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순수녀의 시편 묵상

제6강 시편 22편 엘리 엘리 레마사박타니

재생 시간 : 08:23|2012-12-07|VIEW : 4,333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소리쳐 부르건만 구원은 멀리 있습니다." (2절) "그러나 당신은 저를 어머니 배 속에서 이끌어 내신 분 어머니 젖가슴에 저를 평화로이 안겨 주신 분." (10절) 시편 22편은 전체적으로 개인 탄원 시편에 속합니다. 시편 22편은 어느 누구의 위로도 없이 악인들에게 둘러싸여 하느님의 부재...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소리쳐 부르건만 구원은 멀리 있습니다." (2절)

"그러나 당신은 저를 어머니 배 속에서 이끌어 내신 분
어머니 젖가슴에 저를 평화로이 안겨 주신 분." (10절)

시편 22편은 전체적으로 개인 탄원 시편에 속합니다. 시편 22편은 어느 누구의 위로도 없이 악인들에게 둘러싸여 하느님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비탄 속에 외로이 죽어 가는 사람이 부르는 애가요, (2-22절) 하느님께서 그를 회복시켜 주심에 대해 감사드리는 감사 시편입니다. (23-32절) 시인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신비 가운데 있으면서 자신의 아픔과 죽음을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하느님의 선택과 버림받음, 친밀감과 거리, 구원사와 현실, 그리고 죽음과 부활의 갈등이 강한 대조를 이룬다. 시인의 애통이 갈수록 깊어지고 신음소리는 처절해지며 고난은 심화된다. 속옷까지 벗겨지는 치욕과 수치를 당하고 죽음에 던져집니다. 이 시편은 인간 고통과 메시아 임금의 고통과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고통과 수난을 말해준다고 봅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소리쳐 부르건만 구원은 멀리 있습니다." (2절)

첫 구절,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말은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 가운데 하나인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마르 15, 34; 마태 27, 46)입니다. '엘리 엘리'는 히브리 말이고 '레마 사박타니'는 아람 말입니다.

시인의 위기는 하느님께서 그를 버리시고 돌보시지 않는 데 있습니다. "저의 하느님"("엘리")이라고 두 번이나 부름으로써 그의 간절한 심정을 표현하며, 하느님과 그의 특별한 관계를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하느님"께서 자기를 버리셨다는 데에 있습니다.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부르짖음은 그를 버리신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태도에 대해 항변하는 것입니다. "어찌하여"라는 말속에 그가 버림받은 사실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탄원이 들어 있습니다. 이 말속에는 버려서는 안 될 분이 그를 버리셨다는 모순이 숨어 있습니다.

"소리쳐 부르는 것"은 히브리 말로 '신음 소리'를 말하며, 동물의 '으르렁거리는 소리, 포효하는 소리'로 특히 사자의 울부짖음(욥 4, 10)을 가리킬 때 쓰이고 하느님께 불평을 할 때도 쓰입니다. (시편 32, 3; 38, 9; 욥 3, 24) 이 낱말의 사용으로 시인은 깊은 질병과 시련의 고통 한가운데 있음을 뜻합니다. 시인의 가장 큰 고통은 하느님께서 그의 외침으로부터 멀리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께서 멀리 계시다는 것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비구원의 상황을 말합니다. 소리쳐 불러도 응답하시지 않는 상황은 무서운 하느님의 침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응답하실 때가지 "밤에도 잠자코 있을 수 없다"(3절)고 합니다. 깊은 고독 속에서도 그가 부르짖을 수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의 믿음이 전제 되어 있습니다. 그는 "나의 하느님"께 대한 희망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 신앙 체험에 근거하여 하느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저를 어머니 배 속에서 이끌어 내신 분, 어머니 젖가슴에 저를 평화로이 안겨 주신 분." (10절)

여기에서 시인은 또다시 하느님과 그의 특별한 관계를 강조합니다. 그가 존재하게 된 것은 하느님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제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하느님이십니다"(11절)라고 고백합니다. 하느님은 그를 그의 어머니 배 속에서 이끌어 내신 산파로 표현됩니다. 그가 안전하게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도우신 것입니다. 여기서는 하느님이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어머니 젖가슴"이라고 하면서 시인은 자신의 유아 시절부터 하느님이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주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통 한 가운데서도 시인에게 신뢰와 희망을 안겨다 주는 말입니다.

맺음말. 시편 22편은 죄의식과 죄고백이 나타나는 다른 탄원시들(시편 51편 참조)과는 달리 시인의 죄가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는 모태에서부터 하느님께 맡겨진 존재였습니다. 그토록 그는 하느님께 깊은 신뢰를 갖고 있지만 처참하게 고통을 당합니다. 그는 인간들에게서 버림받은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한테서도 철저하게 버림받았다. 그러나 그는 죽음에까지 이르렀지만 하느님께서 그에게 응답해주셨기 때문에 죽음에서 구원되어 다시 살아났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시편 22편에서 예수님의 수난․죽음․부활의 신비를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시편 22편과 복음서의 수난사화 사이에는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시편 22편의 첫 번째 구절은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 중의 하나인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마르 15, 34; 마태 27, 46)입니다. 이 구절은 극도의 외로움 속에 죽어야 했던 예수님에게 잘 어울리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의인으로서 시편 22편의 시인과 매우 잘 일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끝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구약의 여느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자신의 고통의 원인이 전적으로 하느님께 있었음을 믿었을 것입니다.

시편 22편의 시인은 하느님의 부재를 체험하며 죽음의 공포 속에서 구해 줄 것을 간청합니다. 시인은 결국 하느님의 구원을 입었고 그래서 그는 마지막에 찬양을 드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제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시편 22편에서 회복에 대한 찬양과 감사 부분(22ㄷ-32)을 메시아적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련짓기 때문입니다. 시편 22편의 시인은 고난받는 의인으로서 대적자들을 향하여 전혀 저주의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반대자들을 용서하셨다는 점과 잘 일치합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