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순수녀의 시편 묵상

제29강 시편 30편 비탄을 춤으로 바꾸시고

재생 시간 : 08:43|2013-02-08|VIEW : 2,853

"당신께서는 저의 비탄을 춤으로 바꾸시고 저의 자루옷 푸시어 저를 기쁨으로 띠 두르셨습니다." (12절) 시편 30편은 개인 감사 시편에 속합니다. 죽음의 위험에 처한 시인이 자신의 생명을 되돌려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곧 이 시편은 시인이 하느님께 간구하여 죽음의 위험에서 구원되어 기뻐서 춤추며 부른 찬송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찬양은 사실상 ...

"당신께서는 저의 비탄을 춤으로 바꾸시고
저의 자루옷 푸시어 저를 기쁨으로 띠 두르셨습니다." (12절)

시편 30편은 개인 감사 시편에 속합니다. 죽음의 위험에 처한 시인이 자신의 생명을 되돌려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곧 이 시편은 시인이 하느님께 간구하여 죽음의 위험에서 구원되어 기뻐서 춤추며 부른 찬송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찬양은 사실상 함께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인이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은 찬송으로 표현되며, 그분의 영광과 놀라우신 기적을 찬송하는 일은 곧 감사하는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시인은 세상적으로 평안하게 만족하며 안정감 속에 살았습니다. 그는 자만에 빠져 그에게는 도전과 위기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에게도 시련이 닥치자 그는 죽음의 위기를 의식하게 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주님께 간청합니다. 자기가 죽어버리면 시체가 하느님을 찬송할 수 없고 진리를 선포할 수 없으니 하느님을 찬송하고 진리를 선포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연장시켜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분의 진노는 잠시뿐이나 그분의 호의는 한평생 가니 저녁에 울음이 깃들지라도 아침에는 환호하게 되리라. (6절)

시인은 하느님을 찬양하는 이유를 제시해 줍니다. 그것은 주님의 진노는 한순간이지만 그분의 호의는 지속적이고,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기 때문입니다.  

"진노"는 인간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반응이지만, "호의"는 인간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진노는 잠깐이고 호의는 평생을 갑니다. 하느님은 사람들에게 고통은 짧게 주시지만, 은총은 한평생을 채워주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호의는 진노보다 훨씬 큽니다. 하느님은 진노도 하시고 사랑도 하시지만, 사랑이 진노보다 더 강합니다.

"저녁"은 어둠과 두려움과 고통의 시간이지만 멈춰있지 않고 아침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어둠을 몰아내는 새 아침은 반드시 옵니다. 어둠이 빛으로 바뀌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 체험입니다. "아침"은 빛의 시간이며 하느님의 구원의 때(시편 46, 6)이고 부활의 시간입니다.

평안할 때 저는 말하였습니다. "나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으리라." (7절)

시인은 과거를 회상합니다. 특히 행복했던 때를 생각해 봅니다. "평안할 때"는 건강하고 성공적이며 행복한 시절입니다. 어려움 없이 모든 것이 잘 될 때는 거짓된 안정감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평안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나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으리라"고 자만한 과거를 뉘우칩니다. 경솔한 이런 표현은 악인들이 즐겨 쓰는 말입니다. (시편 10, 6) 그런데 의인이 이런 말을 할 때는 자신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하느님의 은총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시편 16, 8) "말하였다"는 것은 '잘못 생각하였다'는 뜻입니다.

"제 피가, 제가 구렁으로 떨어지는 것이 무슨 이득이 되리이까? 먼지가 당신을 찬송할 수 있으며 당신의 진실을 알릴 수 있으리이까?" (10절)

"구렁"과 "먼지"는 죽음을 뜻합니다. 시인은 자신이 죽어서는 안 되는 이유, 달리 말해 하느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셔야 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제시합니다.

첫째, 자신의 죽음이 하느님께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은 하느님을 찬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산 자의 특권입니다.

둘째, 자신의 죽음이 하느님께 손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진실을 선포하는 충성스런 한 사람의 사라짐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의 삶의 목적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하느님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죽음은 하느님을 찬양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인은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욕망을 나타냅니다. 구약에서는 사후의 생명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현세의 삶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당신께서는 저의 비탄을 춤으로 바꾸시고 저의 자루옷 푸시어 저를 기쁨으로 띠 두르셨나이다. (12절)

시인은 시련 중에 기도를 드렸고 그가 받았던 구원체험을 전합니다. '비탄과 춤', '자루옷과 기쁨'이 대조를 이룹니다. "비탄"은 슬픔의 극적인 표현이요, "춤"은 축제에서 기쁨의 절정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 춤추는 것은 단순히 기뻐서 즐거워하는 것만이 아니라 병마로부터 완전히 회복되었음을 원수들에게 과시하는 것입니다.

"자루옷"은 상이나 재앙을 당해 애도나 속죄의 뜻을 보이고자 입는 옷입니다. 자루옷을 풀고 기쁨으로 띠 두르는 것은 잔치 분위기를 나타냅니다. "기쁨으로 띠 두르는 것"은 축제 때 입는 옷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구원체험을 기쁨의 옷을 입는 것에 비유합니다. 옷의 변화는 시인이 애곡과 참회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감사와 기쁨의 주인공이 되었음을 말합니다.

시편 30편의 시인은 자신의 삶에 만족해하며 평안하게 살면서 "나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으리라"(6절)고 자만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병이 들자 그는 겁에 질렸고 깊은 수렁 속에서 주님께로 돌아갑니다. 주님께서 그를 회복시켜주시자 그의 비탄이 춤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회복된 것을 하느님의 자비 덕분이라 생각하고 주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도 평안할 때 이 시인처럼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이 잘 될 때 우리는 어떤 도전도 받지 않을 것처럼 자만합니다. 하느님을 떠난 자만은 거의 언제나 시련을 불러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진노는 잠시뿐이나 그분의 호의는 한평생 갑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때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찬미와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주 저의 하느님, 제가 당신을 영원히 찬송하오리다." (13ㄴ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