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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 <4> ‘진료비 0원’ 故 선우경식 원장의 발자취

재생 시간 : 04:04|2022-11-14|VIEW : 164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던 故 선우경식 원장.故 선우경식 원장의 발자취를 앵커 리포트로 전해드립니다. [기자] 엑스레이 사진을 본 선우경식 원장의 마음이 다급해집니다.결핵 환자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치료해야지. 이거는 조금 숨찬 게 아니라 생명하고 관계가 있어요. 이렇게 되면 오래 살기 힘들어요.”환자가 구청 지원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던
故 선우경식 원장.

故 선우경식 원장의 발자취를
앵커 리포트로 전해드립니다.

[기자] 엑스레이 사진을 본 선우경식 원장의 마음이 다급해집니다.

결핵 환자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故 선우경식 요셉>
“이번에 치료해야지. 이거는 조금 숨찬 게 아니라 생명하고 관계가 있어요. 이렇게 되면 오래 살기 힘들어요.”

환자가 구청 지원금 때문에 치료를 망설이자 설득에 나섭니다.

<故 선우경식 요셉>
“치료 다 끝나고 해도 늦지 않아요. 우리가 돈 안 받는 데 보내줄게요. 그럼 생활비 벌 필요가 없어요.”

선우 원장의 간곡한 설득으로 환자는 결국 치료를 받기로 했습니다.

<환자>
“입원하겠습니다. 한 번 살아나야지 이거 이러면 안 되겠네.”

1945년 평양에서 태어난 선우경식 원장은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선우 원장은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며 달동네였던 신림동에서 의료봉사를 하다가, 1987년 자선병원인 요셉의원을 설립했습니다.

의료보험뿐 아니라 주민등록증도 없는 노숙인과 외국인 노동자 등이 선우 원장의 환자였습니다.

요셉의원은 신림동 재개발로 1997년 지금의 영등포로 이전했는데, IMF와 맞물려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故 선우경식 요셉 / 2000년 5월>
“IMF가 생겨 가지고 많은 실직자, 노숙자, 행려자들이 여기 와서 진료 받게 됐죠. 또 거기에 따라서 우리 봉사자나 재정적인 뒷받침이 돼야 되는데 일할 양은 많은데 뒷받침이 잘 되지 않아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죠.”

하지만 결혼도 하지 않고 검소하게 살며 어려운 이웃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선우 원장의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선우 원장의 뜻을 따르는 봉사자와 후원자들이 생겨났고, 무료진료에 동참하는 의사들도 늘어났습니다.

요셉의원을 돕기 위해 매달 잡지를 발간한 후원자도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온 선우 원장은 정작 자신의 몸은 제대로 돌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08년 4월 18일 향년 63세로 선종했습니다.

<故 정진석 추기경 / 2008년 4월 18일 장례미사>
“선우 원장님의 뜻이 더 많은 이들을 통해서 널리 퍼져 지기를 기원합니다.”

故 정진석 추기경의 바람대로 선우 원장 선종 이듬해, 요셉의원엔 2대 의무원장이 부임했습니다.

선우 원장의 의대 7년 후배인 신완식 원장은 가톨릭대 의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요셉의원에서 13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신완식 루카 / 요셉의원 의무원장>
“선우경식 선생님이 갑자기 선종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갑자기 뭔가 뒤통수를 딱 한 대 맞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 이게 뭔가 그분이 콜링을 한 게 아니신가…”

요셉의원은 영등포역 일대 재개발로 이사를 가야 합니다.

신 원장은 그래서 고민이 많습니다.

<신완식 루카 / 요셉의원 의무원장>
“한 4~5년 후면 아마 이사를 가게 될 거예요. 근처에 조그만 곳을 마련해놓긴 했지만 그거 가지고도 잘 안 될 것 같고 어쨌든 여러 가지가 굉장히 힘들 거예요.”

“진료비가 없는 환자야말로 진정 의사가 필요한 환자입니다.”

신 원장은 선우 원장의 말을 되뇌이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신완식 루카 / 요셉의원 의무원장>
“저희들 잘 보고 계시죠?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많이 도움이 되었었는데 앞으로 많이 도와주세요!”

지금까지 앵커 리포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