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7/2(목) - CPBC 가톨릭뉴스

재생 시간 : 23:27|2020-07-02|VIEW : 327

  <1> 광주대교구, 광주 시내 본당 미사 재중단      광주대교구가 광주 시내 본당과 기관의 공동체 미사를 긴급 중단했습니다.   최근 광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하고, 방역대응체계가 격상된 데 따른 조치입니다.   수도권 등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늘고 있어, 교...

 

<1> 광주대교구, 광주 시내 본당 미사 재중단

 

 

 광주대교구가 광주 시내 본당과 기관의 공동체 미사를 긴급 중단했습니다.

 

최근 광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하고, 방역대응체계가 격상된 데 따른 조치입니다.

 

수도권 등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늘고 있어, 교구와 본당별로 철저한 방역수칙 준수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김혜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광주대교구가 어제 저녁부터 공동체 미사를 또다시 중단한 건,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에서 2단계로 상향 조정됐기 때문입니다.

 

앞서 광주시는 최근 닷새 만에 광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어제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방역대응체계를 강화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시행으로 실내 50인 이상, 실외 100인 이상 모임이 금지됐으며, 이를 어길 경우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3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나 집합금지 조치, 치료비 등 구상권과 손해배상이 청구될 수 있습니다.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지자체의 위기 대응조치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완료될 때까지 광주 시내 본당과 기관의 미사와 모임을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광주대교구 140개 본당 가운데 광주 지역 54개 본당에서 신자들과 함께하는 공동체 미사가 중단됐습니다.

 

김 대주교는 광주 시외 본당과 기관의 경우 미사는 드리되 모임과 행사는 갖지 않도록 했습니다.

 

다만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본당 신부 재량에 따라 미사도 중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대주교는 "미사 중단으로 인해 직접 영성체를 하지 못하지만 방송미사 대송 중에 신령성체를 하길 권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기도 안에서 주님께 도우심을 청하고, 지혜롭고 강건하게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성종명 신부 / 광주대교구 농성동본당 주임> 정말 안타깝지만 우리 본당도 교구 요청에 따라 모든 미사와 모임을 중단합니다. 저희 본당 신자들에게 일괄 문자를 전송하였고, 이 방송을 보시는 전국 교우분들께서는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힘든 상황이지만 새롭게 확산되고 있는 저희 지역을 위해서 함께 기도로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광주대교구는 내일부터 미사 중단이 취소될 때까지 방송미사를 제작해 신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방송미사는 광주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와 홈페이지, 유튜브를 통해 함께할 수 있습니다.

 

한편 전국 각 교구는 코로나19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대구대교구는 어제 새로운 교구 지침을 통해, 감염병의 위험을 낮추고자 하는 국민의 노력에 최대한 동참하고 방역규칙에 따르되, 건강에 이상이 없으면 주일미사에 참석하도록 했습니다.

 

또 본당 사제들에게는 감염에 대한 우려로 미사에 참례하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전화로 안부를 묻는 등 비대면 사목활동에 최대한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부산교구는 지난달 22일부터 방역수칙 준수를 전제로 사목회와 레지오 등 통상적인 교육과 모임을 재개했지만, 숙식을 겸한 피정과 순례 등은 추후 공지할 때까지 자제하도록 했습니다.

 

수원교구는 교구민의 안전을 위해 본당 공동체 미사를 제외한 각종 행사와 모임을 8월 말까지 중단하도록 한 상태입니다.

 

CPBC 김혜영입니다.

 

 

 

 

<2> "코로나 팬데믹, 종교에 위기이자 기회"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과 가톨릭평화방송이 교회의 대응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김영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과 가톨릭평화방송이 공동기획한 토론회 주제는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 천주교회’입니다.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원장이자 서울대교구 청담동성당 주임 김민수 신부가 사회를 맡았습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진행 과정에서 혐오 등 종교의 부정적인 측면이 많이 부각된 점을 주목했습니다.

 

<방영미 박사 /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빅데이터는요. 너 종교지? 너 종교인이지? 너 신앙 있지? 너 교회 다니지? 교회 다음에 뭐가 연결될까요? 코로나, 코로나 다음에 뭐가 연결될까요? 신천지, 이렇게 쫙 연결을 시켜줘요.”

 

서강대 종교학과 오지섭 대우교수는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지섭 대우교수 / 서강대 종교학과>

“팬데믹 상황이 어찌보면 종교에 있어서 대단히 위기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올바른 종교 이해를 확산시키고 종교 본연의 모습을 세상 안에 환하게 밝히고 드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오 교수는 팬데믹으로 인한 문제 치료에 종교가 보다 관심을 갖고 실천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오지섭 대우교수 / 서강대 종교학과>

“혐오의 문제라든가 갈등의 문제라든가, 개개인들이 겪고 있는 내면적인 혼란의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종교가 관심을 갖고 그걸 치유해주는 역할들을 이전보다 훨씬 더 강조해서 시행해야 되는 게 팬데믹 상황이라 생각됩니다.”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방영미 박사는 "교회를 지켜주는 사회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사회를 지켜주는 교회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적인 영역에서 개인의 신앙생활 촉진과 장려, 또 신앙의 일상화로 사회적 영성과 공공성 실천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연구이사 이은주 박사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신앙이 나만의 문제나 행복이 아니라 타인과 더불어 사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그 동안 숙제를 하듯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는지 반문한 뒤, 이제는 교회 밖에서 연대와 화합을 통한 신앙 성숙의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이은주 박사 /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연구이사>

“이럴 때 우리가 같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게 종교성이 시민성으로 확장되고 실천되고 이것을 통해 가톨릭이 조금 더 성장하고 가톨릭 신앙인이 조금 더 성숙되는 기회가 되고 기회를 잘 활용하고 이것을 통해 성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정부교구 신자의식조사 과정에 참여한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연구이사 박문수 박사는 코로나 이후 교회 생활 전망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박 박사 역시 현재 교회가 위기라고 진단하면서도, 역설적으로는 그 상황에서도 희망을 보고 기회를 발견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이라고 말했습니다.

