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순수녀의 시편 묵상

제3강 시편 8편 사람이 무엇입니까?

재생 시간 : 08:39|2012-11-29|VIEW : 6,863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신들보다 조금만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당신 손의 작품들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습니다" (5-7절) 시편 8편은 공동체적으로 창조주이신 주님을 찬양하는 공동체 찬양 시편에 속합니다. 자연이나 창조 자체를 찬양하는 ...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신들보다 조금만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당신 손의 작품들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습니다" (5-7절)

시편 8편은 공동체적으로 창조주이신 주님을 찬양하는 공동체 찬양 시편에 속합니다. 자연이나 창조 자체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8편은 마치 아름다운 언어의 실로 수놓은 듯합니다. 이 시편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심오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 시편의 시인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영광과 존엄을 드러내는 우주의 피조물을 바라보면서 하느님 앞에 선 인간으로서의 오묘함을 깨닫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하찮은 인간을 하느님께서 기억하시고 돌보아 주신다는 사실에 시인은 감탄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게 하시어 인간 또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십니다. 인간이 받은 영광과 존귀의 관은 인간의 능력에 의해 얻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은 하느님보다 조금 못하지만 만물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시인은 우주를 바라보면서 감탄합니다. "우러러 당신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당신 손가락의 작품들을, 당신께서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4절)

하늘, 땅, 달, 별들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느님이 손수 지으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신앙 고백으로 받아들일 일입니다. 그런데 창조의 초점은 하늘도 땅도 달도 별도 아닙니다. 창조설화와 마찬가지로 이 시인도 사람에다 하느님의 창조사업의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만물 때문에 사람을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만물을 손수 만드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위대하고 신비롭고 아름다운 하느님의 창조의 초점이 되었다는 사실에 시인은 감탄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5절)

여기서 묘사되는 인간은 신비이며 시인은 하느님께서 이 신비를 가능하게 하심에 대해 감탄하고 연약한 인간을 찾아오심에 대해 놀랍니다. 그리고 보잘것없는 인간에 대한 창조주 하느님의 은혜에 대해 감탄합니다. "인간은 무엇입니까?"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지상의 존재입니다. 결코 영원히 살 수 있는 천상적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으로 옮긴 히브리 말 '에노스'는 나약하고 덧없고 죽어야만 하는 유한한 존재를 말합니다. 나약하고 흙으로 빚어져 결국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덧없는 인간입니다. 인간이 나약하고 덧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기억하시고 돌보아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기억하심"은 그분의 지속적인 현존을 의미하고, "돌보아 주신다"는 것은 그분의 따뜻한 보살핌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시인은 인간과 만물의 질서와 위치를 밝히고 있습니다. "신들보다 조금만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6절)

"신들"은 히브리 말에는 하느님(엘로힘)으로 되어있으나 칠십인역에서는 '천사들'로 옮깁니다. 시인은 인간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인간이 하느님보다 "조그만 못하다"고 표현합니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주셨다고 하는 말은 광활한 우주에 비해 너무도 미약한 인간인데도 그를 기억해주시고 돌보아주시는 하느님의 자애를 생각하며 하는 경탄입니다. 원래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움"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임을 뜻합니다. 하느님께서 "관을 씌워 주셨다"라고 하는 것은 그분이 인간에게 '지배권을 부여하셨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물의 지배자로 등극시키신 것입니다. 인간은 다스리는 자, 곧 통치자입니다.

"당신 손의 작품들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습니다." (7절)

사람은 창조 세계를 다스리는 하느님의 대리자가 됩니다. "다스리게 하시고"는 오만한 지배가 아닙니다. 창세 1, 26.28에서도 다스림은 짓밟는 의미가 없습니다.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라는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에게 하느님께서 그토록 좋다고 보신 세상에서 타 피조물들이 조화와 질서를 잘 유지할 수 있도록 돌볼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다스림이란 착취보다는 오히려 사랑과 보살핌의 의미를 담고 있는 통치로 이해됩니다.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다"라는 표현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능력에 따라 결정하신 것이 아니라 선물로 모든 것을 인간에게 맡기셨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을 찬양하도록 운명 지어진 존재입니다.

시인은 마지막 구절을 인간의 존엄함과 위대함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2절의 첫 생각으로 돌아가 하느님의 위대하심에 근거하여 그분께 대한 찬양으로 끝냅니다. 말하자면 시인은 처음에 우주 만물 위에 계신 하느님, 인간을 기억하시고 돌보시는 하느님,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릴 권한을 주신 하느님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제는 존엄하신 하느님에 대한 생각으로 시를 마무리합니다. 결국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이 이 시편의 목적입니다.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이 삶이요 삶이 곧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주 저희의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존엄하십니까! 하늘 위에 당신의 엄위를 세우셨습니다." (1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