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7/27(월) - <2> "한국에 선교하러 왔는데 6·25 전쟁이 발발했다"

재생 시간 : 04:17|2020-07-27|VIEW : 160

7/27(월) - "한국에 선교하러 왔는데 6·25 전쟁이 발발했다"[앵커] 한반도에서 6·25 전쟁을 마주한 외국인 선교사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선교사들은 반공주의자였지만, 전쟁을 선악의 싸움으로만 볼 순 없었습니다.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강주석 신부는 이에 대한 연구로 북한학 박사학위를 받았는데요.70년 전 선교사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겠...
7/27(월) - <2> "한국에 선교하러 왔는데 6·25 전쟁이 발발했다"

[앵커] 한반도에서 6·25 전쟁을 마주한 외국인 선교사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선교사들은 반공주의자였지만, 전쟁을 선악의 싸움으로만 볼 순 없었습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강주석 신부는 이에 대한 연구로 북한학 박사학위를 받았는데요.

70년 전 선교사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기자] 미국 메리놀회 소속으로 한국에 파견됐던 패트릭 클리어리 신부.

클리어리 신부는 6·25 전쟁 초기였던 1950년 10월 말, 북진하는 UN군을 따라 38선 이북 지역을 방문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평양과 인근 지역에서 전해들은 공산군의 만행은 처참했습니다.

사제와 수도자는 끌려갔고, 집단 학살도 벌어졌습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서울에 돌아온 클리어리 신부는 전쟁의 이면을 보게 됩니다.

신자 부부가 아들이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온갖 고초를 겪고 있었던 겁니다.

반공주의 정부의 인권 유린을 목격한 선교사들은 이데올로기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강주석 신부 /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미국 선교사들은 우리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공산주의를 반대해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전쟁을 실제로 경험하면서 저는 그 반공주의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냉전의 이데올로기가 극단적으로 작동하는 게 전쟁의 어떤 표면적인 현실이었는데 이게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가 그런 데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마음도 가졌던 것이죠."

메리놀회 캐롤 몬시뇰 역시 서울에서 전쟁 부역자 문제를 마주했습니다.

캐롤 몬시뇰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적극 지지했던 인물입니다.

<캐롤 몬시뇰 / 1950년 12월 12일 일기>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했다. 시체 위에 다른 시체를 쌓아 놓았다. 좁은 감방에 여자들이 젖먹이 아기들과 있었다. 대부분 수감자들은 공산당에 협력한 죄로 들어와 있었다. 많은 사람이 아직 재판을 받지 못했다. 나는 형무소 상황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캐롤 몬시뇰의 일기엔 형무소에서 정기적으로 대규모 처형이 이뤄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캐롤 몬시뇰은 의문에 빠집니다.

가톨릭교회를 박해한 공산군은 악하고, 참혹하게 인권을 유린한 남한 정부는 선한 건가?

<강주석 신부 /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캐롤 몬시뇰은 전세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한국 입국을 서둘렀습니다. 전장에서 종교인의 역할을 수행하려고 했던 거죠. 병사들의 영혼을 위한 군종사제로 전쟁에 참여한 것인데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 또 목자가 양을 버릴 수 없다는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하신 것일 텐데.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다는 정부가 참혹하게 인권을 유린하는 것을 보면서 전쟁은 단순히 선과 악의 싸움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 느낀 거죠."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의 잡지 ‘The Far East’는 당시 공산군에 의해 살해된 젊은 선교사들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빈부나 명예, 인종의 차이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잡지 ‘The Far East’ 1951년 6월호>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12개의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이었다. 병사와 민간인, 선교사와 무신론자, 이교도와 그리스도교인, 성인과 죄인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가 당신의 목숨을 내놓을 만큼 사랑했던 영혼들일 뿐이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강주석 신부는 "선교사들이 전쟁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건,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었다"고 분석했습니다.

한마디로 전쟁은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겁니다.

<강주석 신부 /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냉전의 질서를 강요하는 전쟁이었지만 오히려 전장의 한가운데서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았던 선교사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아직도 서로를 적대하는 불안한 대립이 이어지는 이 땅에서 평화를 위한 종교의 역할을 탐색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앵커 리포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