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11/6(수) - 1. 프란치스코 교황, ‘카타콤바’서 위령의 날 미사

재생 시간 : 03:47|2019-11-06|VIEW : 149

지난 2일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로마 지하묘지인 카타콤바를 찾아 미사를 봉헌하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자리 그리고 희망을 강조했습니다. 서종빈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 &n...

지난 2일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로마 지하묘지인 카타콤바를 찾아 미사를 봉헌하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자리 그리고 희망을 강조했습니다.

서종빈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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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일, 로마 프리실라 카타콤바를 찾아

위령의 날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카타콤바는 초대 교회 때 그리스도인들의 지하 무덤으로

박해 때에는 피난처로 사용됐으며 전례도 거행했습니다.

 

교황은 이어 전임 교황들을 위한 개인 기도를 바치기 위해

성 베드로 대성당의 지하 묘지도 방문했습니다.

 

카타콤바 위령의 날 미사 강론에서 교황은

“살아있는 모든 이들의 성화를 빌고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전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고 전제했습니다.

 

그러면서 “고대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신앙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다”고 상기시켰습니다.

 

교황의 강론을 세 마디로 요약하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자리, 희망’입니다.

 

교황은 먼저 ‘참 행복(Beatitudine)은 그리스도인의 신분증’이라며 성경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즉, 참 행복을 실천하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황은 이어 “그리스도인의 자리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있다”며

그 자리는 “바로 상처 입은 하느님의 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교황은 끝으로 “우리의 희망이 닻을 내린 곳은 하늘이라며 밧줄을 손에 쥐고,

우리가 건너야만 할 건너편 강둑을 보면서 서로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지난 1일 교황은 ‘모든 성인 대축일’ 삼종기도를 통해

성덕은 ‘선물’이며 ‘부르심’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성덕은 우리의 힘만으로 달성할 수 없고

하느님의 은총과 우리의 응답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모든 그리스도인의 최종 목표는 하느님과의 친교이며

이는 신앙 안에서 걸어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교황은 “성인 성녀들은 단순히 상징이나, 멀리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우리 옆집의 이웃 안에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현존을 반영하며

하느님과의 친교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형제자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지난 3일 성 베드로 광장 삼종기도에서는 루카 복음서에 나오는

‘자캐오의 사화’를 언급했습니다.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로 올라간 자캐오를

예수님이 먼저 시선을 들어 쳐다본 것은

죄인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자캐오처럼 예수님의 사랑의 시선으로 회심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 우리를 맡기자”고 권고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 3일 성베드로광장 삼종기도>

L’accoglienza e l’attenzione di Gesù nei suoi confronti portano quell’uomo a un netto cambiamento di mentalità: in un attimo si rende conto di quanto è meschina una vita tutta presa dal denaro, a costo di rubare agli altri e di ricevere il loro disprezzo. Avere il Signore lì, a casa sua, gli fa vedere tutto con occhi diversi, anche con un po’ della tenerezza con cui Gesù ha guardato lui. E cambia anche il suo modo di vedere e di usare il denaro: al gesto dell’arraffare si sostituisce quello del donare.

“예수님의 이러한 받아들임과 관심은 그 사람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변화시킵니다. 타인의 돈을 훔치고, 사람들에게서 경멸 받는 대가를 치르면서 돈으로 얻은 모든 삶이 얼마나 불쌍한 삶인지 한 순간에 깨닫게 됩니다. 자기 집에 주님을 모심으로써 그는 다른 눈으로, 예수님께서 그를 바라보셨던 그 따뜻한 애정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게 됩다. 아울러 돈을 보는 방식과 사용하는 방식도 바뀝니다. 돈을 움켜쥐고 있는 모습에서 주는 모습으로 바뀝니다.”

 

cpbc 서종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