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순수녀의 시편 묵상

제8강 시편 42편 하느님을 목말라함

재생 시간 : 08:01|2012-12-14|VIEW : 3,055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제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합니다." (2-3절) 시편 42편은 희망과 절망, 그리고 믿음의 확신을 포함하는 개인 탄원 시편에 속합니다. 이 시편의 탄원의 배경은 유배 생활이나 고향에 있더라도 심각한 병에 걸려 예루살렘 성전에 가지 못하는 ...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제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합니다." (2-3절)

시편 42편은 희망과 절망, 그리고 믿음의 확신을 포함하는 개인 탄원 시편에 속합니다. 이 시편의 탄원의 배경은 유배 생활이나 고향에 있더라도 심각한 병에 걸려 예루살렘 성전에 가지 못하는 자의 현실, 또는 이스라엘 내에 있지만 먼 곳에 있어서 성전에 가지 못하는 자의 상황을 반영합니다. 이 시편은 우리 영혼의 깊은 갈망을 가장 잘 표현해 줍니다.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이 갈망은 어둡고 힘든 일상의 고단함을 인내하며 하느님을 희망할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시인에게 하느님은 '생명의 하느님'(3.9절)이십니다. 생명체가 물 없이 살 수 없듯이 우리의 영혼은 하느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시인은 아픔 속에서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며 그분께 기도를 드립니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 (2절)

시인은 살아 계신 하느님께 대한 자신의 영․육간의 갈증을 암사슴의 갈증으로 표현합니다. 이 구절이 목가적으로 생각될 수도 있으나 그러나 실제로 목가적인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한 여름에 물이 말라버린 시냇가에 있는 암사슴의 간절한 모습이 연상됩니다. 심한 가뭄으로 인해 물이 부족한 상태에서 암사슴에게 시냇물은 그 자체로 생명을 의미합니다.

물은 목마른 암사슴의 갈망의 대상입니다. 물은 반드시 공급되어야 할 사슴의 욕구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물은 암사슴에게 곧 생명의 물입니다. 물을 찾지 못하는 암사슴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불안하고 초조해합니다. 물은 신체의 욕구를 위한 것이므로 생명에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시인에게 "물보다 더한 것은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은 바로 시인이 찾는 생명의 샘이십니다.
"그리워하다"는 애타게 물을 찾고 있는 목마른 사슴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헐떡이다'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장기간의 가뭄으로 인해 야생동물들이 물을 찾듯이 시인의 불행은 하느님께 대한 그의 갈망을 강화시킵니다. (참조: 시편 63, 2; 이사 26, 9) 이교인의 땅에 살 때 그리움은 더욱 더 간절해집니다. (시편 84, 3)

"제 영혼이 하느님을, 제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합니다. 그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올 수 있겠습니까?" (3절)

"생명의 하느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입니다. 시인은 살아 계신 하느님을 애타게 찾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느끼지 못해서 애가 탑니다. 하느님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은 목마름으로 표현됩니다. 목마름은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갖지 못할 때 생깁니다. 하느님은 내 목마름의 물이시고 내 생명의 물이십니다. 하느님에 대한 그리움은 시인이 완전히 하느님의 현존 속에 머물게 될 때까지는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시인은 "언제나 가서 뵈올 수 있겠습니까?"라고 간절한 심정을 표현합니다. 시인이 갈망하는 것은 하느님의 얼굴을 뵙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얼굴을 뵙는 것은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성전의 지성소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전이 생명의 샘으로 믿어지기 때문에 시인이 성전에서 떨어져 있다는 것은 죽음의 형태로 묘사됩니다. 지성소에는 주님께서 현존하시고 그곳에서는 생명의 샘이 솟아납니다. (참조 : 시편 36, 9-10; 46, 5; 에제 47, 1-12) 하느님의 현존이 그의 영혼의 목마름을 해소시켜 줄 수 있습니다.

시편 42편은 하느님께 대한 깊은 갈망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시편 시인은 자신의 영적 갈망을 목마른 사슴에 비유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목말랐습니다. 그들은 애원하며 하느님께 간청하여 생수를 마셨고 시나이 산에 다다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고 하셨지만, 하느님은 응답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분을 부활시키시어 영원한 생명의 샘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영혼의 목마름을 만족시켜 주시는 영원한 생명수의 샘이십니다. (요한 4, 14)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 6, 35)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영적 갈망을 영원한 생명수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채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에 목말라야 합니다. "네 하느님이 어디 계시느냐?"라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불신앙과 물질과 기술주의의 세상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시편은 없어서는 안 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갈망이 있을 때 우리는 그릇된 욕망으로 기울지 않을 것입니다. 이 시편은,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이 겪고 있는 고민은 하느님을 향한 목마름이며,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갈증은 오직 영원한 생명의 물로부터만 채워질 수 있음을 말해 줍니다.  

대림 시기는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목마름의 시간입니다. 이 목마름은 절망의 목마름이 아니라 희망의 목마름입니다. 탄생하실 아기 예수님은 "나의 구원, 나의 하느님"이시며 내 목마름을 적혀 주실 생명수이십니다. 그리움과 기다림이 깊으면 기쁨 또한 크다는 희망을 잊지 맙시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제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합니다." (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