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순수녀의 시편 묵상

제24강 시편 133편 함께 사는 즐거움

재생 시간 : 08:35|2013-01-24|VIEW : 2,751

"보라,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 형제들이 함께 사는 것이!" (1절) 시편 133편은 열네 번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시편 120-134편)이며 교훈 시편 내지 지혜 시편에 속합니다. 이 시편은 순례자들에게 주님께서 복을 내려 주심을 노래합니다. 이 시편은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가족과 함께 사는 삶의 기쁨을 노래한...

"보라,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
형제들이 함께 사는 것이!" (1절)

시편 133편은 열네 번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시편 120-134편)이며 교훈 시편 내지 지혜 시편에 속합니다. 이 시편은 순례자들에게 주님께서 복을 내려 주심을 노래합니다. 이 시편은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가족과 함께 사는 삶의 기쁨을 노래한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공동체는 형제들이라는 점입니다.  

이 시편의 주제는 "형제들이 함께 모여 살면 즐겁고 기쁘고 생명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형제들이 사랑하며 함께 연합할 때 생명력이 넘칩니다. 형제의 사랑이 있는 곳에는 활력이 넘칩니다. 화목한 가정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설명하기 위해 "좋은 기름", "헤르몬의 이슬"이라는 비유가 사용됩니다. 기름과 이슬은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하느님의 복을 상징하며 새로운 활력과 새로운 창조를 시사합니다. 이 두 가지 이미지는 "흘러내리다"는 동사와 이어집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가족 구성원들에게 강복하시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보라,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 형제들이 함께 사는 것이!" (1절)

이 절은 지혜 문학의 형식을 띠는 격언 표현입니다. 시인은 형제들이 함께 모여 사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은 가장 아름답고 유쾌한 일입니다. "좋다"와 "즐겁다"는 형제적 일치를 묘사합니다.

"형제들"은 누구입니까? 이것은 성경에서 몇 가지로 해석됩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가정은 대가족으로 삼 사대가 함께 살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사회 관습은 아들이 결혼한 후에도 계속 아버지의 집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여러 명의 부인을 둘 수도 있었습니다. 복잡한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에서는 많은 다툼과 시기와 질투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형제애는 자랍니다. 형제들은 가정의 공동 목표를 위해 살아갑니다. 가정의 화목과 우애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기에서 "형제들"은 단지 한 가족만을 가리키지 않고 대가족(아브라함과 롯)이나 신앙 공동체를 뜻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형제들이라 불립니다. 그들은 일치를 나타내며 전례 거행을 위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머리 위의 좋은 기름 같아라. 수염 위로, 아론의 수염 위로 흘러내리는, 그의 옷깃 위에 흘러내리는 기름 같아라." (2절)

"기름"은 기쁨과 축제의 상징입니다. (시편 45, 8) "좋은 기름"은 아마도 향내 나는 기름이었을 것입니다. 향 기름은 올리브기름에다 방향제를 섞어 녹여 만든 것입니다. "좋은 기름"은 일반적인 기름보다는 대제사장의 임직식 때 머리에 부어주는 "거룩한 기름"으로 보입니다. (탈출 29, 7) 아론은 거룩한 기름으로 성별 되었습니다. (탈출 29, 21) 긴 "수염"은 사제들처럼 아주 성스러운 사람의 모습을 암시합니다. (레위 21, 5) 아론의 옷깃(판결 가슴받이)에는 열두 개의 보석이 장식되어 있는데 열두 개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나타냅니다. (탈출 28, 21) 기름은 서서히 수염을 거쳐 가슴의 옷깃에까지 흘러내립니다. 

"흘러내린다"는 표현은 하느님의 축복이 내림을 뜻합니다. 좋은 기름이 흘러내리는 동안 그 기름의 향기가 온 사방으로 퍼지듯이 함께 모여 사는 형제들의 삶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일치된 공동체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시온의 산들 위에 흘러내리는 헤르몬의 이슬 같아라. 주님께서 그곳에 복을 내리시니 영원한 생명이어라." (3절)

"헤르몬 산"은 높고 장엄하고 사시사철 눈으로 덮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헤르몬의 이슬"은 '많은 이슬'을 의미합니다. 엄청난 이슬은 마치 밤새 내린 비와 같습니다. "이슬"은 '신선함', '새롭게 함'을 상징합니다. (호세 14, 5-7) 이슬은 메마른 땅에 생명을 줍니다. 그래서 이슬은 하느님이 새로운 원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내려 주신다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형제들이 함께 있을 때는 서로에게 신선한 힘을 줍니다. 마치 하늘에서 이슬이 내리는 것처럼 형제들이 함께 모여 사는 가정에 하느님의 축복이 내립니다. 여름철의 이슬이 마른 땅과 식물과 채소를 적혀주듯이 형제간의 우애도 전체 사회에 영향을 미칩니다. 시인의 요점은, 마치 하늘에서 이슬이 내리는 것처럼 하느님의 축복이 형제가 함께 모여 사는 공동체(가정)에 내린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복"은 늘 "생명"과 연관됩니다. "복"은 생명력을 높여줍니다. "영원한 생명"은 가정 안에서 우애로 맺어진 열매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복의 열매로서 그 열매가 나오는 가정에서는 언제나 즐거움이 있습니다. 가정생활의 힘은 서로간의 연대성에서 만들어집니다. 형제애는 계속적으로 생명력을 주는 축복입니다. 가정은 하느님의 복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시편 133편에서 형제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은 가정의 질서가 파괴되고 무너지는 오늘 날 가정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형제들이 함께 결합한다는 것은 모든 가정·사회·국가의 근본 질서를 이루어줍니다. 생명력이 넘치는 가정은 건강한 사회를 형성하고 힘 있는 국가의 기반이 됩니다. 이 시편은 머리 위에 부어진 향기름 같이, 헤르몬 산의 풍부한 이슬처럼, 가족이 향기가 나고 거룩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공동체를 이루라는 지혜의 교훈을 줍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시편 133편이 수도원을 탄생시켰다고 합니다. 수도 공동체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이 시편은 중요한 의미를 주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는 형제·자매들이 한 신앙을 위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형제들" 입니다.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 형제들이 함께 사는 것이!" (1절)