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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금) - <2> 6·25 전쟁, 비극과 희망이 뒤엉킨 천주교회

재생 시간 : 04:08|2020-05-29|VIEW : 116

<2> 6·25 전쟁, 비극과 희망이 뒤엉킨 천주교회   한반도를 폐허로 만든 6·25 전쟁.                     ...

<2> 6·25 전쟁, 비극과 희망이 뒤엉킨 천주교회

 

한반도를 폐허로 만든 6·25 전쟁.                     

한국 천주교회도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은 이어졌고, 교회는 구호활동에 힘을 쏟았습니다.

지금은 대북지원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죠.

가톨릭평화신문은 6·25 전쟁과 맞물려 있는 한국 천주교회 역사를 돌아보고 있는데요.

화제의 특별기획, 주요 내용을 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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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은 주일이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의 회고록엔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중에서>

1950년 6월 25일은 신학교 교수인 공베르 신부님의 사제 수품 50주년 금경축 날이었다. 내가 총급장인데다, 공 신부님은 소신학생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터라 학생들을 동원해서 금경축 행사를 정성껏 준비했다. 행사를 다 치를 때까지도 전쟁이 일어난 줄 몰랐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정진석 추기경 / 「추기경 정진석」 중에서>

진석은 주일 아침 간간이 들려오는 전투 소식을 접했다. 처음에는 38선에서 양측이 국지전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후에 혜화동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고 나왔는데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국군 병사들, 전투에서 다친 부상병들이 내려왔다. 진석은 처음으로 전쟁을 실감했다.

 

가톨릭평화신문은 6·25 전쟁 70년을 맞아 올해 1월부터

「한국전쟁 70년, 갈등을 넘어 화해로」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6·25 전쟁과 교회의 발자취를 함께 돌아보는, 말 그대로 특별기획입니다.

 

전쟁 당시 북한군은 성당에 불을 지르고, 사제와 수도자들을 닥치는 대로 체포했습니다.

성당을 지키던 본당 사제들은 대부분 피살 당했습니다.

 

포로가 된 사제와 수도자들은 추위와 굶주림, 공포 속에 걷고 또 걸어야 했습니다.

압록강변의 험악한 산길을 따라 이어진 이른바 죽음의 행진입니다.

 

모든 것을 앗아간 전쟁.

세계 각국에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는데, 미국 가톨릭구제회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졌습니다.  

가톨릭구제회의 도움을 받지 않은 국민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1950년 12월, 한국군과 UN군은 중공군의 전쟁 개입으로 수세에 몰렸고,

흥남 부두에서 철수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은 당시 피난민 만 4천여 명을 태우고

거제로 이송한 빅토리호 기적의 이야기도 전합니다.

 

6·25 전쟁 중에 태동한 군 사목도 조명합니다.

 

얼어붙었던 남북관계에 평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1988년입니다.

노태우 정권의 7·7 선언과 맞물려 북한에서도 통일에 대한 기류와

가톨릭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북한은 1988년 신자 2명을 바티칸에 보냈고,

이들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으로부터 발씻김과 안수를 받았습니다.

 

이후 한국 천주교회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등을 통해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사업에 나섰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한국 천주교회의 간절한 기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박수정 카타리나 / 가톨릭평화신문 기자>

한국전쟁 70년을 맞아서 아픈 기억이고 과거이지만, 우리 교회가 민족 화해와 통일을 위해서 해야 할 일 그리고 신자들이 개개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번 생각해보고 묵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바라며 시작된 가톨릭평화신문의 특별기획은 다음달까지 계속됩니다.

 

CPBC 김혜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