 

<박문수 박사 /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연구이사>

“전혀 위기 국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 이미 그 동안에도 조금 노력했어야 되는데 하지 못했던 시도들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하는 측면에서는 위기가 우리에게는 기회가 되고 있다라고 저는 보고 싶습니다.”

 

박 박사는 코로나 사태, 나아가 새로운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과제도 제언했습니다.

 

<박문수 박사 /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연구이사>

“그 변화는 당장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시간을 두고 서서히 우리에게 영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변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변했습니다. 변하는 교회, 또 변한 교회를 상대로 새로운 사목을 해야 되는 것이 우리에게 과제로 주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톨릭평화방송 TV는 이번 토론회를 오는 7일과 14일, 21일과 28일 네 차례에 걸쳐 방송할 예정입니다.

 

CPBC 김영규입니다.

 

 

 

 

<3>  [어서 오세요] 김민수 신부 /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장

 

코로나19 이후의 사목 방향에 대해 가톨릭교회의 고민이 깊습니다.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장 김민수 신부와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서울대교구 청담동본당 주임이시기도 합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1. 올해 초 코로나19로

공동체 미사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습니다.

 

36년째 사제 생활을 하고 계신 신부님도

적잖이 당황스러우셨을 것 같아요.

 

올해 상반기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2. 코로나19 사태로 종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종교시설을 통해 감염이 확산되면서

집단감염의 위험요소로 인식되고 있는 면도 있습니다만...

 

하지만 종교만이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역할도 분명히 있지 않습니까?

 

 

3.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톨릭교회의 사목도 변화가 불가피해졌습니다.

 

비대면을 선호하는 신자들이 늘면서

가상 교회, 유튜브 미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신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4. 코로나19로 신앙생활에 소극적이었던

신자들의 이탈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교회가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요?

 

 

5.  코로나19와 팬데믹 사태,

가톨릭교회 차원의 대안 모색을 위해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의 어깨도 무거워 보입니다.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6.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몸과 마음이 지친 신자들이 많습니다.

 

몇 달 동안 성당에 안 나가면서

신앙이 느슨해진 신자들도 있을 겁니다.

 

끝으로 신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 지금까지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장

김민수 신부님과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4> 성 김대건 신부, 순교 직전에도 "전 행복합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오는 주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를 봉헌합니다.

 

1925년 성 김대건 신부가 복자품에 오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인데요.

 

스물여섯 짧은 생이었지만, 김대건 신부의 순교 영성은 신자들에게 깊이 각인돼 있죠.

 

시복 95주년을 맞아 김대건 신부의 삶과 영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전은지 기자입니다.

 

[기자] 성 김대건 신부는 1821년 충청남도 솔뫼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 이름은 재복(再福)이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는 신심 깊은 집안에서 성장하며 신앙을 키워나갔습니다.

 

<고 우르술라 / 성 김대건 신부 어머니> “천주께서 처음 세상을 내실 때 사람을 당신의 형상을 본떠 만들었느니라. 그러니 우리는 내남없이 그분의 자녀이며 동등한 형제가 아니더냐. 이처럼 다 같은 형제끼리 높고 낮음을 가려 함부로 핍박해서야 되겠느냐.”

 

김대건 신부는 1836년 부활절, 첫 서양인 선교사인 모방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모방 신부는 열다섯 살이던 김대건 신부를 신학생으로 발탁했고, 김 신부는 고뇌와 기도를 통해 사제 성소를 받아 들입니다.

 

“마카오가 어디입니까. (여기서 수만 리 떨어진 외국일세)”

 

 

“천주님의 뜻이겠지요. 저같이 약한 사람이 그 큰 일을 해낼 수 있을까요.”

 

김대건 신부는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함께 마카오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김 신부는 가슴앓이와 위장병 등으로 고생하면서도 6년간 성실하게 공부했습니다.

 

그 사이 조선에서는 2차 천주교 박해인 기해박해가 시작됐습니다.

 

엥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등이 참수를 당한 피의 박해.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도 기해박해로 순교했습니다.

 

김대건 신부는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로 개척에 힘을 쏟았습니다.

 

조선전도를 만든 것도 선교사들의 입국을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845년 8월 17일, 상하이 진쟈샹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습니다.

 

 

“그대는 나와 나의 후임자에게 존경과 순명을 서약합니까?”

“예, 서약합니다.”

 

김대건 신부는 페레올 주교와 함께 1845년 10월 12일 조선 입국에 성공했습니다.

 

김 신부는 서울과 경기 지역을 오가며 미사를 주례하고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김 신부는 선교사들의 서해 입국로를 개척하다 체포됐습니다.

 

옥중에서도 세례를 주었던 김 신부는 1846년 9월 16일 새남터 처형장에서 순교합니다.

 

김 신부는 스물여섯 해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마지막까지 굳건한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현세에서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고 그분의 고난을 함께 가기 위해섭니다. 전 행복합니다.”

 

김대건 신부는 1925년 7월 5일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습니다.

 

이후 1984년 5월 6일 우리나라를 방문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성인 반열에 올랐습니다.

 

“모든 게 하느님 섭리가 아닌 것이 없다.”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신부의 순교 영성은 17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한국 신자들의 마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CPBC 전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