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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금) - 3. 2001년 최옥란 세실리아와 2019년 탈북 모자

재생 시간 : 03:27|2019-09-20|VIEW : 109

9/20(금) - 3. 2001년 최옥란 세실리아와 2019년 탈북 모자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꼭 20년이 됐습니다. 우리나라 복지 역사를 새롭게 썼다는 평가도 있지만, 복지 사각지대도 여전히 많은데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형편이 어려운 국민...

9/20(금) - 3. 2001년 최옥란 세실리아와 2019년 탈북 모자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꼭 20년이 됐습니다.

우리나라 복지 역사를 새롭게 썼다는 평가도 있지만,

복지 사각지대도 여전히 많은데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형편이 어려운 국민의 울타리가 되려면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요?

유은재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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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12월 명동성당 앞에 텐트가 펼쳐졌습니다.

살을 에는 한파 속에 텐트 농성을 시작한 사람은

서른여섯 살 뇌병변 1급 장애인 최옥란 세실리아 씨입니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최 씨는 최저생계는커녕 생존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급여의 현실화를 요구했습니다.

 

<최옥란 세실리아 / 2001년 12월 3일 명동성당 앞에서>

국회의원님들이나 모든 분들에게 제가 계속 대안을 마련해달라 그런데도 아무런 연락이 없고 그래서 제가 결국은 밖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사정입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 3년차였던 당시, 최 씨가 받은 급여는 한 달에 26만원.

소득이 있으면 급여를 받을 수 없다는 규정 탓에

청계천에서 하던 노점을 접은 이후, 최 씨는 더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최옥란 세실리아 / 2001년 12월 3일 명동성당 앞에서>

삶의 의지가 없어지고 그래도 노점할 때는 열심히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그런 힘이 있었는데 방안에서 보름동안 누워있으면서 고민을 많이(했습니다.)

 

국무총리에게 수급권을 반환하고 투쟁을 계속하던 최 씨는

이듬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면서 “기초생활보장법이 정말로 나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가 되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1999년 9월 7일 제정됐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개선을 거듭해왔지만,

여전히 선정기준과 보장수준, 사각지대 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시민단체는 법이 제 기능을 다하려면

부양의무자 요건의 완전 폐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김윤영 /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현재까지 교육급여 그리고 주거급여에서는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됐지만,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는 폐지가 여전히 요원한 상황입니다. 정부에서는 내년에 발표할 계획에서도 생계급여에서만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대해서 3개년 계획을 밝히겠다고 했는데요. 사실 가난한 사람들이 생계비와 의료비가 동시에 해결되어야 생존의 욕구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폐지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실 기초생활보장제도 20년간의 만들어졌었던 가장 큰 사각지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보고...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 중증장애인이 있는 수급자 가구에 대해

부양의무를 폐지하고, 일하는 수급자를 대상으로

30% 근로소득 공제제도를 도입하는 등 보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옥란 세실리아와 송파 세 모녀, 그리고 최근의 탈북 모자까지.

가난 때문에 세상을 등지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보완이 시급합니다.

 

cbpc 유은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