전히 포위된 시인은 탈출구를 찾지만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공중으로 날아가는 환상을 펼칩니다. 그러한 상상으로나마 그는 공포에서 탈출하고자 합니다. "날개"는 도망의 의미를 잘 표현해 줍니다.

시인은 공포가 짓누르는 인간의 도시보다는 "광야"에 살고 싶어 합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도 예루살렘의 타락을 보고 견딜 수 없어서 광야로 도망치고 싶어 하였습니다. (예레 9, 2) 광야에는 도시의 혼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광야는 악마의 장소입니다. 광야는 인적이 드물고 아무도 찾아올 수 없는 곳입니다. 또한 짐승들이 우글거리고 밤의 추위와 낮의 더위로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량한 곳입니다. 정말 폭풍과 광풍과 같은 무서운 자연의 바람은 광야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무서운 광야로 도망가고 싶은 이유는 도시의 인간들이 너무나 무섭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원수들과 함께 도시에서 살기보다는 차라리 광야에서 살고 싶어 합니다. 그는 현실을 벗어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원수가 저를 모욕한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제가 참았을 것입니다. 저를 미워하는 자가 제 위에서 거드름을 피운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제가 그를 피해 숨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 내 동배 내 벗이며 내 동무인 너. (13-14절)

사회와 종교적인 폭력과 불의뿐 아니라 우정마저 파괴되었습니다. 배신자는 시인을 모욕하고 그에게 거드름을 피웁니다. 원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친한 친구가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시인은 친구가 자기를 배신할 것이라는 점을 몰랐기 때문에 그 친구를 피해 숨을 준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친구에 대해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친구였기 때문에 시인은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친구의 배신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벤시라는 "동무나 친구가 원수로 변하면 죽는 것처럼 고통스럽지 않겠느냐?" (집회 37, 2)고 합니다. 여기서 친구에 대한 표현이 삼중적으로 나타나는데, 곧 "내 동배", "내 벗", "내 동무"입니다. 시인은 친구에 대해 "너"라는 2인칭을 사용하여 옛 우정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의 배신은 내 고통에 초를 치는 것입니다. 알려진 원수들의 악행을 참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었던 친구의 배반에서 받은 상처는 싸맬 수가 없습니다.

"네 근심을 주님께 맡겨라. 그분께서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 의인이 흔들림을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시리라." (23절)

사람들과 친구로부터 상처받은 시인은 최종적으로 주님께 의탁합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그의 모든 딱한 사정과 염려를 하느님께 맡깁니다. 시인은 주님만을 의지하면서 주님께서 그를 지켜주시리라고 확신합니다. 의인의 운명을 그리고 있는 그는 하느님께서 자신이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친구마저 배반하고 세상의 모든 관계가 다 변해도 주님은 변치 않습니다.

시편 55편의 시인이 폭력과 불신과 친구의 배반을 체험했듯이 우리도 살아가면서 많은 배반의 아픔을 체험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우정과 충성을 상실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같은 직장의 동료들이나 상관들로부터 많은 배신감을 느끼며 살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느낄 때 우리는 도망치고 싶습니다. 현실 도피의 충동인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가까운 친구, 공동체의 형제나 자매에게 당하는 배신은 인간성에 대한 배신이기 때문에 참으로 괴롭습니다. 친구에게 배신당하면 그 상처는 너무도 깊어 평생토록 아파합니다.

시편 55편은 사회적인 폭력과 친구의 배반 때문에 괴로워하며 바치는 기도입니다. 이 시편에서 우리는 배신당하여 철저히 혼자가 되신 예수님의 불안한 심경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근심과 번민에 휩싸여 "내 마음이 너무 슬퍼 죽을 지경이다". (마태 26, 37-38)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공포의 상황을 벗어나 도피하고 싶어 하는 시인의 심정을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느낄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마태 26, 39) 더욱이 예수님은 제자들을 '종'이 아닌 '벗'으로 부르셨고 결국에는 같은 식탁에서 빵을 나누며 동고동락했던 그 벗으로부터 배신당하셨습니다.

이 시편을 통해서 우리는 사회적인 폭력과 불신, 그리고 배반이 안겨주는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고통 속에서도 주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네 근심을 주님께 맡겨라. 그분께서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 (2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